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를 읽지 못하는 연주자들
2020년 2월 19일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고 돌아온 <기생충>팀은 귀국 보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봉준호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젊은 감독이 <기생충>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은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과연 투자를 받고 영화가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지 냉정하게 생각해본다. 저는 1999년 데뷔했는데 20여년간 눈부신 발전과 동시에 젊은 감독이 이상하고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엔 어려워지는 경향이 생겼다.” 그의 진단처럼 2020년 이후 5년간 한국영화계는 “재능있는 친구들이 산업으로 흡수되기보다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의 평행선”을 이루는 경향이 지속되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영화 산업이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가정한 시나리오를 조금 더 확대해보자. 정말 <기생충>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은 시나리오를 제작사로 가지고 온 신인감독. 제작사 기획팀은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피드백을 줄까? 십중팔구 나는 이 정도의 반응이 돌아올 거라고 예상한다. “훅업(관객을 사로잡는 초반 설정을 부르는 용어)이 약해요. 고작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집안이 힘들다는 이유로 사기를 치는 주인공에게 관객이 몰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하실 남자 캐릭터는 조금 작위적이지 않을까요?”
상황이 이러니 내가 일전에 만났던 중견감독의 냉소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한 지역영상위 공모전에서 멘토링을 받을 때였다. 내가 만난 멘토는 나름 알려진 영화를 여러 편 찍은 중견감독이었다. 그는 내게 “필력이 좋다”면서도 “이런 건 봉준호, 박찬욱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봉준호, 박찬욱 감독만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듯 말했다. 정점을 찍은 봉준호 감독이 직접 나서서 증언해주니 그 상황을 알겠다. 그 중견감독이 가졌던 냉소는 창의력을 실컷 발휘하더라도 그걸 알아줄 스튜디오가 있을지, 알아주더라도 미약한 힘을 가진 개인에게 용기내 투자할 사람이 있을지 알았던 사람이 할 법한 냉소이자 타협이라는 걸. 참 이상한 상황이다. 안성재 셰프나 강민구 셰프가 미슐랭 3스타를 받았다고 한국에서 파인다이닝을 하는 젊은 셰프들에게 “파인다이닝은 안성재나 강민구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진 않을 텐데 말이다.
맞다. 이미 완성된 영화를 만나는 관객과 달리 산업 내에서 조금이라도 활동해본 사람은 신인이 데뷔하기 위해선 싸게 찍을 수 있는 ‘장르’물(그 장르가 진짜 장르를 이해한지도 모르겠지만)을 써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그마저도 투자자를 설득하기 쉬운 ‘합리적’이고 ‘제작 가능'한 걸 써야 한다는 합의를 잘 알 것이다. 지금의 제작환경 위기는 기획, 제작 영역에 있는 사람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당장 개인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제작사 보고 자선사업이라도 하란 말인가? 물론 아니다. 제작사의 맥락에서 사업을 영위해야 하는 다른 층위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자, 앞서 언급한 가상 시나리오로 돌아가보자. <기생충>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은 시나리오를 들고 온 신인감독에게 준 가상의 피드백. 무엇이 느껴지는가? 나는 두 가지가 느껴진다. 첫 번째로 3막구조에 대한 절대 신뢰. 굳이 가상의 시나리오를 쓰지 않아도 기획, 개발 영역에서 대본을 개발해본 경험이 있는 작가는 기획 현장에서 얼마나 무분별하게 3막구조가 쓰이는지 느낄 것이다. 마치 3막 구조가 정답인 양 깔고서 말하는 피드백들 말이다. 나도 이 경향이 왜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측하건대, 정답 위주의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이 이 산업에 진입하면서 작법서를 모범답안 삼아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3막구조에 집착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작법서에 등장하는 3막구조에서 어긋나기라도 하면 그게 곧 ‘재미없음’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3막구조는 정답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3막구조는 ‘인간은 아무리 재밌는 이야기라도 20분이 지나면 지루해진다’는 걸 달리 말한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흥행에 실패한 대다수의 영화들도 3막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는 ‘장르’를 소재로 생각하는 경향이다. ‘고작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사업에 실패한 집안의 아들’이 ‘몰입’하기 어렵다는 단정은 이 경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소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르적 아이콘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파악하기보다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팔로우할 수 있는’ 주인공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사기는 사기꾼이, 도박은 도박사가 하고, 범인은 경찰이 잡아야 하는 상투적인 주인공이 재미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한 담보물에 가까울 것이다. 요컨대 3막구조는 정답이 아니고, 장르의 외피가 재미를 담보하지 않는다.
그럼 해결책이 무엇인가? 결국 본질이다. 본질은 여전히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는 이 능력을 <독화력(讀畫力)>이라고 부른다. 시나리오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작가와 감독의 비전을 ‘본다’는 의미다. 시나리오는 연주되고 편곡될 수 있는 악보와 같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기획과 제작 영역에서 이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일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게 내 진단이다. 왜? 첫째, ’재미’를 주관적인 것이라고 주먹구구식으로 이해한다. 둘째, ‘시나리오’를 ‘스토리’와 동일시한다. 셋째, 아무도 “재미는 무엇인가?”, “시나리오에서 재미는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영상의 ‘재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글로 적힌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볼 수 있는 독화력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