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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자유는 누구에게 이득이 됐을까

저는 감사합니다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살면서 감사함을 느낄 때는- 내가 세상에서 누리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실감할 때인 듯하다. 공부하는 것도, 밖을 활보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내가 한 행동에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 권리이지만 그게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절이나 지역이 있으니. 모두 소중히 여기고 그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얼마 전 읽은 '사회학 공부의 기초'에서 출판의 자유를 다룬 내용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

예전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을 역사 속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글 쓰는 사람으로 계속 살다 보니, 출판이 금속활자나 인쇄를 넘어 디지털로 확장한 시대를 경험하다 보니- "정보와 생각이 문자의 형태로 재생산돼 대중에게 확산된 최초 시기" 의미가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 이제야 실감한다. 금속활자를 계기로 부유한 계층만 소장하던 책을 나 같은 사람도 볼 수 있게 됐다. "글을 읽고 쓰는 게 특정 계층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됐고, 식자율이 높아지면서 생각, 정보, 혁신, 창의가 함께 퍼져 나갔다"는 해석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구텐베르크 이전에 이미 금속활자는 발명됐고, 그게 아니라도 언젠가는 발명될 수밖에 없는 운명일 수도 있지만. 혁명적 계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내가 글을 읽고, 써서 금전 보상을 받는 건 어렵거나 더 늦어졌을지도 모르고. 새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결코 당연하지 않으며, 역사에 빚지고 있고, 정말 감사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가끔 글쓰기 귀찮고 샛길로 빠지고 싶을 때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되새긴다. 글 쓰는 이유를 다시 떠올리고. 내게 소중한 얼굴을 하나둘 떠올린다. 그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해지고 싶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동기부여를 주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효과는 있다.

사진=픽사베이

평소에는 '사람들이 읽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라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그러고 보면 언론, 출판을 비롯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사람들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고. 신중하게 만들고, 그 기초가 되는 지적 자양분이 편향되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세상을 바로 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온전하기만 하기는 어렵겠지만. 애초에 시야는 한계가 있고. 이를 최대한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해봤다. 다양성을 토대로 삼고.

권력층이 언론과 출판 자유를 통제하려던 시기를 되새기는 것도 뼈를 때렸다. 저자에 따르면 "권력층이 정보와 사상 흐름을 장악하기 위해 인쇄기를 통제하려 했다"라고. 루마니아 정부가 모든 타자기를 검찰에 등록시킨 게 1980년 일이라는 건 놀라웠다. 반정부 인쇄물 출처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는데- 루마니아 정부가 아니더라도 언론, 출판 통제(지금도 없지 않지만)가 있던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난 민주화 시기에 태어난 게 행운이다 싶다. 좀 더 일찍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살 수 있었을까. 삶이 많이 달랐을 것 같다.

과거에는 출판의 자유가 재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존재했다는 분석도 동기부여를 준다. 마이클 패런티 말에 따르면, "출판의 자유는 인쇄기를 소유한 사람이나 신문 혹은 잡지 지면을 살만한 재력을 지녀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 존재했다"라고. 윤전기 권력. 인쇄매체가 퇴조하고 디지털로 출판도 하고 책이 아니라도 누구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할 힘을 얻었다는 건 의미가 정말 큰 일이다. 누구나 창작자가 되는 세상. 여기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창작 접근성이 낮은 곳도 있다. 인터넷이든, 창작도구든. 그래도 과거보다 기회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린 건 굉장한 진보. 또 한 번 감사했다.

