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를 향한 막연한 환상을 흔들어준 책
콘텐츠로서 코드
Working in Public: The Making and Maintenance of Open Source Software. 사진=Stripe Press흔히 첨단 기술 혁신을 이끈 데 오픈소스 공이 컸다고들 말한다. 인공지능이니 사물인터넷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도 이를 실감한다. 요즘 읽는 'IT 좀 아는 사람'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다.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리눅스 '커널'을 뼈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뼛속까지 오픈소스"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만든 이유는 "첫째는 개발 편의성, 둘째는 제조사가 차별화 전략 일환으로 인터페이스를 개조할 수 있기 때문, 셋째는 더 많은 사람이 안드로이드와 구글 생태계로 유입되기 때문"이라고.
"구글은 안드로이드 개조판을 금지하지 않으며, 개조판을 사용하는 사람도 구글 검색과 구글 앱을 이용할 확률이 높다.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수입도 늘어나는 만큼 오픈소스 정책은 구글 비즈니스에 도움된다"라고.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제조사에 무료로 제공"하는데 "안드로이드 사용자가 늘고 앱 구매가 늘고 안드로이드를 이용한 검색이 늘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다"라고. 덕분에 우리는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노키아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안드로이드 OS를 이용하고, 각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OS를 이용할 수 있다. 노키아 빼고. 노키아는 순정 안드로이드 OS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소니도 거의 순정에 가깝다.
정리하면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전략으로 그 회사는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확장하며 돈도 많이 벌고, 제조사는 편리하면서도 조금은 떨떠름하게 각사 하드웨어나 서비스 전략에 맞춰서 안드로이드를 개조한다. 편의를 누린 사람들은 많겠지만 구글에게 가장 좋은 전략이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까. 어쨌든 오픈소스는 더 향상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건 물론, 다른 개발자와도 이를 공유해서 처음부터 삽질하지 않고 마련된 뼈대 위에 여러 실험과 개조를 거쳐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이끌었다.
사진=기트허브비전공자, 비전문가인 내 시선으로 오픈소스와 같은 개방형 혁신은 울림이 컸다. 집단지성과 비슷할 수도 있고. 경쟁도 경쟁이지만 협력이 더 큰 발전과 성과를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이소영 이사의 책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와도 연결되는데- 요즘은 많은 업종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지만 함께 공부하고 서로 가르쳐주며 같이 잘 되도록 이끌어주는 모습이 기술 업계에서 눈에 띄었다. 그 책에서 소개한 커뮤니티형 리더를 봐도 그렇고, 내가 가입돼 있는 SNS 내 기술 커뮤니티를 봐도 그렇다.
좋은 이미지가 많다 보니 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픈소스나 기술 커뮤니티에 맹목적인 환상도 많이 가졌다. 오픈소스는 무조건 좋은 것, 기술 커뮤니티도 무조건 좋은 것.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특별히 나쁜 걸 발견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요즘 읽고 있는 책 'Working in Public: The Making and Maintenance of Open Source Software'가 이런 내 생각에 균열을 내줬다. 책 소개글만 읽었을 때는 그냥 오픈소스 커뮤니티 인터뷰한 건 줄 알았는데 서문부터 읽어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 한계도 많이 다룬다.
저자 Nadia Eghbal은 작가 겸 연구자로 인터넷이 개인 크리에이터에게 어떻게 힘을 주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2015~2019년에는 독립적으로, 기트허브에서 활동하며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생산에 집중했다고. 지난 20여 년 간 오픈소스는 기술 업계에서 큰 공헌을 했고,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보이지 않는 개발자들이 수백만 명이 쓰는 코드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그들 수고에 부합하는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재능기부나 열정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다고. 아울러 그 커뮤니티에는 소수 인원만 헌신(?)하는 구조이고.
"1990년대만 해도 오픈소스는 '광범위하게 퍼진 대중 협업'의 희망적 비전을 상징했다"라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기업에서 판매한 소프트웨어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경제학자들은 개발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했고. 이미 우리는 일상 속 많은 활동을 오픈소스에 기대고 있다. "전화기, 노트북 PC, 자동차, 은행, 병원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려면 직접적으로 오픈소스 코드에 의지한다"는 것.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쓰러지면 문자 그대로 인터넷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라고.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코드를 책이나 동영상과 같은 콘텐츠와 비슷하게 본다는 건데- 돌아보면 그게 유달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싶다. 코드가 콘텐츠인 건 지극히 당연한 것 같다. 개발자가 크리에이터인 것도 당연하다 싶고. 만드는 일을 하니까. 서비스든, 기능이든, 무엇이든. 그동안 크리에이터를 바라보는 내 시각이 편협했다는 생각도 들고. 개발자를 크리에이터로 봤을 때, 그들이 짠 코드에 대가나 보상도 없이 오픈소스 생태계의 자비하신 파트너 정도로만 바라보는 건 합리적이지도, 합당하지도 않다 싶었다.
