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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옹 May 22. 2023

나에게 문화센터의 의미란

예상치 못한 휴강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월요일 오전. 문화센터에 간다고 생각하니 살짝 들뜬 기분이다. 이번에는 마지막 수업이라 분위기가 어떨지 기대가 많이 되기도 한다. 수강생들은 많이 참석할까? 맨 첫 수업에 비해서 인원이 얼마나 줄었을까? 궁금했다.


 시월이에게 입힐 옷을 생각해 본다. 그래, 지난 주말에 산 얇은 여름옷을 입혀야지. 비가 올 것 같으니 수업이 끝나면 아기띠에 시월이를 안고 바로 집으로 와야지. 오자마자 목욕시키고 자장가 불러주며 재워야지. 나는 시월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서 점심을 먹어야지. 문화센터 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일정들을 생각해 본다.


 시간이 되어 수유를 한다. 시월이에게 모유를 먹이며 휴대폰을 보는데, 앗! 휴강이라니. 강사님이 아파서 휴강한다고 카카오톡 메시지가 와 왔다. 그래 아프면 어쩔 수가 없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에 있을 때 힘을 많이 얻는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집에만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시월이랑 문화센터 수업을 못 듣는다는 생각에 실망하기도 했다. 일정이 취소됐을 때의 느낌은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다른 아기들을 보니 한 번에 두 개의 강좌를 듣는 경우도 더러 있다. 우리 집은 딱 하나만, 지금 듣는 수업 딱 하나만 듣고 있어서 문화센터 수업 시간이 더 소중하다. 나는 시월이 교육비에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다. 교육비를 들여서 그만큼의 효과가 나오면 돈을 많이 쓰겠다만, 시월이가 관심 없어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단 하나를 듣더라도 결석 없이 참석해서 적응하며 시월이가 수업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이 더 낫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문화센터에서 매주 배우는 것들이 아이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줄 것이라 믿는다.


 문화센터에 다녀볼까 생각해 본 아기 엄마라면 수업을 한 가지만 들을지 두 가지 이상 들을지도 고민해 봤을 것이다. 한 가지만 듣겠다고 결정을 내렸다면 이 글에 크게 공감이 될 것이다. 아기에게 자극을 주고 싶지만 체력은 안 되니 단 하나라도 듣는 것이다. 뭐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 말이다.


 집에만 있으면 하는 것이 똑같다. 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책 읽고, 마라카스나 인형으로 놀고. 아기에게 다양한 놀이를 해 주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아쉬울 따름이다. 아기보고 집안일만 해도 하루가 다 간다. 육아를 하니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다.


 문화센터에 가면 여러 가지 곡식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그 위에서 뒹굴기도 한다. 곡식이 바가지와 같은 사물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곡식놀이만 하는 게 아니라 한지나 스카프등 놀이의 소재는 아주 다양하다. 집에서 해주기 힘든 것들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마음이니 아기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든 칭얼대서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든 나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


 내가 지금 수업을 듣고 싶다고 해서 무작정 마트 문화센터로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꼼짝없이 집에서 쉬어야 한다. 그런데 왜 그런지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평소의 월요일이라면 문화센터로 출발하기 전 마지막 수유시간. 수유가 다 끝나니 나는 지쳐버렸다. 심지어 수유 중에 몇 분 졸기도 했다.


 아기를 내 무릎 위에 앉혀서 책을 읽어주고 난 후 나는 잠시 엎드렸다. 힘이 들어서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아기도 내 옆에서 엎드렸다. 한참 후 눈을 떠 보니 아기가 잠이 들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몇 분 동안 잠이 들었었나 보다.


 잠을 잤지만 편하게 잔 게 아니라서 그런가 개운하지가 않다. 원래 이 시간에 나는 점심을 먹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 2~3분 정도 고민하다가 내 몸이 하는 말을 듣기로 했다. 배가 많이 고픈 것도 아닌데 한 끼 안 먹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아기 옆에서 잠시 같이 잠을 자기로 했다. 밥은 저녁에 남편과 같이 먹는데, 해야 할 일들이 있어 밤에 일찍 자는 건 무리일 듯하다.


 아기 이불 옆 토퍼에 몸을 뉘었다.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때의 잠은 너무 달콤했다. 비록 아기가 크게 울어서 기분 좋게 깬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겹겹이 쌓여있던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린 기분이다.


 가끔씩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휴식이 좋다. 아주 의미 있는 일정이 취소됐다고 해서 좌절하지는 말자. 지친 나에게 잠깐의 단잠을 선물해 줄 수도 있는 시간이다. 날씨가 좋다면 아기와 함께 밖으로 나가 카페에서 차 한잔을 실수도 있다. 빈 일정을 다른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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