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에서 만끽한 봄

복스럽고 탐스러운 홍매화, 미술과 문학이 만나는 곳

by 딱정벌레
창덕궁에 핀 홍매화. 사진=딱정벌레

일교차가 큰 날씨지만 봄은 봄이다.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난방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겨울만큼 자주 틀지 않는다. 실내가 따뜻해지면 바로 끈다. 이불이 무거우면 그 무게가 몸을 짓눌러서(?) 잠이 잘 온다고 하는데 요즘 그렇다. 봄을 맞이해 이불 커버, 베개 커버를 바꿨다. 새 커버로 교체하니까 같은 이불인데도 전보다 더 푹신하고 포근한 느낌? 기분 탓인지, 평소 수면시간이 길지 않아서 그런지 한번 잠들면 잠은 잘 잔다. 지난주 월요일 밤 빼고.

창덕궁에 홍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랜만에 궁을 찾았다. 토요일 저녁에 덕수궁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는데 이틀 연속 고궁을 방문했다. 덕수궁 미술관은 아주 가끔씩 가지만 창덕궁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간 게 8~9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 사이에 또 한 번 갔는지 모르겠는데 오랜만에 가니 역시 어딘가 낯설었다. 낙선재를 제외하면 다 처음 보는 느낌이고. 볼 때마다 새로워서 그런가? 낯섦이 아니라 해도 고궁은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이전에도 창덕궁에 핀 철쭉을 보고 감탄한 적 있다만. 홍매화의 아름다움은 그 이상이었다. 창덕궁에서 봄에 홍매화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참 아름다웠다. 매화가 어찌나 복스럽고 탐스러운지. 누가 '팝콘 같다'라고 표현하던데 그 말도 맞다. 팝콘처럼 복스럽고 탐스럽다. 도톰해 보이는데 얼마나 예쁜지. 색도 짙은 분홍색이라서 그런지 봄을 완연하게 드러내는 느낌이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발걸음을 떼기가 아쉬울 만큼 너무 아름다웠고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었다. 1년에 한 번만 볼 수 있지 않나.

창덕궁 홍매화. 사진=딱정벌레

사람들도 많이 몰렸다. 봄이라서 그런지. 홍매화는 벌써부터 소문난 듯하고. 나도 어느 아나운서 인스타그램에서 홍매화 소식을 접했다. 이분이 한복을 입고 홍매화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한복 입은 모습도, 홍매화가 만발한 모습도 모두 아름다웠다. 이틀 연속 고궁에 가는 게 좀 그렇지만 갈 수 있을 때 빨리 다녀오고 싶었다. 이번 주말이 아니면 한동안 시간 내기 어려울 듯해서. 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마어마한 렌즈를 달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종군기자처럼 치열하게 촬영하던 프로 사진사도 보였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내 다이아나 미니가 약간 초라해 보였다. 그 어떤 카메라 못지않게 예쁘지만. 플라스틱으로 감싼 똑딱이일 뿐이니. 그렇지만 나도 다이아나 미니로, 폰카로 사진 찍느라 바빴다. 사람들이 많다 보니 빨리 찍어야 했고. 폰카로 찍을 때는 일반 렌즈로도 찍고, 광각 렌즈로도 찍다 보니 몸도, 마음도 분주했다. 이날 날은 화창했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하늘에 구름도 많았다. 광각 렌즈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신경은 온통 홍매화에 쏠렸다. 막상 결과물을 보니 이날 하늘도 제법 멋있게 찍혀서 조금 뿌듯했다.

앞서 고궁은 갈 때마다 늘 느낌이 다르다고 했는데- 이번에 내가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과 씁쓸함이었다. 홍매화는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창덕궁은 조선 후기와 말기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지 않나. 경술국치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고. 궁 모습도 이질적이다. 궁에는 전등이 달려 있고 고전미와 근현대 요소가 두루 섞여 있는데- 외세가 물밀듯 들어오던 시절 격변하던 당시 나라 상황이 느껴진다. 소파나 수도꼭지, 전등을 이 궁에서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국보와 보물로 각각 지정된 인정전, 대조전을 보면서는 경외심도 느꼈다.

사진 2번 인정전, 4번 대조전. 사진=딱정벌레

씁쓸함이 가장 고조되는 또 다른 공간은 바로 낙선재다. 낙선재는 갈 때마다 늘 비감한 느낌이 든다. 순정효황후나 덕혜옹주가 마지막까지 살다 간 곳이기도 하고. 덕혜옹주의 험난했던 삶은 굳이 말을 더 보탤 것도 없다. 초등학교 때 TV에서 덕혜옹주 드라마를 인상 깊게 봤다. 그 내용도 왜곡이 심하다는 말이 있지만-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비극적인 내용이라 슬프고 마음이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 삶이 이렇구나. 그나마 저 사람들은 왕족이랍시고 이 정도라도 대우받고 살았는데 서민의 삶은 어땠을까.