저자는 "코드는 공급용으로 포장한 다수 정보"라고 해석한다. "온라인 세계는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개인이 구축하고 있다"며 아마존 리뷰, 위키피디아 설명, 유튜브 댓글, 기타 콘텐츠를 사례로 든다. "아마존 리뷰, 위키피디아에서 접하는 정보, 유튜브 댓글, 인터넷에 올라온 콘텐츠는 이를 제작하는 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상당 부분 투자한 개인이 만든 거"라고. "이런 사람들은 중요한 방식에서 일반 인구와는 분명히 다르다"라고. 커뮤니티 시대 어쩌고 해도 결국 이를 구성하는 건 개인이고. 개인이 있어야 커뮤니티도 굴러가는 거니.
개인 의미를 짚고 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우리가 인터넷에서 이용하는 크고 작은 콘텐츠는 요술방망이를 휘둘러서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고, 거저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환기하는 데 중요했다. 저작권이 있는 누군가의 창작물이라는 거. 이걸 인정하려면 단순히 커뮤니티로 뭉뚱그려서는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기 쉽다. 사실 픽사베이에서 감사하게도 무료 이미지를 합법적으로 내려받아도 그곳에 올라온 사진을 찍은 개별 작가를 잘 생각하지 않고 이름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다는 이야기. 새삼 감사하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가 이 콘텐츠를 쉽게 접하고 우리 지식과 능력을 증강하거나 무료한 시간을 죽이는 데 활용하지만- 쉽게 이용한다고 만드는 과정이 누워서 떡먹기인 건 아니니까. 그러나 쉽게 얻는 건 가치를 평가절하당하기도 쉬운 듯하다. 과정이 간소화되고, 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그걸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고. 우리 일상처럼. 그렇다 보니 언제나 주어지는 줄 알고 별로 중요하거나 간절하게 생각지 않고. 없어져봐야 "그때 좋았어"라고 정신 차리는. 일반인 눈에 띄지 않지만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코드는 오죽할까.
오픈소스 생태계는 크게 확장됐다. "기트허브 이전에 2001년 당시 'Sourceforge'라는 코드 호스팅 플랫폼이 있었다"라고 한다. "거기 사용자 수가 당시에 20만명을 막 넘었다"라고. "기트허브는 등록 사용자만 4000만명이 넘는다"라고 한다. 거대해진 생태계. "개발자들은 공공 용도로 온라인에서 코드를 공개하고, 다른 사람은 이를 쉽게 발견해서 쓸 수" 있다. "코드는 이게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쓰지도 못한 채 쉽게 복사, 붙여 넣기 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는 게 저자 설명.
혼자서 오픈소스로 공개한 이 코드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개발자는 "제한된 시간과 관심을 활용해서 커뮤니티 상호작용, 코드 짜기 등 업무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또 "기트허브와 현안과 알림, 코드 품질을 관리하도록 도와주는 봇과 같은 도구에도 의존한다, 작업을 따라가기 위해". 저자는 "우리는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생존하기 위해 강력한 기여자 커뮤니티로 성장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평균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코드를 짜기 위해 수백 개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쉽게 기대지만 그들은 그중 대부분을 수동적으로 소비할 수만 있다"라고.
"한명 또는 소수의 개발자들이 대부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롱테일 법칙과도 비슷하다. "캐주얼한 기여자의 긴 꼬리와 더 많은 수동적 사용자가 뒤따르는 게 오늘날 질서"라고. "오늘날 오픈소스 생태계는 초기 인터넷 개척자들이 포용했던 유토피아 비전 같지 않다"라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 대규모 협업이 일어날 거"라는 유토피아적 비전. 실제는 소수 개발자들이 멱살 잡고 끌어가는 세계. 저자는 통계를 제시하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자들이 기트허브에서 조사한 오픈소스 프로젝트 85% 이상이 그렇다"는데. "코드와 사회적 상호작용 95% 이상은 개발자 5% 미만이 책임지고 있다"라고.
저자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오픈소스 작동방식과 실제 현장에서 이뤄지는 양상에 괴리가 있다"라고 해석한다. 물론 더 많은 개발자들이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기여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 이니셔티브도 많다고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이니셔티브가 저품질 기여를 종종 유도한다"라고 지적한다. 이는 "유지자를 위해 더 많은 일을 만들어내지만 결국 승인되기 전에 검토를 받아야 하고, 유지자들은 종종 이 기여를 기여자 커뮤니티로 갖고 오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라고. "많은 경우, 프로젝트 뒤에 개인 노력만 있을 뿐 커뮤니티는 없다"라고.
