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무리한 작업은 기술 기업의 사업 이야기를 시각 콘텐츠로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 작업이었다. 즉, 시각 콘텐츠에 반영할 원고(텍스트)를 쓰는 것. 원고에서 다룬 기업은 유명 기업이다. 기술 기업이라고 했지만 이 회사는 스펙트럼이 넓다. 하는 일이 많지만 '자신들은 기술 기업'이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나도 기술 기업이라고 명명한다. 사실 기술 기업이 본질이기도 한다. 이들이 벌이는 사업은 다양하지만 그 근간은 기술에 뼈대를 두고 있으니까. 인터넷 혁명이 이들 성장을 촉발시켰다.
그 기업을 다루기로 결정한 이유는 이렇다. 원고 작업을 의뢰한 곳에서 말한 방향성에 맞는 브랜드를 살펴봤다. 담당자가 참고하면 좋을 자료와 링크도 첨부해줬다. 그곳에서 만들려는 콘텐츠 지향점을 고려했을 때 이 기업을 다루는 게 좋을 듯했다. 빨리 결과물을 내고 시장 반응을 점검해야 하는데- 내가 그나마 잘 알고 신속히 작업할 수 있는 기업을 다루는 것도 필요했다. 이역시 담당자의 조언. 그 기준을 고려하다 보니 난 그 기업을 다루는 게 적합할 듯했다. 여러 기업 콘텐츠를 써봤지만 그 기업을 가장 다양하게 다뤄봤으니까.
작업 기간은 2개월 정도 걸렸다. 지난달 말까지 초고를 다 보내기로 일정을 잡았다. 기술 기업 사업 이야기를 여러 주제로 나눠서 다루다 보니 원고가 총 네 개로 나뉘었다. 창업 이야기, 기업 문화, 핵심 서비스 1을 뒷받침하는 인프라 이야기, 핵심 서비스 2 비화 등. 스펙트럼이 넓은 기업이라 다른 소재도 다룰 게 많았지만 일정을 고려해야 하기도 하고, 내용이 어려운 것도 있어서 이 정도로 정리됐다. 시각화 콘텐츠로 만들려면 이야기도 쉽고 극적이며 명쾌하게 풀 수 있어야 할 듯했다. 내가 생각한 주제는- 내 사고 안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작업방식은 이랬다. 최종 결과물은 기사나 기술 콘텐츠와 성격이 다르지만- 뼈대 콘텐츠이자 기초 자료이기 때문에 사업과 기술을 다룬 텍스트 콘텐츠 작업과 비슷했다. 해당 기업을 다룬 책, 기업 블로그 글, 연례 주주서한, 인터뷰나 기사 등을 조사했다. 해당 기업에서 일했던 직원이 쓴 책이나 전문가가 그 기업을 분석한 책, 해당 기업 직원들 어록 모음, 창업주가 쓴 주주 서한 등이 그것. 선호하는 자료는 해당 기업 당사자 입으로 말한 콘텐츠였다. 그게 가장 정확하니까. 거기서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추리고 정리해서 원고에 반영했다.
초고를 쓰면 내용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했다. 그러면서 원고도 같이 수정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이미지를 첨부한 다음, 담당자에게 보냈다. 담당자는 내용을 본 다음, 수정 방향을 제시했다. 궁금한 점을 물으면 난 거기에 추가 설명을 할 때도 있었다. 원고마다 수정 횟수는 달랐는데 1화가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고 수정도 많이 한 것 같다. 거의 새로 쓰다시피 수정한 것도 있었고. 거기서 "이건 여기서 마무리하자"라고 하면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마지막 화에서는 앞 작업과 달리 수정을 지시받지 않았다.