궁을 둘러보면 나인들의 노동현장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보이는데- 불 떼는 공간이 그렇다. 이번에 유독 그 공간에 눈길이 갔다. 한겨울에는 밤새 방에 불을 떼야할 텐데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누군가는 밤새 이를 지켜보면 장작을 밀어 넣고 혹시라도 불이 거세게 번지지는 않을까 불철주야 감시하지 않았을까. 심야 당직에 합당한 보수를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분제 사회에서 얼마나 합리적으로 대가를 치러줬을지 잘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이름도 남지 않은, 어느 누군가 고된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창백한 푸른 점에서 치열하게 살았을 사람.

창덕궁은 원형이 잘 보존됐고 역사가 오래된 궁궐이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다시 지어졌다. 여기에 심긴 나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많은 나무들이 몇십 년 된 수준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나무 느낌이 많이 났다. 역시 궁에 심는 나무는 거대하고 울창하며 뭔가 다르구나 싶고. 당시에 가장 좋은 것은 다 궁궐에 있었으니. 럭셔리(?) 문화 끝판왕이라고 해야 하나, 조경도. 새로 지은 건물보다 이곳 나무가 역사가 더 오래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무에도 보다 경외심을 갖고 바라봤다.

사진 1번 낙선재. 사진=딱정벌레

궁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고. 어릴 때는 옛날이야기는 무조건 따분하게 생각했는데- 사극 드라마는 재미있게 봤고 그걸로 역사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옛날이야기는 재미없어도 치정극은 늘 흥미롭긴 했지만(정선경 배우가 장희빈 역을 맡은 드라마 '인현왕후'를 얼마나 몰입해서 봤던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지만 내 일생의 낙이었다). 어릴 때 역사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국사보다 한국 근현대사가 더 재미있긴 했다만. 현대 이야기라서 그런가.

어릴 때 고궁에 갔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고,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성인이 돼서도 그런 경향이 없잖았는데-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나이 들면 산 좋아하고, 꽃 좋아한다더니. 고궁도 그런 모양. 가족과 경주에 가도- 경주도 곳곳이 문화재고 유적지인데 어릴 때는 별 재미를 못 느끼다가 커서야, 나이를 꽤 먹어서야 오릉이나 천마총 역사가 얼마나 재밌는지 비로소 실감한다. 조선 궁궐도 마찬가지. 2014년에 언니와 덕수궁 투어를 해설과 함께 들은 적 있었는데 그때는 흥미롭기는 했다.

역사도 한 편의 이야기이니까.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가다 보면 어릴 때 전래동화 듣던 것과 똑같다. 한편으로는 커서 좀 더 상황과 맥락이 이해되는 것도 있고 그래서 더 재밌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공감이 안 갔는데- 커서는 특히 서른 줄에 들어서면 아주 풍부하지는 않아도 10~20대 때보다 겪은 일, 감정이 많다 보니 역사 속 이야기가 어떨 때는 내 삶 속 이야기처럼 공감되고 이해될 때가 있다. '아, 이랬겠구나',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름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기도 하고.

사진 3~4번 박태원 작가 그림, 5~6번 이수경 작가 작품. 사진=딱정벌레

덕수궁에서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를 봤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무료 전시가 많은 데다 그마저도 좋은 작품이 많아서 다녀오는 보람이 있다. 덕수궁관뿐만 아니라 서울관도 그렇고. 과천관은 안 간지 좀 됐는데 국립과학관과 함께 오랜만에 가보고 싶다. 청주관도 괜찮다고 들어서 역시 궁금하고. 덕수궁에서 그리 많은 전시를 본 건 아니지만 봤던 전시는 다 좋았다. 조르조 모란디 전이나 박래현 전이나. 작품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작품 너머 작가의 삶, 작품 철학이 마음에 와 닿아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는 정말 물건인 게- 말 그대로 미술과 문학의 접점을 담았다. 봉준호 감독의 외조부로 알려진 박태원 작가가 그린 그림도 전시됐고. 이상 작가가 그린 그림도 있었다. 이 사람들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린다. 어떤 그림에는 일제강점기 도시 풍경을 담은 그림도 있는데 그때도 근대화가 진행돼서 그런지 가게 간판이나 거리 풍경이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수경 작가 작품도 봤는데- 전시작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 작가가 새로 만든 작품이 여럿 있었다(예전에 대구미술관에서 이수경 작가의 '눈물', '모두가 잠든 후에(맞나?)' 작품을 인상 깊게 봤다).