혼자 또는 소수 개발자가 과중한 부담을 지다 보니 업무 규모에 피로도 느낀다고. 사이클을 정리하면 "오픈소스 개발자는 공공으로 그들 코드를 짜고 공개하지만 결국 인기는 후려친 보상을 제공할 뿐"이고 "코드 유지 가치는 보상을 넘어서는 데 실패했으며", "이들 개발자 상당수는 조용히 그림자에 가리어져 있다"는 것. "오픈소스 개발자 상당수는 그들 일이 수조 달러 상당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데도 그들 일에 직접적으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고, 부가적인 명성이나 금전적 이점 없이 일반 대중을 위해 코드를 관리하는 건 그만둘 수 없는 무급 일자리가 되고 있다고, 빠르게".
그러나 저자는 "몇 년 동안 개발자 이야기를 추적해보니 돈이 유일한 문제 요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개발자들은 금전 보상 없이도 사용자에게서 오는 요구사항을 솜씨 좋게 다루고 있고, 유급 오픈소스 개발자도 같은 이상한 행태 사이클을 겪고 있다"라고. 뭐 그런 이야기인데- 다시 정리하면 저자는 크리에이터로서 개발자 의미를 조명하며, 기트허브 등록 사용자가 과거보다 월등히 많고, 수백 개 코드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이를 관리하고 대응하는 개발자는 제한돼 있고, 별 보상도 없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오픈소스 개발자도 긱 일자리거나 그보다도 더 열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개발자 대다수가 이런 문제에 허덕이는 건 아닌 듯하고, 어쩌면 이런 문제 때문에 커뮤니티에 더 공유하고 기여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실제 활발히 활동하며 이를 관리하는 이가 소수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고. 애초에 뛰어들지 않으면 그런 열악한 처우를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선의로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희생하며 그 플랫폼 위에서 활발히 공유하고 기여하는 이는. 혼자서 너무 많은 짐을 지다 보니 허덕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책을 읽는 중이라서 결론이 따로 나와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더 좋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나오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개방형 혁신에 참여하는 건 물론, 공로에 적절한 보상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각자 생업은 또 따로 있을 테니 거기에 목매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이다. 보상조차 없으면 보람도 없기 쉽고. 물론 자신이 짠 코드를 많은 이들이 활용하고 어떤 소프트웨어에 핵심 기능으로 들어가는 데서 오는 보람도 클 수 있겠지만. 누구든 더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서비스 제공자에게 더 나은 대우를 하는 게 합당하다.
특별한 사명의식을 발휘하지 않는 순간 처우가 부실하면 실적 등 퍼포먼스도 그에 준하기 쉽다. 드물게 그 이상 결과물을 내는 이도 있지만. 명예나 자존심, 선의도 때로는 금전적 보상 못지않게 강력하기 때문. 그러나 보상을 희생하고 명예나 자존심, 선의에 기대서 자신을 갈아가며 헌신하다 보면 일이 뒤틀렸을 때 내상을 크게 입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이해하고, 참고 욕심내지 않고 헌신했는데 결과가 이러면- 언짢은 경험을 하면 정신력이 약한 이는 무너지기 쉽다.
사진=픽사베이세상에 완벽한 환경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털고 일어나야 하기도 하지만. 그게 꼭 그 개인만 스스로 추슬러서 대처해야 할 일일까. 생태계에 참여하거나 거기에서 유익을 얻는 사람이라면 공동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없거나 이것밖에 안되니 너도 그냥 품질을 그 정도로 맞춰'라고 하면 저질 결과물이 양산되기 쉬운 듯하다. 좋은 결과물을 얻고 싶다면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보상을 한다는 건 거기에 부합하는, 그게 아깝지 않은 좋은 결과물을 내달라는 무언의 요구일 수 있고. 받는 사람은 거기에 감사와 책임감을 느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러나 이런 당위성은 온라인에서 폭넓게 공유되는 건 아닌 듯하다. 그나마 비디오 콘텐츠에서 조금 먹히는 수준. 어색할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도 이와 관련된 습관을 만들고 정착시키려는 시도가 여러 서비스에서 이뤄지고 있고. 텍스트 콘텐츠도 느리지만 그런 습관이 확산하는 것 같다. 오디오 토크 서비스에 부분 유료화를 도입하고, 소셜 미디어에까지 유료 기능을 도입하는 움직임도 있으니- 플랫폼 사업자도 ESG에 신경 쓰듯 크리에이터 보상과 좋은 생태계 구축에 신경 쓰는 듯하고. 오픈소스 생태계를 모르고 거기에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없다면(저자 이야기만 봤을 때는 개척이 많이 안된 느낌도), 거기도 언젠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모든 크리에이터가 구글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니. 인상 깊었던 내용이라서 이렇게라도 정리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