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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May 05. 2023

선배, 언니, 작가님!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사적인 호칭, 공적인 호칭

한 프로그램에서 작가는 최소 2명 이상으로 이루어진다. 메인작가와 막내작가. (물론 요즘에는 유튜브 시장이 커지면서, 작가가 1명인 곳도 있는데.. 저도 다음 주부터 그런 곳에서 일을 하게 될 예정이라 좀 떨리는군요) 여튼, 규모가 큰 프로그램이거나 케어해야 하는 출연자가 많을수록 작가 수 또한 늘어나는데, 인원이 많을수록 애매해지는 것이 '호칭'이었다.  


아니, 방송작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호칭 문제'는 내 주변에 존재했었다. 첫 프로그램 당시 나는 메인작가님을 '작가님'이라 불렀는데, 초반에는 그러려니 하던 그녀가 3개월쯤 지났을 무렵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낯간지럽다고 하였다. 나에게는 까마득해 보였던 연차였기에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아 작가님이라 불렀던 것인데, 그럼 뭐라 불러야 하나 고민하긴 했지만, 옆팀의 막내 또한 그들의 메인작가를 '작가님'이라 불렀기에 그 프로그램이 없어질 때까지 '작가님'이라 불렀던 듯싶다. 




이후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첫 예능프로그램에서 선배들은 메인작가님을 '작가님'이라 부르지 말고 '언니'라 부르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함께 일하는 동년차 작가와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내라는 주문이 덧붙여졌다. 적어도 10~15살 이상 차이나는 이모뻘인 그녀를 언니라 부르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단순히 모든 선배들의 호칭이 '언니'로 통일된 것이라고 머리에 입력하고, 내뱉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동년차 작가와의 '친밀도' 문제는 별개였다. 왜냐하면 는 나와 연차는 같지만, 2살이 많았고, 내 인생 첫 남자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오빠"


일반 회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호칭이 방송국에서는 괜찮은 것인가? 


괜찮다고 한들 그걸 내뱉어야 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낯간지러웠다. 남들은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 '오빠'라는 호칭은 다소 애교스러운 느낌이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편견일지 모르는 이 느낌을 심어준 사건은 대학생 때 있었는데, 당시 과선배와 CC를 했던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를 당연히 '선배'라 불렀고, 그는 나를 이름부터 별의별 애칭으로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알쓰임에도 동아리 모임에서 술을 얼큰하게 마신 그는 왜 계속 '선배'라 부르는지에 대해 따져 물었다. '오빠' 소리가 그렇게 안 나오냐를 시작으로, '선배'라는 호칭으로 불리면 자신이 다른 선배들과 다를게 무엇인가 등 다양하지만 딱히 설득력 있지 않은 근거를 제시하며 내가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고, 내가 그를 '오빠'라 부르는 것으로 결론이 났기에 사소한 논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선배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그나마 봐주만 했던 비주얼을 이용해 후배들에게 '오빠' 행세를 조용하고 은밀하게 하였던 그는, 나와 사귀던 중 진실이 밝혀져 아주 큰 쪽을 당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가 학교를 떠난 뒤, 그는 새내기 시절부터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 관심들을 당연하게 생각해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추가로 알려졌다. 그러면 뭐 하나, 이미 가해자는 학교에 없는데. 


그 외에도 내게 '오빠'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주변 몇몇 남자들 때문에 나는 '오빠'소리에 조금 진절머리가 나있는 상태였는데, 그 단어를 회사 동료에게 내뱉어야 한다는 것이 익숙해질 리 만무하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해야 했기에 선배들이 보는 상황에서는 그를 '오빠'라 불렀고 (그마저도 최대한 부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둘이 있는 상황에서는 '형', '선생님', '저기요' 등등 말도 안 되는 호칭으로 부르며 지냈다. 그때의 인연으로 10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그의 호칭은 '저기요'이다. 




언제나 언니였던 선배들의 자리에, 성별이 남자인 메인작가가 등장했고 이번 호칭은 '오빠'가 아닌 '선배님'이었다. 분명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여' 메인 작가에게는 '언니'라 부르는 일이 허다했는데, 이번에는 '오빠'가 아닌가? 물론 오빠라 부르고 싶어서 던지는 물음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반면 방송계에는 또 다른 '오빠'가 있는데, 바로 출연자들이다. (어쩌면 조금은 달라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자 출연자들은 웬만하면 다 '오빠' 소리 좋아해" 


한동안 내가 모든 출연자들에게 '선배님' 혹은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고 한 선배 언니가 왜 그들을 '오빠'라 부르지 않냐며, '오빠'에서 오는 친근함의 위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오빠'라 불러야 부탁하는 것들을 호의적으로 들어준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돈'을 받고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사이임에도 왜 내가 그들을 '오빠'라 불러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부탁할 일이 생기면 '오빠'소리가 절로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오빠' 호칭에 대한 애교스러움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오빠, 오늘 촬영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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