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라는 악보 속 기대감이라는 음정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그래서 재미란 무엇인가? ‘재미는 객관적이다’라고 외친 것에 비하면 다소 김빠질지도 모르지만, 나도 재미가 무엇인지 단번에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재미’란 것 자체가 애초에 단번에 이해될 정도로 단순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미’는 너무나도 다양한 상황에서 말해지고, 그 모든 경우를 포괄하는 언어다. 보통 쓰는 의미와 동일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재미 역시 추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AI에게 콘텐츠 산업에서 ‘재미’가 뭔지 물으면 이런 대답을 준다. “이야기, 캐릭터, 연출, 장르, 사용자 경험이 만들어 내는 ‘몰입의 에너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산업의 관점에서 1)정서적 자극 2)인지적 만족 3) 욕망의 충족 4) 리듬, 템포, 밀도 5) 차별성과 예상 밖의 놀라움의 구성 요소를 포함합니다.”
안다. 두 문장을 썼을 뿐인데, 몰려 오는 하품의 기운을. 교실에서 교과서를 읊는 듯한 기분. 학술적 접근은 분명 정답일 것이다. 재밌다고 여겨지는 어떤 작품을 고르든 AI가 준 교과서적 정답에 부합하는 부분들이 등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공한 개별적 작품들의 분석의 총합을 모아서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분석적 판단의 결과는 창작과 피드백에 도움이 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라는 작가는 정답지를 꺼내놓고 이것에 부합하는 캐릭터나 이야기를 떠올려야지, 하면서 이야기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작가들은 정답지로 채점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까?(내가 대답해줄 순 없는 문제다.) 나는 내가 가장 즐기고, 나에게 만족감을 주었던 작품의 느낌을 만들기 위해 ‘시퀀스’를 만지작거린다. 그 느낌에 집착하고, 그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을 구현하기 위해 고민한다. 내 접근 방향은 분명 이런 방향이고, 모든 걸 포괄하는 방식이 아닌 이런 방식이 ‘재미’를 설명하기 더 부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상 밖의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게 꼭 시퀀스의 배치나 플롯에서 생기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경우에도 일상적인 캐릭터보단 이상한 캐릭터를 좋아한다. 일상에서 만날 법한 캐릭터라면 일상에서 하지 않을 행동과 선택을 하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 의외성이 내가 이야기를 즐기는 방식이다. 장르는 이번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진 않겠지만, 장르적으로 본다면 스릴러가 내가 매력을 느끼는 장르다. 일상에서 보는 도덕적 범주를 넘어선데도 상관없다. 오히려 그런 주인공이 내가 즐기는 포인트이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것만큼이나 나는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즐긴다. 도덕을 벗어난 당혹감과 서스펜스, 서프라이즈의 배합은 언제나 즐거운 재미 요소다.(그런 콘텐츠를 ‘왜’ 즐기는지 묻는다면 나도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사람들은 왜 돈을 주고 귀신의 집을 즐길까 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귀신의 집에는 의미 같은 것도 없다.)
나같은 사람의 관점에서 재미에 대해 가장 흥미롭게 들리는 이론은 로버트 맥기가 이야기했던 ‘간극(The Gap)’ 이론이다. 맥기 선생은 재미라는 단어보다 ‘흥미(interest)’, ‘몰입(engagement)’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내가 보기에 한국적 맥락에선 차이가 없다. 그가 말하는 ‘간극(The Gap)’이라는 것은 ‘기대와 결과 사이의 간극’을 말한다. 부연설명하자면 ‘관객’이 가진 ‘기대감’(시나리오에서 어떤 요소를 보고 생기든, 시나리오 밖에서 가지고 온 것이든)과 이후 전개되는 ‘결과’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때 관객은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간극은 ‘예상 밖의 전개’에서 생길 수도 있고, ‘기대를 충족시키는 전개’에서 생길 수도 있다. 보통 이럴 땐 ‘재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간극은 반대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예상 밖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우리는 ‘재미 없다’고 느낀다.