작업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매우 많았다. 작업을 의뢰한 곳도, 나도 이런 작업이 처음이라서 '멘땅에 헤딩하기'였다. 난 텍스트 원고를 다 마무리했으니 됐지만 거긴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작업 과정을 책임져야 하고, 나 말고 다른 작가와도 작업하기 때문에 매일이 미션 임파서블 연속일 듯하다. 그렇다 보니 중간에 편집 방향이 바뀔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시각화까지 머릿속에 구상하며 지문 같은 것도 넣고 원고를 썼는데 편집 방향이 바뀌고 나서는 내 입장에서 작업하기 좀 더 수월했다. 스토리텔링도 들어가면서 분석도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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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최소한 스토리텔링과 롤플레잉은 염두에 둬야 했다. 말 그대로 이건 이야기가 중심이니까. 등장인물도 필요하고. 그들 역할도 생각해봐야 했다. 100% 픽션이 아니고 논픽션인데 사실관계나 고증이 신경 쓰였다. 멘트를 넣으려면 그들이 했던 말을 넣어야 하니까. 내가 스케치하는 건 아니고 고증을 그림 그리듯 자세히 해야 하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설명할 수 있는 건 설명을 넣어야 하는데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누군가의 증언을 토대로 쓰는 거다 보니 더 그랬다.
어떤 주제는 스토리텔링과 롤플레잉이 너무 어려운 것도 있었다. 그때 담당자 조언이 크게 도움됐다. 원고에 등장하는 사물에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 의인화도 하고. 그 조언을 받았을 때 고민에 퇴로가 열린 듯해서 좋았다. 사실 스토리텔링을 잘하려면 참고자료도 정말 중요하다. 모기업처럼 창업주가 직접 쓴 책이 있으면 나은데 이 회사는 그런 게 없었다. 그렇다 보니 스토리텔링에 참고할 자료를 여기저기서 마구 뒤져야 했다. 그게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해서 스토리를 찾으면 다행. 근데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처음엔 참고자료가 적었는데 두 번째 작업부터는 참고자료가 평균 10개였다. 사업, 기술 콘텐츠 쓸 때 참고자료 3분의 1 수준.
처음에는 재밌을 것 같아서, 주제가 낯설지 않으니까, 안 해 본 작업을 해보는 의의도 있고, 프리랜서일 때 새로운 데 도전해본다는 생각에서 의뢰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작업 과정에서 사실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도 많이 했다. 특히 첫 작업할 때 그랬다. 그래도 방향이 잡히고, 그 방향을 따라가면서 어쨌든 원고 작업을 끝까지 마쳤다. 담당자가 많이 힘이 됐다. 피드백을 잘해주고 소통을 성실히 해줬기 때문이다. 내 머리로는 도무지 방향을 찾기 어려운 것 투성이었다. 그러나 담당자 조언과 격려 덕분에 길을 찾고 정해진 작업을 겨우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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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작업할 때는 힘든 일이 겹치고,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될 때라서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기술 콘텐츠 쓰다가 갑갑하고 답답할 때 이 작업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바람 쐬는(?) 기분도 느꼈다. 콘텐츠 성격이 다르기도 하고. 콘텐츠에 담는 내용 가운데 내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갑갑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느꼈던 작업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힘든 일로 인한 상처나 충격을 잠시 잊을 수 있었고. 점점 마무리하는 원고가 늘어날수록 '제발 이게 무사히 세상에 빛을 보면 좋겠다'라고 간절히 바랐다.
이 작업을 하면서 특별히 힘을 얻고 도움을 많이 받았던 책이 있다. 바로 '잡스의 기준'과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었다. 브런치에도 책읽고 인상깊었던 구절과 느낀 점을 몇번 글로 썼다. 반복되는 수정작업이 부담스럽고 버거울 때는 잡스의 기준에서 알려준 에디슨과 애플 소프트웨어 개발자 자세가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됐다. 작업이 막막하고 자신없을 때는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에서 접한 미켈란젤로의 '해보기' 자세, 하워드 핀스터 같은 늦깎이 전문가의 용감한 도전, 창작에서 경험의 폭 중요성을 다룬 연구조사가 내게 용기를 줬다.
이번 콘텐츠가 세상에 나오려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다. 최종 결과물로 도출하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을지도. 내가 헤아리기도 힘든 변수를 생각하면 걱정스럽기도 하다. 내 입장에서는 '고료 받으면 끝'이 아니다. 원고가 잘 변환돼서 최선의 결과물로 세상에 빛을 봐야 마음을 놓는다. 그래야 내 포트폴리오도 쌓이고 검증되니까. 요즘 이 원고가 제발 무사히 세상에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올해 만든 콘텐츠는 내가 글을 써도, 내가 발행하는 게 아니라서 통제 불가능한 변수에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 작업은 앞으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이 선택을 잘한 선택으로 회고할 수 있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