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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옹 Feb 14. 2022

육고기는 끊어볼 수 있겠다

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나?


 나는 옷을 잘 입는 편이 아니었다. 옷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단지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개성 있는 옷을 입고 싶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튀는 옷, 멀리서 봐도 내가 주인공인 옷 말이다.


 그러던 중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는 창의적인 창작자들의 톡톡 튀는 생각들을 볼 수 있다. 의류뿐 아니라 책, 음식 등 아주 다양한 분야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내가 물건을 사면 바로 나에게 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후원을 통해 아주 천천히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신선했다.


 텀블벅을 들여다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틈만 나면 텀블벅에 들어가서 개성 있는 옷이 없나 살펴봤다. 특이한 옷은 많았지만 용기가 안 나서 쉽게 후원하지는 못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텀블벅을 둘러보고 있던 어느 날,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보게 된다. 이 책의 설명을 주욱 읽어봤다. 이 책은 서점에 깔릴 정식 출판물인데 지금 사면 한정판 표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나의 흥미를 많이 자극했다. 사실 이 책을 후원해서 받게 된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내가 무슨 마음으로 후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 손이 그렇게 움직였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그렇게 <아무튼 비건>을 후원하고 시간이 지나 그 책은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책을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아니 고기가 맛있다는 이유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내용들을 그 한 권의 책으로 속속들이 다 알게 되었다.


 나는 삶은 계란을 좋아하고, 가끔 반찬이 없을 때 계란 프라이를 해 먹는 사람이었다.


 닭은 좁은 닭 장안에 갇혀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오로지 사람 손에 들어갈 닭알을 생산해 내기 위해 알을 낳는다. 자연 상태의 닭은 10~20개의 알을 낳지만, 공장식 축산 아래서의 닭은 200~30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러니 닭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평생 알만 낳다 보니 뼈가 약해져서 주저 않는다고 한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그렇게 태어난 병아리들은 수컷은 분쇄기에 바로 갈리고, 암컷은 그의 어미와 똑같이 알 낳는 기계의 삶을 산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우유가 건강에 좋다고 믿었고 맛도 괜찮아서 즐겨 마시는 사람이었다.


 소는 우유를 생산해 내기 위해 늘 임신한 상태여야 한다. 암소에게 사람 손으로 소의 정액을 집어넣는다. 즉 암소는 평생 강간당하면서 산다는 뜻이다. 소는 사람 손에 들어갈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임신과 출산의 쳇바퀴를 반복하며 산다. 오직 사람 손에 들어갈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소의 젖은 송아지의 것이고, 엄마 젖은 아기의 것이다. 우리는 이미 몸이 다 커서 우유를 먹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우유를 먹는다는 것은 송아지만의 것을 뺏어먹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우유를 탐하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는 <아무튼 비건>을 읽고 닭알과 우유에 관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도 감정을 가진 동물인데, 내가 너무 음식으로만 봤었다. 그러니 그 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단순히 음식으로만봤던 것들이 이제 조금씩 동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을 덮은 후, 육고기는 끊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건을 실천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내 주변 환경들 때문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나를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다가 제 풀에 지쳐 쓰려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목표를 작게 잡았다. 가능하면 비건 식단을 지키되 육고기부터 서서히 끊어보기로 했다.


 일터에서 육고기를 배제한 식사를 했다. 나는 그때 PC방에서 일했다. PC방에서는 판매용 음식들을 스스로 만들어먹고, 뭘 먹었는지 잘 기록만 하면 된다. 밥을 먹을 때 육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았다. 라면도 종종 끓여먹었는데, 그때는 미처 라면에도 고기 육수가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PC방이란는 환경에서 채식을 하려면 도시락을 싸 다녀야 하는 게 맞지만, 밤을 새 가면서 일하고 있었던 터라 도시락을 쌀 체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는 단순히 덩어리의 육고기만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와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채식을 해 보자고 마음먹은 이후에 "치킨 치즈스틱"을 먹었다는 것이다. 채식한 기간이 오래된 지금은 눈앞에 치킨이 있어도 안 먹을 수 있지만, 그때는 조금 힘들었다.


 치킨 치즈스틱은 PC방에서 판매하는 간식 메뉴 중에 꽤 가격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여기를 그만두게 되면 따로 와서 음식을 먹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내가 먹고 싶은 것 중에 제일 비싼 걸로 식사를 해결하곤 했었다. (간식 금액의 제한은 없고, 그냥 잘 적기만 하면 돼서 괜찮았다.)


 한 두 번 먹어보니 꽤 괜찮은 맛이었던 치킨 치즈스틱, 채식을 결심하고 난 후에도 가끔 그 맛이 생각나서 그냥 해 먹고 말았다. 이래서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는가 보다. 채식을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유혹을 뿌리치기가 더 힘들었다.


 집에서는 남자 친구와 채식 반찬을 만들어먹었다. 남자 친구에게 채식을 해 보고 싶다고 밝혔을 때, 다행히 크게 안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그때는 연애 초기라서 내가 어떻게 해도 좋아 보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집에서 같이 밥을 해 먹는 일이 많았다. 우리가 잘해 먹던 반찬은 파프리카 버섯볶음이다. 버섯과 파프리카, 양파를 적당한 크기로 썰고 식용유를 두른 팬에다가 볶아주기만 하면 돼서 아주 쉽고 편했다.


 남자 친구는 세발나물 무침을 자주 해줬다. 세발나물을 잘 씻은 뒤 초장에 버무리기만 하면 완성이다. 이것도 아주 쉬운 요리다. 콩나물도 크게 어려운 게 아니기에 콩나물무침도 자주 해 먹었다.


 남자 친구가 나를 지지해줬기에 지금까지 채식 생활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비건은 아니다. 플렉시테리언의 상태로 머물러 있으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채식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가끔은 나 조차도 스스로가 "어라? 이게 어째서 채식인이야?"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채식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읽은 책, <10대와 통하는 채식 이야기>에서는 마음 중심이 중요하다고 했다. 비록 내가 고기를 아주 가끔씩 먹는 채식인이지만 비건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말이다.


 이 글을 시작으로 나의 채식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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