사진=픽사베이

이게 기업 통제를 받는 오늘날 현실은 독자로서 내 책무를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사상과 정보의 대중적 흐름은 합병과 인수를 통해 그 규모를 늘리면서도 수적으로 점점 줄어드는 기업들의 통제를 받고 있다. 텔레비전부터 라디오, 영화, 책, 잡지, 신문 등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기업의 인수 합병 속도, 권력과 통제력이 강화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기에도 벅차다"라고 분석한다. 사상과 정보 흐름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는 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독립적인 뉴스와 정보, 분석을 보여주는 다양한 매체가 사실은 수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몇몇 기업에서 나온 것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야기였다. 언론이든, 출판이든- 기업화됐기도 하고. 언론과 출판이 아니라 방송 채널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도. 콘텐츠 제작과 유통은 이미 기업화됐다. 신진 세력은 콘텐츠 제작, 유통업자는 합병과 인수로 세를 불리고 있고. 저자 분석대로 그 속도가 정말 빠르다. 업계 관계자가 아니면 저자 말대로 어디가 누구 소유인지 알기 어렵다. 쿼츠가 유자베이스, 파이낸셜타임스가 닛케이 소유라는 사실에 관심 있을 일반인은- 평소 미디어에 관심 많은 이, 학계 연구자, 업계 관계자일 듯.

하지만 우리가 좋은 콘텐츠를 접하는 것도 기업화된 덕분이다. 굳이 신진세력이 아니라도- 전통 미디어도 기업이고, 그들도 사상과 정보의 대중적 흐름을 통제하고 싶어했다. 그 지위는 많이 약화되고 있고. 상황 파악을 못하고 최후의 발악을 하는 이들도 있고. 문득 어느 지역신문에서 기초의회 폐지를 찬성하는 이유를 "그래야 우리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당시 거기에 있던 지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의제를 설정하고, 영향을 미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건데- 기초의회가 없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진=유유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렀. 출판의 자유는 민주화됐지만 기업화됐기에 거기서 나온 콘텐츠가 현재 특정 사회구조나 지배적 흐름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데 돕는, 특정한 성향에 함몰될 가능성은 따져봐야 하는 듯하다. 언론 보도를 다양하게 봐야 할 이유와도 같은데- 자신의 생각이 그 성향과 잘 맞고, 그런 콘텐츠가 자신의 논리를 더 강화하는 데 도움된다고 보면 그걸 열심히 섭취하겠지만- 다양한 생각에 열려 있고 싶다면 콘텐츠를 접할 때 이런 가능성을 늘 염두해둬야 할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출판의 자유나 콘텐츠 시장이 '제로 투 원'처럼 되는 건 위험하고. 현상이 이미 그러면 어쩔 수 없겠지만.

사회학 공부의 기초는 좋은 책이었다. 사회학 의미를 다룬 내용이 울림을 줬다. 저자는 "이 세상에는 불필요한 고통이 너무 많고", "이 상황을 바꾸려면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자신이 사회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사회학을 '실천' 영역으로 보는 듯했다. 대부분 학문이 실천을 염두하겠지만- 그는 "사회학으로 하나의 현상이 다른 현상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작은 것으로도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사진=픽사베이

'사회학을 실천한다'는 표현도 쓰는데- "사회학이 삶의 본질과 마주하고, 나 자신을 계속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이 와 닿았다. 형태만 어슴프레 남은 '어떤 의미'에 언어를 되찾아준 느낌이랄까. 결론은 "사회학은 우리 자신에 관한 학문이고, 세상과 우리 관계에 관한 학문"이라는 것. 난 대학시절 복수전공을 따로 하지 않았다. 타과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전공 수업을 가장 많이 듣고 싶었다. 전공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들은 학과 수업은 '사회학과' 수업이었다. 정치학과 연결됐기도 하고. 흥미로운 커리큘럼도 많았다. 문화사회학, 정보사회학, 가족사회학, 민족집단론 등.

그보다 더 사회학에 관심 간 이유를 꼽는다면- '나는 왜',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사회학만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 아무래도 사회학 분석을 먼저 찾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을 읽다 보니 대부분 공부가 그렇겠지만- 나를 알기 위해 사회학을 알고 싶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은 사회학 특성상 구조를 분석하는 내용이 많다. 덕분에 지금 내가 누리거나 경험하는 현상에 깔린 구조를 오랜만에 생각해봤다. 그동안 살기 바빠서 그 생각을 잘 못한 주제. 그걸 다시 생각하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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