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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이라는 1인치 장벽 같은 장애물
사진=픽사베이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이런 수상소감을 밝혔다. "자막의 장벽,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최근 소소한 어떤 경험을 하면서 이 수상소감이 갑자기 떠올랐다. 자막은 아니고 봉 감독이 '1인치 장벽'이라고 수식한 어떤 장애물이 내게 있었다. 별거 아니지만 내가 그걸 뛰어넘는 데 용기가 꽤 필요했다. 쓸데없는 고민을 하면서 주저했지만- 결국 그 장벽을 넘었고 그게 내 마음을 전보다 자유롭게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1인치 장벽을 넘길 잘했고 스스로가 대견하다.
내게 1인치 장벽이란 전문가 또는 업계 종사자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 글을 올리는 일이었다. 최근 디지털 휴먼 글을 발행하고 나서 내 글을 다양한 사람들, 특히 업계 종사자나 전문가(?)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보통 글이 발행되면 납품기업 SNS나 홈페이지에 공유된다. 난 내 SNS 계정 몇 곳에도 올린다. 그게 전부다. 간혹 납품 기업이나 내 SNS에서 콘텐츠 링크가 공유되기도 한다. 어떤 커뮤니티에 올라가기도 하고. 예상보다 많이 퍼갈 때도 있다(절대적 수치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예상 기준).
그동안 나는 내 글을 알리는 데 있어 소극적이었다. 내 SNS 계정 몇 곳에 올리는 게 전부. 디지털 휴먼 글이 발행되고 나서 이걸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난 그동안 고생해서 글을 써도 이를 관심 있을 사람을 타깃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게을렀더라. SNS 계정에 올린들 홍보 효과가 큰 것도 아니고. 관심 없는 사람들은 그게 무료 콘텐츠더라도 굳이 보지 않을 거다. SNS 친구 대다수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고, 지인도 거기에 관심이 많지 않다. 내 계정에만 링크를 올리는 건 효과적이지 않고 불충분했다.
사진=픽사베이내 글을 더 널리, 효과적으로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당 글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글을 알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입돼 있는 기술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몇 곳이 떠올랐다. 챗봇 커뮤니티,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커뮤니티 등. 그런 곳에 글을 소개하고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해당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런 커뮤니티에 모여 있으니. 그밖에 AI 커뮤니티도 더 있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 글을 내가 직접 소개한 적이 별로 없어서 차마 거기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이 마음을 굳히고 행동에 옮기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시간은 짧았지만 머릿속에 굉장히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일단 해보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그쪽은 개발자나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있고 내가 글을 납품하는 곳 관계자도 있는 듯했다.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곳에 펜대나 겨우 굴리는 문과생이 가랑이 찢어지듯 겨우 써낸 AI 콘텐츠를 소개하고 알리는 게 조금 자신이 없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내가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괜히 그랬다. 난 최선을 다해 글을 썼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기도.
'저 사람들이 보기에 내 글이 어설퍼 보이지 않을까?', '날 아는 사람이 보면 코웃음 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난 납품 기업에 소속된 사람도 아니고 외부인으로 글 작업을 할 뿐인데 글을 소개하려면 그 회사 이야기를 해야 하고, 마치 내가 거기 관계자인 것처럼 보일까봐 그것도 그랬다. 혹시라도 오지랖 넓은 행동이려나 싶어서. 위와 같은 이유로 마음이 저어 됐는데 그러면서도 고민한 이유는- '그래도 여기 사람들에게 내 글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AI에 관심 많고 그걸 업으로도 삼으니까.
사진=픽사베이내가 너무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또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 별로 관심 없으니 내 고민이라는 것도 섣부르고 과하다 싶었다. 내 글을 더 알리고 싶은 게 내 욕망이고 바람이라면-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라면- 납품 기업에도 도움될 점도 있을 테니 고민 그만하고 어서 행동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두 커뮤니티에 올렸다. 챗봇 커뮤니티와 사람-컴퓨터 상호작용 연구 커뮤니티. 전자는 그냥 올리면 됐고, 후자는 글을 올리고 난 뒤, 관리자 승인이 있어야 했다. 감사하게도 관리자 분이 글을 올려주셨다.
