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베일에 가려진 기업이었다. 다른 유통업체처럼 '언제 어떤 제품 매출이 얼마나 뛰었다'는 자료도 잘 발표하지 않고 물어도 홍보팀에서 알려주지 않았다. 매년 4월 중순께 발표하는 감사보고서가 아니면 내부 사정을 그들 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자세히 알기가 어려웠다. 한때 기자간담회도 열었지만 어느 순간 정보 공개에 무척 폐쇄적이었다. 담당 기자 입장에서는 그랬다. 그래도 알 수 있는 경로가 없지 않지만 설사 뭔가 확인했더라도 거기에 대해 자세한 코멘트를 받기는 어려웠다. 대체로 "~확인해줄 수 없다"가 공식 코멘트였다.
그렇다 보니 미국서 쿠팡 상장 절차가 가시화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대감이 컸다. '상장신고서(S-1)가 공개될 텐데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쿠팡 운영 현황과 자세한 경영 지표를 볼 수 있겠구나!'라는. 재작년 글로벌 유니콘 공룡 상장이 잇따랐고 S-1을 토대로 우버, 줌, 슬랙, 위워크, 스마일 디렉트 클럽 기사를 썼다. 몇백 쪽에 달하기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정말 재미있다. 기업이 미디어에 말하지 않는 내용을 볼 수 있으니까. 모든 내용을 공개하는 건 아니고 기업마다 밝히는 내용 수준도 다르지만- 비교적 자세하다.
어제 아침에 쿠팡 S-1을 읽었다. 그런 걸 분석하는 게 이제는 내 업도 아니고, 나와 상관없지만- 나도 쿠팡에 관심 많은 사람 중 하나고. 그들 상장 행보가 무척 궁금했다. 다만 내 업과 관련 없기 때문에 일일이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경영 지표, 지분구조와 그들이 말하는 시장 기회와 앞으로 계획, 위험요소 등을 우선으로 보고(이전에는 S-1 분석 기사를 위 내용을 중심으로 썼기 때문에) 내가 궁금한 또는 관심 있는 키워드를 검색해서 내용을 살펴봤다. 1시간만 봤는데 시간이 금방 갔다. 업무 부담 없이 봐서 그런지 재밌는 논픽션 읽듯 봤다.
사진=픽사베이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몇 가지 느낀 점도 있고. 경영 지표에 대한 호평이 많은데 이미 충분히 거론돼서 굳이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쿠팡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데- 나스닥도 무척 대단한 일인데 NYSE라니. 자신감과 기개가 느껴졌다. 수많은 스타트업에게 희망과 동기부여를 주겠다 싶고. 일선 직원, 비 매니저급 직원 등 보상 계획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되게 바람직하다고, 성장과정에서 고생한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읽은 내용은 쿠팡에서 근무 중인 동생 부부 이야기. 이름까지 거론되지 않고 그들이 받은 보상과 회사와의 관계 정도인데. 3~4년 전에 동생 부부가 쿠팡에서 근무하는 것과 관련해 '족벌 기업' 어쩌고 하는 기사가 나온 적 있었다. 족벌 기업이라고 할만한 수준으로 그들이 대단한 권한을 행사하는 건지 모르겠고, 나중에 직무를 접하긴 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족벌 기업 어쩌고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러고 말았는데 계속 근무 중인지 일단 형제 관계이니까 S-1에도 언급됐다. 남녀 보상 차이가 커서 놀랬다만.
쿠팡이 바라보는 한국 시장상황, 유통업계 현황과 인식도 인상 깊었다. 그들이 국내 시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보여주는 내용이라서 의미 있었다. 경쟁사 이야기도. 줌이나 슬랙처럼 경쟁사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아, 외국계 유통 기업 한 곳을 언급했긴 한데 그건 경쟁사라기보다 큰 위협으로 보지는 않는다 싶었다. 다만 경쟁사 이름을 거론하는 대신 서술을 구체적으로 했다. 옴니채널,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라거나 검색 엔진이라거나. 배달 플랫폼도 있고. 긱 노동자 노동자성 이야기도 나온다.
사진=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코로나 19 시기에 쿠팡이 판매한 마스크 개수(6억개 이상), 회사 강점으로써 기업문화 이야기도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기업문화는 실제 그대로 이뤄지고 있다면 교육적인 내용이었다. 개인 삶에서도 주워섬기고 싶은 내용도 있었다. 특허 내용도 흥미로웠고. 내가 언급한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일 수 있다. 경영 지표, 재무제표에 비하면. 그래도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족 이야기를 제외하면 기사가 눈에 띄지 않았다. 기사가 어제오늘 되게 많이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썼다.
S-1이 재미있지만 아쉬운 내용도 있었다. 주요 주주의 지분율이 상세히 나오지는 않았다. 소프트뱅크비전펀드가 35~40% 지분을 갖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거기에서 확인된 바는 아니다. 우버나 다른 기업 S-1에 지분율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부분. 기술 현황도 머신러닝, 인공지능을 활용하니 어쩌니 하지만 구체적인 기술 인력 규모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업별 매출도. 우버는 우버 잇츠 매출을 공개했다. 시장분석은 전자상거래 내용만 자세했던 것 같다. 다시 보면 배달 시장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사진=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기존 기사에 나오지 않은 S-1의 의미 있는 내용도 누군가 콘텐츠로 다루고, 이를 잘 해석하면 가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대단한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나친 찬사도, 비난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진 듯한데 과거에는 유통업계 기자들이 쿠팡에 호의적이지 않은 기사를 많이 쓴다고 생각했다. 적자 규모가 엄청나기도 하지만 미디어에 친화적이지 않고 정보 공개에 폐쇄적인 것도 한몫했다는 게 뇌피셜. 정황 근거만 있는. 성장 속도가 대단한데 그보다는 적자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
벤처업계에서는 너무 띄워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성장곡선에 감탄하고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대단한 성과이고 현실을 까내릴 필요는 없다만. 도의적 차원에서 빚어진 그 회사 논란조차 지엽적인 이슈로 보는 시각도 있어서 불편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표현 가운데 '냉정이 열정을 깨뜨려서도 안 되지만 열정이 냉정을 녹여서도 안된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 표현이 쿠팡을 바라보는 특정 업계 미디어 시각에 어울리는 듯했다. 공개 기업이 되고 나서가 진짜 본 게임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어제 쿠팡에서 파쇄기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