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궁금증
한국의 스릴러와 범죄 영화들을 보면 수 많은 살인마들이 등장한다.
그중 대표적으로 4885라는 숫자 유행어를 만들어낸 <추격자>의 지영민, <악마를 보았다> 장경철등이 있다.
이 두 캐릭터들과 한국 영화들의 살인마 캐릭터들은 단순히 잔혹하고 무자비한 범죄자라는 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캐릭터들은 대부분 지역사회에 잘 녹아들어, 적응하며 살아가던 일반적인 시민으로 그려진다.
지영민은 택시기사로써, 장경철은 학원차를 끌고 다니던 평범한 시민으로써 특별히 의심 받지 않는 외형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사이코패스와 같은 감정 공감 능력에 결여는 보이지만, 이들은 다른 캐릭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일상적인 캐릭터이다.
반면에 할리우드 영화의 살인마 캐릭터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써 그려진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 <조디악>의 조디악은 처음부터 일반 시민들과는 거리가 있다.
비범한 능력이 있거나, 뛰어난 지능으로 수 많은 경찰들과 시민들을 농락한다.
지영민과 장경철등 한국 영화 살인마 캐릭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이 있다.
한니발은 정신과 의사이자 천재적인 지능을 갖고 있는 캐릭터이고,
안톤 쉬거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마치 죽음을 초월한 초월적 인물로 그려진다.
조디악은 직접적인 등장은 없지만, 수 많은 퍼즐과 암호들을 던지며 대중과 수사기관을 조롱한다.
한국영화의 살인마 캐릭터들은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사람처럼 그려지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살인마들은 괴물이거나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써 그려진다.
이 차이는 단지 연출 방식이 아닌, 문화적 정서와 사회 인식의 차이를 반영한다.
# 한국식 살인마
<추격자>의 지영민,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 같은 인물들은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지녔지만, 외형상으로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민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살인마 캐릭터들은 왜 이웃처럼 그려질까.
이것은 한국영화의 고유한 서사 윤리와 현실 인식 떄문이다.
한국영화의 연쇄살인마들은 자주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다.
그 때문에 살인을 단순한 오락이나 쾌락으로 다루는 방식은 도덕적으로 금기시된다.
서양권 영화들이 종종 살인마의 시점을 따라가거나, 천재적인 악당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드는 반면,
한국영화는 항상 피해자의 고통과 공동체의 붕괴에 초점을 맞춘다.
<살인의 추억>은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을, <추격자>는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 <범죄도시>는 왕건이, 흑사파 사건
살인마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실제 범죄를 다룬 <소원>, <도가니> 등
수 많은 영화들이 실화로써 그려졌다.
이러한 영화들은 살인을 서사적 흥밋거리로만 소비하지 않기 위해,
한국 영화는 범죄자를 '매력적인 괴물'로 만들기보다 현실 가능한 악으로 그린다.
관객이 범죄자에게 환상을 품지 않도록, 그들은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시민으로 등장하고,
극의 끝에서는 반드시 정의에 의해 제압된다.
지영민과 장경철 역시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를 남겼지만,
결국 그들은 '무력화되어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묘사 방식은 단지 윤리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집단과 공동체 중심의 문화 안에서 개인을 위치시켜왔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와 공동체의 방임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살인자 역시 우리 중 누군가였을 수 있다는 불안을 전제로 다뤄진다.
살인자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무언가의 결과물이다.
# 맺으며
실화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개봉할 때마다, 흐지부지 잊혀졌던 실제 사건들이 다시금 재조명받는다.
언론과 관객의 관심이 피해자에게 다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억울함이 해소되고 도덕적 관념이 새롭게 쌓이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러나 서사적으로는 뚜렷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순간, 이야기는 오락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되짚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워진다.
서사의 가능성은 크게 좁아지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며, 악은 반드시 응징당해야 한다는 도덕적 프레임이 고정된다.
이 때문에 실화 영화는 비슷한 구성과 감정선, 즉 고통 → 분노 → 분투 → 정의 실현이라는 공식을 반복하게 된다.
그 자체로 의미는 있지만, 서사적 다양성이나 감정의 변주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 <소원>처럼 피해자의 치유와 일상 회복을 중심에 놓고 감정선을 조심스럽게 설계하지 않는 이상,
관객에게 단순한 슬픔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하기는 어렵다.
실화는 강력한 힘이 있지만, 그만큼 서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좀 더 나은 한국 영화를 위해서
우리는 이 윤리성과 서사의 변주 중간의 균형점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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