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이 부족해도 나쁘지 않은 이유
한우물과 문어발 차이
사진=픽사베이대학시절 내 전공이나 사회에서 내 담당 분야는 전문성을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기자였을 때는 유통과 IT를 담당했다. 현재는 기술 작가로 인공지능 콘텐츠를 쓴다. IT는 결이 달라도 정치외교학이나 유통업은 누구나 한 마디씩 거들고 쉽게 품평하는 분야다. 이 분야에도 전문가는 있다. 이쪽으로 업을 계속 쌓아온 사람도 있다. 유통업은 소비재 상품과 관련돼 있어서 소비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한다. 정치도 성인 이상이면 다들 유권자이고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분야다 보니 접하는 정보도 많다. 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관심과 경험이 희소한 분야가 아니니 모두가 정치 전문가, 유통 전문가다.
내 전공이나 담당 분야가 경쟁력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대학 전공은 학교를 졸업했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담당 분야는 어느 순간 더 안 하고 싶고 다른 분야를 맡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빈틈을 찾아서 내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싶지만.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상할(?) 때는 내 전공이나 담당분야를 쉽게 보고 하는 말을 들을 때다. 유통이 그랬는데- 다른 분야와 비교해서 쉽게 보고,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라고 보고 아무 말 대잔치하는 걸 듣곤 했다. 소비는 누구나 한다. 그러나 뒷단에 작동하는 사업 운영은 결이 다른데 현상만 갖고 전문가인양 아무 말하는 걸 들으면 속이 쓰렸다. 내 지적 오만일 수도 있지만.
기자는 전문성을 쌓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부분 기자 출입처는 정기적으로 바뀌니까. 물론 한 분야만 하는 기자도 있긴 하다. 통신만 담당하거나. 유통만 담당하거나. 모 매체는 특정 분야를 5년 이상 출입하면 '전문 기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도 한다. 한우물만 판 사람 가운데에는 부서 바뀌는 걸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그게 이직 사유가 되기도. 부서를 안 바꿔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계속 한 분야만 담당하면 시야를 넓히기 어려우니까. 자신의 경쟁력도 부족할 듯하고. 사람마다 입장은 다르다. 한분야만 계속하고 싶은지, 바꾸고 싶은지. 그러나 바꾼다고 적응기를 꼭 주는 건 아니니까 어려운 일이다.
사진=픽사베이기자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이길 요하는 분위기였다. 시니어가 되면 모르겠는데 주니어일 때는 그런 듯했다. 스페셜리스트 길을 가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기자는 담당 분야가 바뀌는 걸 전제하니까. 누군가는 그걸 싫어하기도 한다. 좀 적응해서 이제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겠다 싶을 때 부서를 옮기니까. 새로운 사람이 적응하는 동안 전문적인 기사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그러나 제너럴리스트를 나쁘게 볼 건 없다. 전문가 시대, 전문가 독재라는 말도 있지만- 창의성을 요하는 분야라면 전문성을 상징하는 깊이보다 '폭'이 더 중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늦깎이 천재의 비밀' 이야기가 그랬다.
이 책은 전문성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전문성을 강조하기보다 늦되더라도 제널리스트가 요즘 시대에 맞는 창의성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번 글에서는 시도와 실천의 중요성 주로 다뤘는데- 전문성도 없으면서 기술 콘텐츠를 쓰는 나 같은 문과생에게, 아직도 마음이 많이 움츠러든 내게 용기가 되는 내용이 많았다. '내가 전공자가 아니라서 걱정스럽다'라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때 '본때를 보여주겠다'라며 혼자서 이를 갈았다. 계속 이런 글을 쓰려면 저런 시선으로 보고 내게 이런 말 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어디에나 있겠다 싶다. 그 우려를 반박하려면 잘해야 한다.
