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좋았던 몇 가지
먹을 게 없어도 볼거리가 많아 좋다
사진=딱정벌레지난 주말 서울 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매년 6월에 열리던 행사인데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미뤄졌다. 예전처럼 코엑스에서 대규모로 행사를 벌일 수 없지만.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온오프라인 행사로 분산해서 행사를 열고 있다. 메인 전시는 명동 커뮤니티 마실에서 하고 있다. 괜찮다고 생각한 건 서울 시내 독립서점과 연계해서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 난 메인 전시가 열리는 명동 커뮤니티 마실에 다녀왔다. 마실에서는 주제별로 책을 큐레이션 하고, 디지털 북페어 전시도 했다. 오프라인 발표도 여기서 하고.
내가 가장 좋았던 건 디지털 북페어 전시였다. 이전에도 도서전에서 디지털 책 관련 전시를 안 한 건 아니었는데. 올해는 특히 좋았다. 디지털 출판 역사 13년을 개관했다. 연도별로 주요 이슈를 해시태그로 달아서 벽이나 책상에 활자로 썼다. 관련된 내용을 종이로도 인쇄했는데 한 장씩 북 찢어갈 수 있었다. 그걸 모아 묶어서 책도 만들 수 있고. 연도별로 킨들이나 아이폰 같은 기념비적인 단말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기기, '채식주의자'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그해 화제가 된 책도 함께 비치했다. 오디오북, 증강현실 책 코너도 있고.
내가 이 전시가 정말 좋았던 이유는- 첫째, 공부가 많이 됐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디지털 출판 13년 역사를 다루면서 한해도 빠뜨리지 않고 그해 출판업과 관련해서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일목요연하게 담았다. 아이폰이 나온 2007년이 출판업계에서도 기념비적 해였음을 이 전시에서 배웠다. 또 전시 정보가 과다하지 않고 필요한 주제어만 표시해도 그해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장문 설명도 있긴 한데 적당한 분량이다. 핵심만 잘 짚어내서 설명글 쓰신 분.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너무 잘하신 것 같다. 배우고 싶네요.
둘째, 디지털 출판 현황을 다양하게 보여줬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디지털 출판 별 거 있나?' 이 생각을 먼저 했다. 내 머릿속에는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그건 내 무지였다. 난 내가 책에 관심 많은 줄 알았는데 모르거나 간과한 게 정말 많았다. 웹소설이나 구독 서비스 등. AR 북 존재도. 시각장애인 독서를 도와주는 기기를 전시한 것도 좋고. 누군가에겐 독서가 당연하고 편하며 귀찮은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간절한 일이고. 그러니 읽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읽고 늘 감사해야겠다.
사진=딱정벌레셋째, 체험 콘텐츠가 좋았다. 여기서 말하는 체험 콘텐츠란 앉아서 헤드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듣거나, 연도별 출판업계 사정을 담은 종이를 모아서 바인딩 북을 만드는 거. 소소한 체험거리지만 재미는 있었다. 오디오북은 편하게 앉아서 듣다 보니 나른하기도 하고, 몸도 이완돼서 좋았다. 문득 '오디오북 듣는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럴 필요는 없는데. 본인 헤드폰 끼고 카페 가서 듣거나, 집에서 편하게 앉아서 듣고 말지. 편지 쓰는 공간까지 요즘 운영하는 걸 보면 오디오북도 안될 건 없을 듯하다. 바디프렌드 안마 카페처럼?
넷째,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원래 출판 혁명도 기술이 이끌긴 했지만- 그걸 잊고 살 때가 많았다.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실감하기 어렵긴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디지털 출판 역사는 기술 혁명의 역사구나'라는 게 와 닿았다. 콘텐츠로 범위를 넓혀서 봐도 그렇고. 2007년은 정말 대단한 해였다. 아이폰이 나오고, UCC 열풍이 불고. 4G, 5G 시대 개막이 콘텐츠 유형에 미치는 영향이나. 디지털 출판 역사에서 아마존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고. 출판업을 볼 때, 책만 보면 안 되고 콘텐츠, IT 기술로 시야를 넓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디지털 북페어 외에 마음에 들었던 점을 꼽는다면- 도서전 본질에 좀 더 충실한 느낌이 좋았다. 언제는 충실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코엑스에서 할 때는 솔직히 '먹자판' 느낌도 강했다. 특정 코너에 갔을 때만 그렇긴 한데. 지난해 도서전에는 대전 성심당 빵집이 참여했다. 튀김 소보로 냄새가 진동하는데- 나도 그 빵 좋아하지만, 도서전 아니라 다른 전시를 가도 대체로 그렇긴 한데, 먹거리를 파는 곳 특성상 어쩔 수 없긴 한데- 그쪽이 너무 붐비고 복잡하다 보니, 음식 냄새를 맡으니 좀 불편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이런 생각도 들었고.
올해 도서전에는 커뮤니티 마실만 가봐서 모르겠지만 그런 건 없었다. 강연은 온라인으로 중계하기도 하고. 분산해서 행사를 개최하다 보니 작년보다 규모는 작지만- 다 버리고 딱 본질만 남긴 느낌이 들어 좋았다. 문장으로 치면 주어와 술어만 남은 문장? 커뮤니티 마실 전시도 너무 좋았고. 디지털 출판은 도서전에서 그리 메인 전시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꽤 존재감이 컸다. 전시도 너무 잘 기획했고, 내용도 좋고. 내실 있게 구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도 시끄럽지 않아서 좋았다.
사진=딱정벌레크게 행사를 개최할 때도 나름 묘미는 있다. 민음사나 창비 같은 대형 출판사 부스는 꽤 그럴싸하게 꾸며놓고. 사진 찍기 좋은 볼거리도 있었다. 근데 그게 남의 SNS로 볼 때는 괜찮은데 직접 가서 보면 그 정도는 아닌 것도 있었다. 인기 작가 팬사인회도 열어서 한번 얼굴을 구경하기도 하고. 지역 출판사에서도 참여하기 때문에 고향에서 온 출판사 전시를 보는 것도 좋았다. 모노클처럼 잡지 과월호도 저렴하게 사고. 모노클 한국 특집도 거기서 샀다. 작게 전시하면 이런 묘미는 느끼기 힘드니. 출판업계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참가자 입장에서 호불호를 가른다면 난 올해 버전이 더 좋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매년 6월에 도서전 가는 게 쏠쏠한 재미였는데- 올해는 10월에 누렸지만 가을에 경험하는 것도 괜찮았다. 오랜만에 명동 주변을 걷는 것도 반가웠고. 안타까웠던 건 그 복잡하던 명동이 사드 사태 때보다 더 을씨년스러워졌다는 것. 문전성시를 이루던 마스크팩 가게는 문 닫았고. 을지로에 롯데백화점, 명동에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고, 명동 거리에는 우리 관광업계 큰손 중국인이 가득 메우다 보니 유통 1번지 느낌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저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