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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달라는 진심

행복하세요

by 딱정벌레
사진=웅진지식하우스

최근 허지웅 작가의 신간 에세이를 읽었다. '살고 싶다는 농담'. 책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허 작가가 항암 치료를 졸업한 이후 나온 첫 책이기도 하고. 그가 우리 아버지와 같은 병을 앓았기 때문에 평소 관심이 갔다. 병기는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허 작가의 투병기는 아니다. 투병과정 이야기도 중간중간 나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만 그가 투병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생각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을까' 생각도 해보고.

허 작가 이야기에서 공감 간 내용 중 하나는-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우리 모두에겐 동지가 필요하다는 것. 그가 항암 치료를 받으며 힘겨웠던 어떤 밤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내가 그 심정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어떤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털어놓기도, 들키는 건 조심스럽다. 날 어떻게 가치 판단할지 두려우니까. 날 나약한 인간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 TMI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내 절망을 사람에게 노래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들고. 어떤 고통이나 슬픔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니. 물론 절망을 노래하기만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듣는 사람도 짜증 나기는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혼자 끌어안고 그 마음을 포박한다.

사진=픽사베이

혼자서도 그걸 건강하게 다루고 더 높은 경지로 승화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걸 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는 마음도 있다. 사람에게는 측은지심, 선의, 인정이 있다. 누군가에게 손을 벌렸을 때 어떤 요청은 거절당할 수도 있지만. 그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면 손잡아주기도 한다. 도움을 구할 때 상황을 잘 설명하고 예의를 갖춘다면 나 몰라라 할 사람은 드물다. 실질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 공감하기도 하니까. 그 공감이 사람에게 큰 힘을 주기도 하고.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도 그런 밤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했다. 이 책에는 그가 세 번째 항암 치료를 받고 난 뒤 몸 상태를 설명한 내용이 있다. 손이 부어서 물건을 집을 수 없고, 손발 끝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루 종일 구역질하기도. 아버지는 가족에게 좀처럼 고통을 호소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많이 참고 있다는 생각은 했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내가 그 수준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항암 치료 한번 받고 오면 일주일 내내 일어나지 못하고 뻗어있다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전해 듣는 정도였다. 그러다 겨우 회복하면 다시 항암 치료받으러 갈 날이 다가오고.

허 작가 책에 나온 항암 치료 이후 몸 증상은 나조차도 가족에게 못 들었던 게 많았다. 아버지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통을 견뎌내야 했던 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마음에 귀 기울이지 못해서, 혼자 힘들게 해서 죄송했다. 허 작가가 '재발하면 치료할 생각이 없으며 항암은 한 번이면 족하다'라고 쓴 내용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고 지내는 취재원 분도 부모님이 재발하셨을 때 항암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다른 치료법을 알아보고, 치료하느라 애쓰셨다고 하신 게 떠올랐다.

사진=픽사베이

가족으로서 그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싶기도 했다.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싶지만 은연중에 신경은 쓰이니까. 아버지가 한창 치료받으실 때 내게 해주신 말씀이 있다. 행복해야 한다고. 누구도 그걸 박탈할 수 없다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새로 일을 시작하는 데 이런 일이 있어서,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속사포처럼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셨다. 고통 속에서 나온 당부 말씀이라 하나도 허투루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 전에는 행복해야겠다는 생각도 크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원하는 게 그거라면 난 행복하고 싶다고. 그 뒤로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모두 아버지를 위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기사도 아버지를 위해 써야겠다고. 아버지가 내 글을 봐줬으면 좋겠고. 그 글을 좋게 봐주면 더 좋고. 그게 힘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고. 좋은 글을 쓰면 좋겠지만. 그냥 아버지가 내 글을 많이 봐주면 좋겠다고. 더 건강해지셔서 내 글을 오래, 많이 봐주면 좋겠다고.


권순관, '나무가 되는 꿈'. 출처=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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