이 책에는 전문성이 부족한 내게 자신을 웅변할 근거가 될만한 내용이 나온다. 내가 쓰는 글이 창의적일 필요는 없다. 비전문가는 전문가라면 당연하게 넘기고 갈 부분에 의문을 갖고 질문할 수 있다. 그 답을 토대로 더 쉽게 글을 쓸 수도 있다. 기술로 치면 상용화 수준으로 글을 쓰는 데 도움될 수 있달까. 특히 통신과 인터넷에 힘입어 아마추어도 정보 조각을 모아서 잘 조합하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 결은 다르지만 노코드 개발 소프트웨어도 떠오른다. 비개발자 출신 창업자가 나오는 데 이런 소프트웨어가 도움될 수 있어 앞으로도 유망하다는 분석도 있다.
사진=픽사베이"'전문가형의 기여도는 특히 1985년경에 정점에 달했어요. 그 뒤로 급격히 낮아지다가 2007년경에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는데, 자료를 보면 최근 들어서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그 이유를 알아보려 애쓰고 있지요.' 그는 현재 추세의 원인을 콕 짚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가설은 그의 조직이 이제 예전보다 전문가형을 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폭넓게 이용 가능해지면서, 단지 어떤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고용할 필요성이 줄어들었어요. 사실상 지식을 누구나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통신 기술이 특정한 협소한 문제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초전문가의 수를 제한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룬 획기적인 발견이 영리하게 응용하는 일을 하는 이들, 즉 그 세계의 요코이들에게 금방 널리 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중략) 돈 스완슨이 예측했던 이 추세는 연장되면서 요코이 같은 연결자들과 석학형 혁신가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오더커크는 내게 말했다. '정보가 점점 널리 퍼지게 되면서, 전문가보다 더 폭넓게 보면서 있는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일을 시작하기가 훨씬 쉬워졌어요."
특히 만화책에서 개인의 폭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내용도 흥미로웠다. 1970년대 만화책 창의성이 폭발한 데에는 만화 인기에 따른 검열 기준이 완화된 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중심에는 역시 마블과 스탠리가 있다. 연구자들은 반복 학습이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업력도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데 꼭 도움된 건 아니다. 핵심은 바로 경험의 폭이었다고. 얼마나 다양한 장르를 다뤘는지 여부가 영향을 끼쳤다는 거다. 이 책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닐 게이먼 사례를 제시한다.
사진=픽사베이"펠레로와 팔로메라스처럼, 다트머스 경영대 교수 앨바 테일러와 노르웨이 경영대학원 교수 헨리크 그레베는 조금 덜 기술적인 영역에서 개인의 폭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했다. 바로 만화책이었다...(중략) 만화가 출간되려면 한 명 이상의 창작자, 이야기, 대화, 그림, 레이아웃 디자인이 통합되어야 한다. 연구진은 한 개인이나 팀 창작자가 내놓은 만화책의 평균 가치를 높이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가치 변동을, 즉 창작자가 자신의 전형적인 작품에 비해서 장엄하게 실패하거나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만화책을 내놓을 가능성을 증가시킬지를 예측했다.
테일러와 그레베는 전형적인 산업 생산 학습 곡선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창작자는 반복을 통해 학습하므로, 주어진 기간에 더 많은 작품을 내놓는 창작자는 평균적으로 더 나은 작품을 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또 산업 생산의 사례에서처럼, 그들은 출판사가 자원을 더 많이 가질수록 창작자가 평균적으로 더 나은 작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예측도 틀렸다. 그리고 그들은 창작자가 그 업계에서 일한 세월이 더 길수록, 평균적으로 더 나은 작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지극히 직관적인 예측도 했다. 그것도 틀렸다.
심하게 반복되는 작업량은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한 햇수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경험도 반복 작업도 자원도 아니라면, 창작자가 평균적으로 더 나은 작품을 내놓고 혁신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 것이 무엇이었을까? 답(과로하지 않는 것 외에)은 창작자가 코미디에서 범죄, 환상, 성인, 논픽션, 과학적 상상에 이르기까지 스물두 가지 장르를 얼마나 많이 다루었는가였다. 창작자들의 차이를 낳은 것은 경험의 기간이 아니라, 경험의 폭이었다. 창작자가 폭넓게 장르들을 경험할수록 평균적으로 더 나은 작품을 내놓고 혁신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았다.