박태원 작가 그림은- 삽화였는데 남녀가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봤을 때 모습으로 그렸는데 실제 그 현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입체적으로 잘 그렸다 싶었다. 표현력도 뛰어난 사람. 옛날부터 신문이 문단 등용문이다 보니 옛날 신문에도 소설이 많이 실렸는데. 거기에 그린 삽화도 전시했다. 2 전시장 전체를 그렇게 꾸몄는데 신문마다 다 스탠드를 설치해뒀다. 2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조명과 함께 스탠드와 신문이 공간을 빼곡히 채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공간을 정말 잘 구성했다 싶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 같았다고 해야 하나.

사진 1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전시실. 사진=딱정벌레

2 전시장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시집도 전시했기 때문이다. 김소월 '진달래꽃',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마해송 '해송 동화집', 서정주 '귀촉도' 등 여러 시집이 전시돼 있었는데- 표지에 그린 삽화가 무척 아름다웠다. 내가 제목을 언급한 시집이 대체로 그랬다. 서정주 선생은 친일 역사가 있다는 점이 좀 걸리는데 귀촉도 자체는- 시각적으로는 예뻤다. 윤동주 시인 시집은 연희전문대 선후배들이 함께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책에서도 느껴져서 왠지 짠했다.

신문 소설 삽화는 보기 불편한 것도 몇 가지 있었는데- 벗은 여성 몸을 탐하는 시선이 그림에서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게 핵심적인 내용이라서 담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그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난 몸이 좋다는 남성 상반신 노출 사진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지난해 안양천에서 산책하다가 맞은편에서 어떤 남자가 웃통을 벗고 걸어오는 걸 보고 기겁하는 줄 알았다. 본인 몸에 자신감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남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짜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싶었다. /식빵 식빵/

그런 가운데 절제미(?)가 돋보이는 어떤 소설 문구를 봤는데 인상 깊어서 사진을 남겼다. 그림은 그냥 그랬고. '여자의 시절을 만나지 못하였다', '구월이의 쓸쓸히 닫힌 청춘의 가슴에도 군림하는 남성이 있었다' 이런 표현이었는데- 그 뒤에는 어떤 내용이 이어지는지 모르겠지만 표현이 눈에 띄었다. 여자의 시절이라. 마음을 군림한다라. 그래, 살다 보면 눈 돌아가는 순간이 있지. 몇 년 가기도 하고. 내게 여자의 시절이란 무엇인가. 그런 시절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구나란 생각도 들고. 이렇게 그림으로 인상 깊은 소설 문구와 역사적인 문학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쉽게도 시간이 빠듯해서 3~4 전시장을 제대로 못 봤는데 덕수궁 입장료 1000원을 제외하면 무료 관람이니 시간 될 때 또 가보고 싶다.

덕수궁 돌담길과 꽃. 사진=딱정벌레

덕수궁도 가면 마음이 스산해지는 곳 중 하나다. 덕수궁뿐만 아니라 돌담길을 비롯해 주변 길이 다 그런데- 첫 직장이 서대문역 근처에 있었고 정동길로 연결돼서 난 이 주변을 참 자주 다녔다. 출입처에 있다가 회사로 복귀할 때도- 을지로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가려면 항상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을 따라갔다. 그 동네는 대중교통을 타고 가도 빨리 가기 어려워서 걸어서 가나, 차 타고 가나 비슷했다. 지하철 1호선 통로를 종횡무진해서 시청역 1번 출구로 걸어 나와 돌담길을 따라 걷는데- 가다가 연락 오면 아무 벤치에 앉아 자료를 처리하고.

그 길을 걷다 보면 아관파천 때 고종이 도망치던 길도 지나는데 이 또한 가슴 아픈 역사 현장이다. 조선 후기, 말기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고 그때 터가 많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내가 생전 겪은 일은 아니지만 길을 지나치다, 우연히 안내판을 보다 보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 나라가 이렇게 힘든 시절을 겪었구나. 그때 그 길을 도망치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사자는 그 누구보다 비참하지 않았을까.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 의연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나라가 있다는 건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다.

