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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성장 욕구를 돋워준 네 여성

함께 공부하고 힘을 모아 변화를 일으킨다는 건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요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 연방 대법원 대법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긴즈버그 대법관을 수식하는 표현은 많다. 여성 대법관, 진보 성향 대법관, '젠더'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주인공, 최근 타계한 유명인 등. 내가 긴즈버그 대법관을 알게 된 건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을 보고 나서다. 그 영화에서 내가 영감을 받은 건- 진보 성향, 페미니즘 이런 것보다. 여성이 공부하고 똑똑해져야 하는 이유를 실감했달까. '여자만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의미는 당연히 절대 아니다.

여성이 공부하고, 법조인이 되는 게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 그 시절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말도 안 되는 인식. 긴즈버그가 직면한 편견, 이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비슷한 인상을 받은 다른 영화도 있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미스 비헤이비어'도 그렇고. 애 엄마에 이혼녀인(파트너는 있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했는데- 수업 시간에 그를 건너뛰고 남학생들이 자기들끼리 토론하는 장면이 있었다. 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런 장면을 보니 '여성은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하고,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은 귀찮고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여성이 학교에 다니고, 공부한다는 게 당연하지 않은 시절이 있었고. 이건 매우 소중한 기회라고. 알아야 힘이 생기고. 세상에 지지 않고, 속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한다. 난 공부 편식이 심했다. 지금도 솔직히 그렇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만 열심히 공부하고. 싫지만 알아야 하는 건 소홀히 했다. 나이 들고 보니 그건 후회가 된다. 싫어한 과목에도 정 붙이고 공부하면 뇌가 더 트였을까 해서.

크레마 샤인에 저장한 세권의 책. 사진=딱정벌레

올봄에 코로나 19 대유행이 본격화되면서 집착이 심해진 게 여러 가지 있다. 책도 그중 하나. 그전에도 책은 읽었지만. 세상이 불확실해지고 불안해지다 보니 폭식하듯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으면서 평정심을 찾으려 했다. 그 무렵, 배움이나 학습 관련 책을 여럿 읽었는데. '배움의 발견(타라 웨스트오버)',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이소영)', '누구도 멈출 수 없다(멜린다 게이츠)'였다. 세 책은 공통점이 있었다. 배움, 성장이 세 책을 한 번에 관통하는 공통점이랄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소영, 멜린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다. 멜린다 게이츠도 원래 MS 직원이었으니까. 타라 웨스트오버는 직접적으로 MS와 관련 있기보다- 게이츠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빌 게이츠가 그의 책을 추천했고. 이밖에 이소영, 멜린다 게이츠 책은 함께 공부하고 머리를 맞대며 성장하는 가치를 중시했다. 멜린다 게이츠 책에서는 기술 업계에서 여성 비중이 낮은 점, 여성이 기술 업계에서 가지는 의미가 와 닿았다. IBM이 취업하고 싶은 직장 1순위이었던 시절,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타트업이었는데. 그때 MS에 있었던 스타트업 특유의 분위기를 다룬 이야기도 생동감 있고 재밌었다.

세 책 모두 유명한 책이라서 내용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내 인상과 느낀 점을 주로 말하자면- 배움의 발견은 '사람이 왜 교육받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다시 상기했다. 저자는 종교적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독실한 신자인 가족에게 가스 라이팅을 당했는데. 그러다 대학에 갔고,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삶이 바뀌었고, 자신을 옭아맨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면 평생 왜곡된 가치관이 주입된 상태에서 학대받으며 스스로를 괴롭혔을 것이다. 자신이 받는 피해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이 책에서 울림이 컸던 문장은- 역시 맨 마지막 구절이다.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사진=픽사베이

이소영 저자 책은 함께 공부하고, 자신이 얻은 걸 여러 사람에게 나눌 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는 사람이고. 내가 받아들인 메시지는 그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는 시대에 '비대면으로라도 더 연결되고, 모임에 참여해야겠다'라고 생각한 데 이 책이 영향을 줬다. 사실 난 내가 아는 걸 나누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단한 지식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물론 스터디는 했다. 거기서 내가 아는 걸 공유하긴 했다. 좋은 정보(?)도 있었지만. 솔직히 나만 알고 싶은 걸 다른 이가 알고 더 발전하는 걸 경계했다. 내가 그보다 못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었다. 내게 위협(?)되지 않는 것만 나누거나?