구체적인 예를 떠올려보자. 형사 캐릭터를 소개하는 두 가지 방식의 예. 하나는 탕, 탕, 탕 총소리와 함께 사격연습을 하며 강력사건 걱정을 하는 모습으로 단번에 형사임을 소개한다. 그리고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내에게 향하는 안개 낀 차도에서 졸음운전을 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 형사는 산에서 발견된 변사사건을 마주하고 피해자가 죽은 길은 형사도 가야 한다며 크레인으로 가파른 돌산을 오른다. 아내에게 향하던 눈빛과 달리 사건을 마주한 그의 눈은 반짝이는데, 변사체의 신원 확인을 위해 변사자의 아내가 도착하자 유독 그의 눈빛은 더 빛난다. 또 다른 영화의 소개 방식은 다르다. 졸부 모습을 한 주인공이 불륜녀와 중고차 시장에서 중고차를 구입한다. 본처와 전화도 서슴치 않는 상놈처럼 보이던 그 졸부가 불륜녀와 차를 가지고 나오자 사뭇 분위기가 격해진다. 연기를 제대로 못한다며 미쓰봉을 탓하던 서도철 형사는 중고차 사기집단을 대상으로 위장수사 중이다. 그는 트렁크에 숨어서 본거지로 숨어들고 현행범이 변호사 타령을 하자 허위 공격을 만들어내 정당방위를 무기삼아 현행범을 족친다. 물론 수사로 늦은 밤에 귀가해도 아들에게 뽀뽀는 하고 자야 할 정도로 가정적인 남자지만.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위 두 가지 예시가 <헤어질 결심>과 <베테랑>이라는 걸출한 한국 영화의 예시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형사물 깨나 본 사람들은 <헤어질 결심>의 경우 시작부터 새삼 ‘이상한’ 방식의 형사 소개임을 알 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해준은 형사물에서 기대하는 형사의 모습과 다를 뿐 아니라, 형사 자체를 가지고 변주할 생각이 없다. ‘형사’라는 직업은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하게 털어놓고 시작한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가 타겟으로 하고 있는 장르와 현대의 관객이 ‘형사’란 소개를 받을 때 떠올리는 장르 사이에 간극을 불러일으킨다. 소재적으로 봤을 때 ‘형사물’로 보이는 이 영화는 사실 ‘필름 느와르’라는 특정 ‘장르’를 타겟으로 하고 있다. 도입부가 간결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박찬욱 감독이라는 관객의 기대감은 일반적인 형사물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필름 느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형사인 해준이 소위 ‘팜므 파탈’로서 의심스러운 여인을 만나는 과정을 기대하기 때문에 사건을 통해 형사를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간결한 소개 뒤에 아내의 집으로 향하는 씬이 나오는 이유는 그것이 팜므 파탈을 만나는 해준의 도덕적 딜레마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형사물이 넘쳐나는 현대에 형사 해준을 기대하고 서두를 여는 관객은 다소 예상을 벗어난 전개를 만난다. 그러나 팜므 파탈이 등장하는 필름 느와르를 알고 그것을 쉽사리 소환하는 관객은 빠르게 ‘이거 그거네’ 하고 새로운 기대감을 소환하며 전형성을 즐긴다.
<베테랑>은 그런 면에서 손쉽게 전형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그 전형성을 확보하는 방식의 변주와 리듬은 기대감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장인의 솜씨다. 베테랑의 오프닝 씬이 탕, 탕, 탕 사격연습을 하는 형사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중고차 시장에서 졸부와 불륜녀 연기를 하는 형사들 모습을 보는 시퀀스는 다소 상투적이고 재미없는 시퀀스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대뜸 사기꾼 같은 차림을 한 두 형사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가볍게 변주를 준 위장수사의 소개는 ‘관객’의 ‘기대감’을 오인했다가 쉽게 전형성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내용이 아직 성패가 알려지지 않은 시나리오로 왔을 때 우리는 ‘기대감’이라는 ‘음정’이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그 ‘리듬’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시나리오를 읽는 방식이 단순히 ‘문학적’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음악가들이 네 마디의 리듬과 음정을 섬세하게 다루듯 씬을 대하고, 한 악장의 흐름을 파악하듯 한 ’시퀀스’를 읽을 수 있다면 창작과 피드백에 엄청난 진전이 있을 것이다. 자 자문해보자. 나는 지금 시나리오라는 악보를 읽을 수 있는가? 읽을 수 있다면 다시 묻자. 나는 지금 시나리오라는 악보를 ‘충분히’ 읽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제서야 감독과 작가가 만든 이 재미가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인지 아닌지 물을 수 있다.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그때야 비로소 피드백을 주기 좋은 때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간극’ 이론이 구체적인 예시로 설명되긴 하지만, 관객마다 다른 기대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개별 관객의 ‘기대감’들은 그 수 만큼 제각각 일텐데 말이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우리가 ‘장르’라고 부르는 것을 반드시 거쳐가야 한다. 다음부터 바로 이 ‘장르’라는 놈을 다루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