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몸값 경쟁' 너머 봐야 할 트렌드
스타트업, 울지 마세요?
사진=픽사베이IT 기업들의 개발자 연봉 인상 행렬이 화제가 된 게 한 달은 된 것 같다. 아직도 기사가 꾸준히 나오는 걸 보니 업계에서 뜨거운 이슈이긴 한 듯. 그전부터 실력 좋은 시니어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토로는 종종 들었지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서 '그렇구나'하고 넘겼는데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싶다. 유통업계를 출입할 때도 전자상거래 기업 사이에서 개발자 영입 경쟁은 뜨거웠다. 비단 오픈마켓, 소셜커머스뿐만 아니라 전통 유통 대기업에도 간절한 일. 이베이코리아도 4년 전에도 개발자 100명 채용한다 어쩐다 기사가 나오기도 했고.
실력 있는 시니어 개발자에게 전자상거래 서비스는 얼마나 매력적인 일터인지 잘 모르겠다만. 그때도 구인난을 호소(?)하는 곳도 있었다. 이제 보니 유통 기업만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모두가 부족하다고 난리다. 당장 IT 기업도 사람 부족하다고 저러는데 유통 기업에 자진해서 개발자로 가려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처음부터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시작한 곳은 원래 IT 기업이니까 문화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전통 유통 대기업은 백화점식 군기가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IT 부서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지난달 말이었나 알토스벤처스 한 킴 대표 페이스북에서 인상 깊은 게시물을 봤다. 공감 가는 내용도 있었는데- 내가 뭘 알아서 공감 간다기보다 원격근무 AI나 노코드 개발 플랫폼을 조사하면서 접한 정보, 들었던 상념과 연결돼서 공감이 갔다. 무슨 내용이냐면 1."한국도 외국에 있는 개발자와 효과적으로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 학습해야 한다. 중국, 인도, 베트남, 동유럽... 아웃소싱 개념으로 개발자들이 많은 일을 벌써 하고 있다.", 2."소프트웨어 시장이 더 열릴 것 같다. 맞춤화하려고 필요 없는 개발자를 데리고 있지 못할 거고, 웬만한 소프트웨어는 사서 쓰는 게 더 저렴해질 테니"라는 내용이었다.
사진=튜링이 내용에 공감 간 이유는- 자료조사를 하면서 1번에 해당하는 사례를 접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례는 아니고, 실제 실리콘밸리 개발자를 긱 일자리처럼 연결해주는 채용 플랫폼이 있다. '튜링(Turing)'이라는 서비스인데 국내 서비스는 아니다. 페이스북, 구글, 스탠퍼드 엔지니어링 리더들이 구축했고 취지는 "톱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영입하려고 구글과 경쟁하다 지쳤다면 이런 플랫폼에서 사전 검증된 시니어 엔지니어를 경제적으로 고용하라"는 것. 기술 역량, 소통 능력도 강력하고 고용주 시간대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엔지니어.
홈페이지에는 리액트, 노드. js, 파이썬, 스위프트 등 프로그래밍 언어나 머신러닝, 데이터 엔지니어 등 분야를 나눠 필요한 엔지니어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잘 모르겠으면 'not sure, need advice'를 선택하면 된다. 주관식 답안 쓰듯 필요한 기술을 추가로 써도 되고. 난 '파이썬'에 체크한 뒤,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다음 버튼을 눌렀는데 '20명 넘게 있다'라고 나온다. 이어서 파트타임, 풀타임 여부, 현재 직원 수를 체크하고 이름, 전화번호, 회사 홈페이지 등을 입력하는 창이 나온다.
대충 입력하고 넘어가니 튜링에서 내 회사의 구체적 직무를 파악하기 위해 통화 일정을 예약하는 페이지가 뜬다. 시간대(도쿄, 서울 시간대)도 선택할 수 있고. 튜링 측과 통화하고 나면 여기서 내게 엔지니어 이력서를 보내준단다. 그다음, 나는 엔지니어와 통화하고 2주 동안 테스트 기간을 갖는다. 진짜 예약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확인하고 도로 나왔다. 근데 다른 언어는 어떤지 궁금해서 자바나 이것저것 누르고 다시 보니 거기도 엔지니어가 20명 넘게 있다고 나온다.
