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와 오른손으로만 먹어야 하는데요?”
“그럼 오른발로 먹을라꼬?”
격동의 7살. 나는 오른손이 너무 불쌍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갖는 연민이자 따짐이었다.
“젓가락질 잘해야 가정교육 잘 받았다는 소리를 듣제.”
밥 먹을 때마다 실시되는 ‘밥상머리 교육’은 7살의 반항심에 불을 지폈다. 그날따라 하필 콩조림 반찬이 나와 부들부들 떨면서 젓가락질을 할 때도 오른손만 써야 했다. 뿐만 아니었다.
개천에서 용 한두 마리는 어쩌다 날 수 있었던 그 시절.
그 용이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헛된 기대 속에 받아쓰기 조기교육에 들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오조 오억 만 번의 받아쓰기. 연필을 너무 오랫동안, 꽉 쥐고 있었는지 오른손에 찌릿찌릿 전기가 왔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살짝 왼손에게 연필을 넘겨주려는 순간.
“어허! 누가 왼손으로 글자를 쓰노? 오른손으로 똑디 안 잡나?”
또 오른손이었다. 7살의 나는 연필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두 손바닥을 활짝 폈다.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시선이 옮겨가면서 내 눈은 점점 세모가 되었다.
“왼손! 노니까 좋냐? 이건 불공평하잖아!”
어디선가 주워들은* ‘불공평’이라는 단어가 날 송두리째 흔들었고 그 반대말인 ‘공평’의 뜻은 얼마 뒤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유치원 생일파티.
한 달에 한 번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아이들은 한꺼번에 생일파티를 했었다. 생일파티에서 가장 기대되는 건 늘 받는 선물인 양말도 사탕 목걸이도 아니었다.
‘날 만지고 싶지? 그럼 어서 날 만져, 지금 당장!’
2단 생크림 케이크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달콤한 말로 나를 유혹했다. 나는 기꺼이 유혹에 응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나보다 빨랐다. 찰싹, 손등 위로 번개가 쳤다.
“착한 어린이는 공평하게 나눠야지?”
이것이 바로 공평이란 걸 몸소 깨달은 나는 오른손과 왼손에게 공평하게 일을 나눠 주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는 것은 물론 왼손도 일을 하도록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하는 7살의 나.
“착한 왼손은 오른손과 공평하게 일을 나눠야지?”
무기류 연마.
나의 왼손은 무림의 고수로 다시 태어났다. 가위를 비롯한 칼, 집게 등 무기류는 모두 왼손의 몫이었다. 물론 어른들 앞에서는 무기류 사용 역시 오른손이 하는 척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나는 왼손으로 모든 무기를 섭렵한 숨은 무림의 고수이기도 하지만 평화주의자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생애 첫 따짐은 나를 후천적 양손잡이로 만들어주었다.
밥 먹을 때와 글자를 쓸 때는 오른손, 각종 무기류를 사용할 때는 왼손.
비로소 완성된 공평한 노동의 재분배.
뭐 선천적 양손잡이가 아니라 그런가 머리 좋은 거랑은 상관이 없는 거 같다는 주변의 증언들이 속속 이어지고 있지만. **
* 아마도 당시 티-브이 드라마에서 들은 단어였을 것이다. 참고로 TV가 아니라 티-브이라고 발음해줘야 맛이 산다. 암튼 티-브이 드라마는 예나 지금이나 내 인생의 멘토. 드라마 만만세!
** 양손잡이 용은 결국 날지 못했고 개천에서 유유히 놀고 있다. 오른손, 왼손잡이 다른 용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