사진=픽사베이창작자 개인은 처음에는 팀보다 혁신성이 떨어졌지만- 대성공을 거두는 작품을 내놓을 확률이 더 낮았다- 경험의 폭이 더 넓어지면 사실상 팀을 능가했다. 네 가지 이상의 장르에서 일한 개인 창작자는 팀원들의 경력을 더하면 경험한 장르의 수가 다른 팀보다 혁신적이었다. 테일러와 그레베는 이렇게 주장했다. '개인은 팀보다 다양한 경험을 더 창의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
그들은 논문 제목을 '슈퍼맨인가 판타스틱 포인가?'로 지었다. '지식 기반 산업에서 혁신을 추구할 때는 한 명의 '초인'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겸비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환상적인' 팀을 구성해야 한다.' 다양한 경험은 팀을 이루어 창작할 때 효과가 있으며, 한 개인이 그 경험을 다 지니고 있을 때에는 더욱 효과가 있다.
그 논문을 읽고 있자니 내가 좋아하는 만화 창작자들이 떠올랐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창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꿈속의 이야기 같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타이타닉'을 넘어서서 최고 흥행한 작품이나. 그러나 그전까지 그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거의 모든 장르의 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순수한 판타지와 동화에서 역사적 허구, 과학적 허구, 익살극, 삽화를 곁들인 역사 글, 액션과 모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냈다.
사진=닐 게이먼 홈페이지소설가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만화가인 닐 게이먼도 미술에 관한 뉴스 기사와 수필에서 가장 어린 독자가 읽을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주류 성인 독자를 몰입시키는 심리학적으로 복잡한 정체성을 살펴보는 이야기 등 모든 장르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을 내놓았다. 조던 필은 만화 창작자는 아니지만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도 한 첫 영화인 '겟 아웃'이 매우 독특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성공했는데, 공포 영화에서 적절한 시점에 정보를 드러내는 솜씨를 코미디, 대본을 쓸 때 터득했다고 한다. 테일러와 그레베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전문화는 창작 활동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이 논리를 모든 분야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화책처럼 이야기는 창의성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분야는 전문성, 짬밥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이 아무리 탁월하지 않아도 실력이 최상급을 찍지 않아도 짬은 무시할 수 없다. 창의적이기보다 읽기 쉬운 글, 정보를 잘 조직해서 전달하는 글은 고만고만한 능력만 있어도 나쁘지 않을 듯. 한편으로는 가독성 좋게 글 구성하고 이를 써서 편집하는 것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주어진 참고자료를 그대로 베껴서 쓰는 것도 아니니까. 그대로 인용하기 힘든 자료도 있고. 참고 사항을 이해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려면 만화책 수준은 아니더라도 창의성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
사진=픽사베이전문성 없이 기술 콘텐츠를 쓰는 사람으로서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게 많다. 내 글이 전문가 눈에 어떻게 보일까라는 점. 기술 콘텐츠를 보는 독자는 대중도 있지만, 전문가도 있다. 전문가용 글은 전문가가 쓰겠지만 내가 과연 그런 글을 쓸 일이 있을까. 한편으로는 전문성이 부족해도 글은 계속 써왔으니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라도 가독성 좋게 글을 구성해서 쓰고 편집하는 걸로 내 변별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다양한 형식으로 글을 써보면 그게 더 도움될 테고.
요즘 작업은 극과 극이다. 어떤 건 무미건조한 기술 콘텐츠고. 어떤 건 스토리텔링을 하고, 롤 플레잉도 넣어야 한다. 그게 안되면 사물을 의인화하고. 그쪽에 전문성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내가 그쪽에 도움이 되나 싶고. 그러나 이 책을 읽으니 이런 식으로 경험 폭을 넓히면 나중에 내가 다른 콘텐츠를 만들 때 도움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더 해봤다. 그래도 내가 그 분야에 더 전문성 있었더라면 협업하기 더 낫지 않았을까. 맡은 일이나 제대로 하자. 한 달 내내 초라한 기분 연속이다. 완성하면 좀 나아질까. 좋은 결과물이 나와야 자신감이 생길텐데. 스스로 너무 부담을 갖고 과욕을 부린다 싶다. 괜찮아.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