사진=튜링여기까지는 엔지니어를 구인하는 사용자 이용방법이고- 엔지니어는 이 홈페이지에 긱 일자리 플랫폼에 지원하듯 자신을 등록할 수 있다. '지원하기'를 누르니 당장 코드 문제가 나온다. '이거 풀 수 있어?' 이러면서. 문제는 자바스크립트, 파이썬, C 언어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있고. 답안은 객관식인데 '프로그래밍할 줄 몰라'도 누를 수 있다(그럴 거면 여기 왜 지원하는 거?). 근데 아무 답이나 체크하니까 로그인하라고 뜬다. 미리 가입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이 회사에서는 실리콘밸리 직무 인터뷰보다 더 엄격하게 테스트와 인터뷰를 치른다고 내세운다. 프로그래밍 스킬, 데이터 스트럭처, 알고리즘, 시스템 디자인, 소프트웨어 스페셜라이제이션 & 프레임워크 등. 테스트만 8시간. 또 상급자 테스트(?)로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없이도 비즈니스 오너십과 제품 목표를 능동적으로 가질 수 있는 우수 커뮤니케이터를 선정한다고. 위 테스트를 거쳐 통과되는 이는 1%도 안 된다고 한다.
튜링 역할은 채용 징검다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개발자는 원격근무를 할 텐데 튜링 워크스페이스 소프트웨어로 시간 추적이나 가상 일일 스탠드업을 자동화한다. 엔지니어는 오늘 할 일과 주간 계획(업무별 시간)을 체크하고 기타 질문사항을 여기에 입력할 수도 있다. 원격근무에서 복무 관리가 중요하다 보니 이런 걸로 투명성을 보장하려는 것.
사진=튜링이 회사는 '실리콘 밸리 인재를 절반 값에 고용하라'라고 홍보한다. 튜링에 지원한 130여 개국, 15만여 엔지니어 가운데에서도 상위 1%에 해당하는 인재를 고용하라고. 여기에 등록된 엔지니어들 스킬은 100가지가 넘고. 무료(?)로 2주 테스트 기간을 갖기 때문에 위험부담도 없다고 말한다. 대신 튜링에서 엔지니어에게 2주간 근무에 해당하는 급여를 준다고 한다. 앞서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다시 찾아보니 튜링에서 지급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100여 개 기업이 자기들 플랫폼으로 엔지니어를 채용했다고 안내한다.
앞서 창업자 이야기를 간략히 언급했는데 정확히는 스탠퍼드대 컴퓨터 과학과 출신들이 만들었고, AI 기업 엑시트를 하고 나서 튜링을 설립했다고 한다. 이들이 팔았던 기업도 원격 엔지니어들로 구축했다고. 튜링은 페이스북, 구글 엔지니어링 리더들이 디자인했으며. 튜링 검증 엔진은 원격근무를 위한 구체적인 맞춤화로 전통적인 실리콘밸리 인터뷰 절차를 개선하기 위해 구축됐다고. 자기들 말로는 투자자가 짱짱하다는데 페이스북 첫 CTO였던 애덤 디안젤로, 넷플릭스와 우버에 투자했던 파운데이션 캐피털,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임원들이 투자했다고 한다.
