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ringtime Oct 19. 2023

팬심 가득한 사적인 후기

김동률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며칠 전, 김동률 님의 콘서트를 다녀왔다.

<2023 김동률 콘서트 'Melody'>

그가 공연을 한다는 사실은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가 자신이 공연을 한다며 곧 보자고 건네는 인사가, 평소 같았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다, 힐링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살아가야 할 이유가 필요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황금손이라 불리우는 나는, 자리에 대한 욕심을 최대한 내려놓으려 애썼다. 주말보다는 평일이면 포도알을 더 많이 볼 수 있겠지, 1층보다는 2층에는 내 자리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장..을 시도했다. 수많은 티켓팅을 해보았지만 '비정상적인 접근' 이라는 문구를 이리 많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노트북 2대와 핸드폰 2대, 총 4대의 전자 기기들과 씨름을 한 지 40분 정도 흘렀을까, 대기 화면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벌벌 떨면서 예매.

첫 시도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한 자리를 잡아두었고, 번째에는 동률옹 콘서트에 관심을 보였던 (함께 티켓팅을 하고 있었다) 친구 자리까지 생각해 연석을 잡았다. 생각해 보면 이때 막콘도 예매했어야 했다. 여튼 손이 이끄는 대로 잡아두었던 첫 번째 티켓은 티켓팅을 실패한 또 다른 친구에게 전달했고, 덕분에 나는 답례로 MRK편지지를 받았다.  




'김동률'이라는 가수를 인지한 최초의 기억은 한창 라디오에 빠져있었던 중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아이돌 밖에 몰랐던 내가 라디오를 들으면서부터 이상한(?) 인디병과 토이병을 낳았던 다양한 발라더들에게 빠지기 시작했는데 그도 그중 한 명이었다. (*동률옹은 발라드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김동률의 뮤직아일랜드>

운이 좋았지, 지금처럼 방송 노출을 전혀 하지 않는 분이 진행하던 라디오라니. 솔직히 DJ성발라 프로그램과 번갈아 듣느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비교적 기억이 뚜렷한 희열옹과 적군의 라디오에서 자연스레 언급되던 동률옹. 그리고 그때 나는 이소은 님과 동률옹의 심각한 망붕이었다. 노래 잘하는 두 사람을 붙여놓았으니. 사춘기 소녀 눈에 그리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확실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률옹이 소은 님을 아이 취급하셨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도 그럴 것이 나이차이도 꽤나고 소은 님이 학생이었을 때 만났으니, 소녀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대단했기에 열심히 둘을 응원했었더랬다.


동률님의 노래를 듣다 보면 따라오는 전람회, 카니발의 음악들까지. 그렇게 내적 친분을 쌓아가던 어느 날, <베란다프로젝트>가 나왔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앨범을 한 번도 구매하지 않았던 내가 <베란다프로젝트> 앨범을 구매했던 걸 보면 꽤나 동률옹에 대한 애착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럴 때면, 과거의 나에게 코로나 확진자 동선처럼 다이어리를 쓰지 말고! 감정 위주의 일기를 쓰라고 혼구녕을 내고 싶다. 물론 지금도 감정형 일기를 쓴다는 게, 나의 감정을 돌보는 것이 너무나 어렵지만.

덕분에 요즘 출연했던 라디오 다시 듣는 중


공연 스포가 될 만한 이야기들은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다. 다만 공연장에서 처음 듣는 음악은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셋리만 살짝 엿보았다. 아는 곡들도 있었고 낯선 곡들도 있었다. 확실히 그동안의 공연들과 달리 대중픽으로 이루어진 셋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이 참으로 좋았고, 공연을 다녀온 뒤 더 좋아졌다.

마음에 떠도는 음을 모은, 한 소절씩 엮어간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그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뒤덮었다. 가사를 따라 공연장의 모든 조명이 꺼질 때는 관객 모두가 한마음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막이 걷히고 그가 등장할 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공연들과는 차원이 다른 오프닝이었다. 혹시나 나의 숨소리가 그의 공연에 방해가 될까, 눈 한번 깜빡이는 순간 놓치는 부분이 생길까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시작했던 자세 그대로 공연을 감상했다.


수많은 결혼식의 축가로, 누군가에게는 노래방 애창곡으로, 인생곡으로 꼽히는 그의 노래들을 듣고 있으니, 도대체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어떤 사랑을 하면 이렇게 처절하고 애절한 가사를 있을까 새삼 궁금증이 다시 한번 피어올랐다.


- 부풀려진 맘과 꾸며진 말들로

   행여 널 두 번 울렸을까 참 미안해

- 나를 사랑했던 기억이 때로는 힘이 되는지,

   오히려 후회되는지, 생각도 없는지

- 나를 사랑한다 말해도 그 눈빛이 머무는 그곳은

   난 헤아릴 수 없이 먼데 너를 사랑한다 말해도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두 눈이 말라버린 그 입술이


최근 예능에서 <취중진담> 속 화자는 술이 아니면 용기도 제대로 못 내는 남자다, 술 먹고 하는 말은 진담이 아닌 헛소리라 이야기하는 패널들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알콜의 맛을 모르던 학창 시절에는 취중진담 속 주인공이 상대를 얼마나 좋아하면, 맨 정신에는 고백도 제대로 못하고 술의 힘을 빌어 얘기할까 했지만, 30대가 되어버린 나는 술 마시고 하는 고백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동률옹의 무대를 보고 나니, 저렇게 하는 고백은 진심이 아닐 수가 없다로 생각이 확고해졌는데, 이 또한 김동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여튼, 무슨 일이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공연을 보는 순간순간 눈을 감고 오롯이 노래만 감상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무대 연출이 예술이었기에(이렇게 밖에 표현 못하는 내가 싫다) 눈을 감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나의 청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다음날 몸살이 났다.


앵콜 때 입니다




노래를 부르기 전, 부르고 난 뒤 사이사이 건네는 멘트들 또한 쉽게 잊히지 않고 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자면.


공통점이 있는 두 곡, 타이틀곡이었으나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 앨범 속 다른 곡이 떴다는 두 곡

이라 소개한 '이제서야'와 '다시 시작해보자'.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욕심쟁이. 출발, 오래된 노래, 아이처럼, 멜로디 앨범 수록곡 중 절반이 사랑을 받았으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셨겠지요. 하지만 두 곡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라고 반박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고.

 

'황금가면' 무대 후 "김동률 춤췄대!로 남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에는, 물론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춤을 추었다고 해도 다른 무대가 레전드였기에... 아니, 그의 결정은 옳았다. 김동률 춤사위를 선보인 유일한 공연으로 대대손손 언급됐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에 조금 더 멋져져서, 조금만 늙어서 다시 만나자는 그의 엔딩 멘트에 팬들은 그 조금만이 얼만큼인데요?라고 되묻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의 조금과 나의 조금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꽤나 다를 것임을 알기에.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또 다른 누군가는 공연을 즐길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만큼은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아니 어두운 내 미래를 계속해서 살아가야 이유를 만들어준, 삭막했던 삶에 빛줄기를 내어준 공연.


무리한 트리플 악셀을 뛰어준 그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눈물나요ㅠㅠ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주절주절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