소개글 서두에는 내 소개를 간략히 하고, 해당 글 주제를 간략히 밝혔다. 해당 커뮤니티에 이 글을 올리는 이유도 솔직하게 썼다. "더 많은 분들과 글을 공유하고 싶다"라고.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커뮤니티에는 이유를 한 가지 더 썼다. 여기는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관련 주제를 다룬 콘텐츠를 공유하는 게 커뮤니티 특징이다. 그 의미를 반영해서 글을 올린 이유를 썼다. "디지털 휴먼도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이라는 맥락 안에 있으니 관심 가져 주십사 ~ 어쩌고저쩌고". 혹시라도 생뚱맞은 포스팅으로 보일까봐 설레발친 것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해당 커뮤니티를 확인해보니- 역시 글을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SNS에 공유한 것보다 반응이 더 많았고. 그 글을 올리고 나서 SNS 친구 신청이 갑자기 많이 들어왔다(내 기준으로). 그쪽 업계와 관련된 사람들. SNS 친구를 늘리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왠지 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고 친구 신청을 하신 분들 같았다. 난 전문가도 아닌데 괜히 저런 글 썼다고 혹시나 뭐 볼 게 있나 싶어서 친구 신청했을 수도 있는데 보여드릴 만한 게 없어서 어쩌나 싶기도 했다만. 뭐, 볼 게 없으면 알아서 끊어주시겠지.
사진=픽사베이사소한 경험이지만 이 일은 내게 큰 깨달음을 줬다. 그건 독자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독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 내 독자를 만들고 싶다면 가만히 앉아서 허공에 글을 띄우는 게 아니라 잠재 독자를 상정하고, 그 독자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내 글을 알려야 한다는 것. 영업사원이 현장 뛰는 것과 같다. 카드사나 보험회사 영업사원이 대학이나 연구실을 비롯해 잠재 고객이 있는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명함을 나눠주고 상품을 소개하며 회원가입을 유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싶다. 난 오프라인은 아니고 온라인에서 한 행동이지만-
모두에게 요구할 수도, 통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글을 쓰더라도 이를 널리, 많이 알리고 싶지 않은 이도 있으니까. 나도 단순히 글을 널리, 많이 알리고 싶다기보다- 내가 쓴 글 주제에 관심 있을 법한 사람들이 내 글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커뮤니티를 찾아가 소개글을 올렸다. 마음 한 켠에는 기술 콘텐츠를 쓰는 널리고 널린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 글도 그리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작은 신뢰라도 쌓고 싶은 바람이 마음 한편에 있었고. 작지만 강한 욕망이 내가 1인치 장벽을 넘도록 이끌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디어와 실행은 다르고-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게 효과적인 사고법이기도 하다. 했는데 별로면 개선하면 되고. 안 해도 되고. 새삼 진작에 이렇게 할걸 그랬다 싶었다. 벌써 이번 글이 열여섯 번째 글인데 그 전에는 왜 이런 걸 생각지 못했나 싶고. 그 이전에도 왜 그러지 않았나 아쉽기도 하고. 돌아보면 첫 번째 직장에서 일할 때는 신문 나오면 끝이고, 가끔 기사에 달린 네이버 댓글을 확인했지만 대체로 무시했다. 그렇다 보니 개인 SNS에 내 글 올리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사진=픽사베이그 행위도 한때는 부담스러웠지만(솔직히 지금도 그렇다) 어느 순간 익숙해졌고- 더는 내게 큰 자극을 주는 일은 아니었다. 내 플랫폼이라는 것도, 내 관계망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으며.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어떤 반응을 감지하고 추적하기에 대표성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자기 글을 알리고 싶다면- 생뚱맞은 곳에서 헤매며 풍등 띄울 게 아니라 잠재 독자로 겨냥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문 두드려야 한다고.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설명하고 빠지는 게 더 낫다고. 그것도 반복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작가들이 책을 내면 SNS를 적극 관리하고, 강연을 다니며, 여기저기 얼굴을 들이미는 게 당연한 것처럼- 상용화를 목표로 뭔가를 만든다면- 그게 글이든, 그림이든, 서비스든, 뭐가 됐든- 홍보와 마케팅은 당연한 일이다. 단지 했다는 데 의의를 둬선 안 되고 효과적인 방식을 고민해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그 결과를 측정하고 분석해야 하고. 잠재 독자나 고객을 선명하게 그리는 건 물론이고.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으면 안 해도 되는데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고 싶다면 그게 가능한 곳을 찾아가서 관계자를 만나야 하고.
앞으로도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면 커뮤니티를 계속 찾아갈 생각이다. 홍보 창구로 볼 게 아니라 그 안에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나 또한 거기에 미력하게나마 도움될 수 있는 뭔가를 해야 한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여러 콘텐츠에 적극 반응하거나 좋은 정보를 공유하는 등. 그곳 분들에게 많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나온 콘텐츠 중에서도 혹시 회자되거나 시의성 있는 주제가 있으면 나중에 한번 공유해볼까 싶고. 다른 커뮤니티에도 외연을 넓히고 싶고. 다시 한번 되뇐다. 독자를 먼저 찾아가야 하고, 독자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