이런 서비스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1.요즘 원격근무 트렌드에 부합한다. 2.글로벌 엔지니어 인재풀을 만들 수 있다. 3.기업에서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 있는 글로벌 엔지니어를 합리적(?) 비용으로 구할 수 있다. 회사에서 홍보한 것처럼 실리콘밸리의 실력 있는 인재를 비싼 돈 들이지 않고 확보할 수 있다? 4.엔지니어도 시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채용돼서 일할 수 있다. 글로벌 유수 기술 기업에서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살지 않아도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에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사진=튜링회사에서 소개한 내용만 보고 후기를 살펴보지 않아서 단점은 잘 모르겠다. 엔지니어들이 이런 플랫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려나, 이런 거? 이런 서비스가 튜링 말고 다른 곳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긱 일자리 플랫폼은 있어도 전문화되거나 체계화된 곳은 많지 않을 수 있어서 블루 워커를 위한 긱 일자리 플랫폼인 '워놀로'처럼 여기도 '톱티어 엔지니어를 위한 긱 일자리 플랫폼'으로 특징지으면 차별화될 수는 있겠다. 원격근무 AI 조사하다가 이 회사를 처음 알게 됐는데 내 글과는 결이 달라서 다루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꽤 멀리 왔는데- 원래 주제로 돌아가면. 난 개발자도 아니고, 그 세계도 잘 모르지만 개발자 가운데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도 있고, 그들은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하거나 꾸준히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이들도 적잖다. 한 킴 대표가 말했듯 이미 아웃소싱으로 많은 일하는 개발자들도 있고.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에서 '개발자 채용 가이드북'을 냈고 이게 기사로도 나왔는데- 인재를 붙드는 요소에는 연봉도 중요하겠지만 몸값 경쟁에만 매몰되면 문제 해결 범위를 좁게 설정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길이 안 보이면 판을 새롭게 해석하고 짜야하는데- IT 대기업이 저렇게 처우를 올리니 스타트업은 우니 어쩌니 하지만. 어차피 자금력으로는 IT 대기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테니 다른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게 좋겠다 싶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가이드북도 그런 듯. 그렇다고 스타트업이 당장 튜링 같은 데서 절반 값에 실리콘밸리 실력자를 개발자로 채용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아무리 반값이라 해도 그 비용도 비쌀 것 같다만. 꼭 튜링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방안을 활용하거나, 그런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하다.
사진=픽사베이뇌피셜이라서 생각에 자신감은 없는데. 개발자도 아니고, 스타트업 관계자도 아니면서 주제넘은 소리를 하고 있어서 찔리기도 하다만. 요즘 몸값 이슈와 튜링 서비스 모델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개발자로 충족하기 어려운 개발 수요는 노코드 개발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고. 이런 플랫폼이 등장, 성장한 데에도 비개발자 출신인 창업자도 있고, 노코드 챗봇 플랫폼만 해도 AI나 챗봇 전문가가 없는 기업을 잠재고객으로 상정하고 만든 까닭도 있다.
그래도 프로그래밍할 줄 아는 사람 수준을 따라가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반 자오 노션 대표가 말했듯- 오늘날은 사용자가 코딩할 줄 몰라도 자신이 이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구축할 수 있는 시대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과 서비스도 계속 나오고 있으므로. 돈은 좀 들어가겠지만 억 소리 나는 개발자 몸값에 비하면 그런 소프트웨어 이용료가 덜 들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닌가. 개발자 몸값에 투자하는 게 더 합리적이려나. 잘 모르겠다. 한 킴 대표 글을 보니 '소프트웨어 시장 성장' 부분에서 이런 게 떠올랐다.
'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 마크 안데르센 저. 사진=안데르센 호로위츠한편으로는 결국 IT 기업이나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비개발자 출신 창업자도 개발을 공부하긴 해야겠구나 싶다. 당장 완벽한 결과물을 뚝딱 만드는 건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그걸 할 줄 아는 게 서비스를 만들고 개선하는 데 도움될 테니. GUI로만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정도(?)를 걸으며 기본부터 밟아야 제대로 배우고 이해하는 걸 테니. 이렇게 쓰고 보니 '코딩을 배우면 좋지만 코딩을 꼭 안 배워도 된다'라고 썼던 지난가을 글과 상충되는 느낌도?
마크 안데르센이 '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나'라는 글을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고 한다. 얼마 전 CB인사이츠 글을 보니 "코로나 19 이후, 이제는 세상이 소프트웨어를 먹여 삼키는 시대"래나, 어쩐대나. 서로가 서로를 집어삼키는 세상인 듯. 깜도 안 되면서 주제넘는 글을 썼다. 오늘 이 글 쓸 생각이 없었는데 가이드북과 요즘 뉴스를 접하니 튜링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풀어봤다. 이런 소재로 글을 쓰면 어떤 주제가 좋을까? 자금력 밀리는 스타트업이 우수 개발자를 확보하려면? 우수 개발자가 되세요? 주제넘은 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