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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Apr 07. 2023

나의 첫 룸메이트

원룸 옥탑방의 현실 (1)

"언니, 집은 홍대 쪽이나 신촌이 좋겠지?"


부동산의 비읍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회 새내기 시절. 월세는 달마다 방세를 내는 것이고, 전세는 보증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 할 정도로 무식하고 용감했던 이십 대 초반. 무슨 배짱이었는지 나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대학 동기지만 한 살 어린 아윤에게 발품 파는 것부터 집 계약까지 모든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떠넘겼다.


"언니, 가장 꼭대기 층이고 원룸인데 월세는 60.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도 있어! 옥탑방 마당도 마음껏 써도 된대!" 


"응. 좋아"


회사에서 본가까지 왕복 3시간이라는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기 싫었던 나는 전적으로 아윤의 안목을 믿었고, 방 한번 제대로 보지 않고 오케이를 날렸다. 하지만 내 몸 하나 누울 공간이 매달 60만 원, 1년에 720만 원이라는 게, 서울 하늘 아래 내 집마련의 꿈은 사치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아윤과 나는 속전속결로 신촌 5층짜리 옥탑방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인생 첫 독립이자 동거인을 동시에 갖게 된 나는 이 기쁜 소식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그 자랑은 이 집을 구할 수밖에 없게 만든, 본가에서는 너무나 멀었던 직장에서만 이루어졌다. 


"이제 저 신촌에서 대학 동기랑 같이 살아요"


나의 독립 이야기를 들을 회사 선배들은 축하보다는 어쩌다 친구랑 사냐는 둥, 이제 둘 사이는 끝났다는 둥 저마다 친구와 함께 살다 절교한 썰들을 하나 둘 풀어내기 바빴다.


서울 집 값은 혼자 감당해 낼 자신 없고, 부모님 눈에 아직 어린아이인 내가 혼자 사는 것을 반대하셨고, 부동산은 잘 몰라서 친구랑 책임을 나누고 싶었다는 결정의 근거들이 있었음에도. 친구에서 원수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경험담에 푹 빠져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끊을 타이밍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말로 상황을 벗어남으로써 나의 자랑 아닌 자랑이 끝이 났다. 


물론 10년째 '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까지, 새로이 마주하게 되는 인간관계 속 저마다의 절교썰을 듣게 될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 했지만. 




4월. 적당한 찬 바람과 적당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에 우리는 이사를 했다. 용달차를 부를 만큼의 짐이 없었던 우리는 각자의 부모님 차를 이용해 이사를 시작했다. 나름 커 보였던 원룸은 아윤의 서랍장과 화장대, 나의 왕자행거가 들어서자 급격하게 좁아졌고 두 사람이 누울 자리와 밥상이자 책상이었던 접이식 탁자를 둘 정도의 공간만이 남아있었다. 침대, 업무용 책상, 의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그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사생활이라고는 1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각자의 일이 너무 바빴다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든 만큼 휴식 시간이 늘어날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분야를 바꾼 나의 일은 배로 늘어났고, 덕분에 우리는 이사 첫날 먹은 '봉추찜닭'을 끝으로 한 공간에서 함께 밥 먹을 시간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공간은 한정적이었고 빨래, 청소, 설거지와 같이 미루면 미룰수록 눈에 띄기 시작하는 집안일의 순서와 역할을 제대로 나누지 않은 탓에 밥통에는 언제 밥을 지었는지 모른 상한 밥이, 건조대 위에는 마른 지 한참 지난 옷더미가 널브러져 있었다. 동시에 각자의 마음속에서 서로를 향한 불편함과 불만이 점차 쌓여가기 시작했다.    




아윤과의 첫 만남은 '대학'에서였는데, 재수를 한 나는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 [대학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없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들었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새내기들 사이 '자취인'과 '통학인'으로 나뉘었던 그때. 나는 아윤과 같은 통학인으로서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물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각자의 이어폰을 끼고, 잠을 자느라 대화는 많이 못했지만 말이다. 나름 순탄했던 학교 생활 중 한 남자가 등장했고, 요란한 퇴장을 하는 동안 나의 멘탈은 수도 없이 탈탈 털렸고, 아윤은 그런 나를 옆에서 최대한 꽉 잡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졸업을 앞둔 막학기 동기들보다 먼저 취업을 했고, 이후 아윤 또한 나와 같은 직종이면서 비슷한 지역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같은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두 여자가 힘을, 아니.. 돈을 모아 엘리베이터도 없이 올라야 하는 5층 꼭대기 월세방을 얻은 것이다. 

우리의 첫 서울 (월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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