배움, 나눔에 속 좁은 나. 내게 돌아오는 게 없으면 지식을 나누는 게 손해라고 생각했다. 늘 계산하면서 아는 걸 나눴다. 그래서 크게 발전하거나 성장하지 않은 듯. 다른 이에게 지식을 나누고 함께 공부하며 발전하는 사람은 시야가 넓다. 생각도 크게 하고. 멀리 내다본다. 그래서 통찰도 남다른 듯. 결은 다를 수 있지만 오픈 소스가 혁신 기술이 나오는 데 주효한 역할을 한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함께 지식을 나누는 걸 염두에 두고 공부하면 더 열심히 공부한다. 내가 아는 걸 나누려면 내가 잘 알아야지 설명도 잘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꼬마 선생님'을 운영한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다. 동료끼리 가락 짓기를 가르치게 한 또 다른 담임 선생님도.

멜린다 게이츠 책은 세 권의 책 가운데 내게 가장 큰 동기부여를 준 책이다. 왜 기술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기술 콘텐츠를 쓰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 관점을 정리하는 데 도움됐다. '기술 분야는 인류 미래에 더욱더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고,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산업'이라는 점, '미래 인류가 살아갈 생활방식을 만들어낸다. 여성이 기술 분야에 진출하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에도 힘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와 닿았다. 어쩌면 여성으로서 내가 기술 콘텐츠를 쓰는 것도 미력하게나마 스스로 힘을 주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상관없지만 내 맥북 에어와 모노클의 앙트프리너 잡지. 사진=딱정벌레

멜린다 게이츠는 기술 업계와 벤처 캐피털 분야에 여성 비중이 낮은 문제점을 이 책에서 지적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 사무직 성격이 덜하고 그보다 복잡하다는 인식이 커지자 관리자들이 계속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을 뽑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훈련시키기 시작했다'라거나 '벤처 캐피털 파트너 2%만이 여성이며, 벤처 캐피털 자금 2%만 여성이 세운 벤처 기업에 투자되고 있다'라는 내용이 그랬다. 스타트업 자금 조달은 특정 집단, 특정 부문, 특정 학교 출신 등 투자자와 관련된 네트워크 출신에게 집중되기 쉽고.

참고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은 기술 분야 노동력 전체에서 3%, 라틴계 여성은 1%에 불과하며, 여성은 기술 분야 노동력의 25%를 차지하며, 실제 기술 관련 일을 하는 경우는 15%에 불과하다'라고 이 책에서는 설명한다. 저자는 '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미래 생활방식을 만들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함께 그것을 결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업계 종사자가 특정 인종, 성별, 기타 집단에 편중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책이 두껍고 모든 내용이 흥미로운 건 아니지만 이 내용 때문에 이 책을 잘 봤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세 권의 책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이제야 남긴다. 이번 주에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을 3일간 들었는데- 유다시티에서 말하는 비전이 기억에 남았다. 대학을 졸업하면 성인이 공부할 기회가 적다고. 코세라나 유다시티, 유데미 같은 플랫폼은 성인에게 점점 희미해지는 교육 기회를 주고 그 중요성도 다시 환기한다. 책 읽는 것과 별개로 스스로 뭔가 배우려 하지 않아서 반성도 들고. 세 책도 떠올라서 이번 주에 꼭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감흥도 휘발됐지만. 정말 중요한 메시지만 기억해서 좋은 점도 있다. 생각나는 대로 써서 이 글에 짜임새는 부족하다. 부끄럽지는 않다. 오늘 참 많은 감정을 느끼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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