마음 아픈 길인데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대로 추억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이 길을 뻔질나게 다니던 시절은 내 인생에서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는데- 살려고 발버둥 친 게 생각나서 애틋하고 진한 기억으로 남아서, 그래서 그 길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어떨 때는 바쁘게 스쳐 지나간 길이었지만 어쩌다 시간이 조금 남을 때는 평소보다 조금 여유롭게 걸으면서 거리를 만끽할 때도 있었다. 퇴근길에 저녁 약속을 거기서 잡거나, 야간 당직하기 전 시간이 좀 비어서 밥 먹고 산책하거나, 그게 금요일이면 마음이 놓이고?

사진 1번 정동극장, 2~3번 정동길에서 만난 이름 모를 나무. 벌써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딱정벌레

야간 당직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적게나마 수당은 항상 나왔고, 하루 동안 다 못한 일이나 미리 해야 할 일(원고 처리)을 그때를 활용해서 처리하곤 했다. 밤 11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해서 졸리고 눈꺼풀이 무거울 때도 있는데- 금요일에 하면 차라리 나았다. 다음 날 쉬니까. 평일에 하면 다음 날 출근 부담 때문에 좀 힘들고. 첫 직장에는 건물 1층에 스타벅스와 오가다가 있었는데- 당직하다가 스타벅스에서 수프나 과일 믹스를 사고, 오가다에서 오미자 차를 사 마실 때 좋았다. '박봉이지만 이것이 직장인의 삶이구나, 감사하다' 그런.

그러나 추억은 추억으로만 존재할 때가 가장 아름다운(?) 듯하다. 저 일을 현실로 소환하면 또 욕하면서 일할 거다. 싫지 않은 기억이지만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를 회상할 수 있지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앞으로가 중요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가족이 보다 건강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를 그리워하는 건 예외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음껏 생각해도 좋은 것 같다. 추억이 힘을 줄 때도 있으니까.

보통 주말에 사진을 많이 찍는데- 평일보다 여기저기 많이(?) 다녀서 그런 듯하다. 이번에는 고궁에 가서, 전시를 봐서 사진을 좀 남겼는데 아쉽게도 창덕궁에서 찍은 필름 사진이 많이 날아갔다. 사진관에서는 뒤판을 열었거나 노출이 오버돼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던데. 뒤판을 열지도 않았고 노출은 평소와 비슷하게 했다고 생각해서- 내가 카메라 뒤판을 꼭 안 닫았나 싶었다. 허옇게 뜬 사진 투성이지만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채도나 구조 등 이것저것 최대로 조정해서 겨우 색을 얻기는 했다. 그나마 폰카로 선명하게 남겨서 다행이다.

최근 다이아나 미니 필름 스캔 결과물. 사진 1~6번 포토콜라로 찍은 것, 7~8번 저스트필름으로 찍은 것. 난 4번과 6번이 마음에 든다. 빛의 흐름이 느껴진달까. 사진=딱정벌레

덕수궁에서 찍은 필름 사진은 밤에 찍었고, 실내 촬영이 많아서 햇빛 쨍쨍한 날 찍은 결과물에 비하면 상태가 좋지 않은 게 많았다. 초점이 안 맞거나 흔들리거나. 한편으로는 다이아나 미니에서는 그런 느낌이 좋아서, 사진이 또렷하거나 선명하지 않아도 사진 특유 색감이나 분위기가 더 좋은 느낌을 전달하기도 해서- 나쁘지만 않았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궁색하게 변명만 늘어놓는 건 같다. 뭔가 있어 보이게, 현학적으로(?) 말하지만 사실 아무 말도 아닌 말. 그냥 신경 써서 찍은 게 아까워서 억지로 의미 부여하며 정신 승리한다고 말해.

최근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새로 팠다. 다이아나 미니로 찍은 사진만 올리는 계정인데- 이것저것 정리하고 보니 사진이 200장 가까이 돼서 이쯤 되면 단독 SNS 계정을 운영해도 되겠다 싶었다. 원래 플리커에 사진 계정을 따로 운영하지만 예전 같은 분위기는 아닌 듯하고- 이제는 내가 찍은 사진을 좀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면서 반응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사진 계정을 따로 만들었다. 로모그래피에서도 내 사진을 봐주면 좋겠고(로모그래피 코리아에서 사진 몇 장에 마음 표시를 누르고 가주긴 했다)?

홀가를 좀 더 자주 쓰면 홀가 계정도 따로 만들고 싶다. 다이아나 미니 계정은 아직 팔로잉도, 팔로워도 없지만 신기하게도 사진을 올리면 반응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해시태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해시태그로 내가 쓰는 카메라나 필름, 제품 회사명을 검색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결과물을 내는지 볼 때가 있다. 필름 색감도 미리 파악하기도 하고. '저 사람은 내 거보다 더 저렴한 카메라로 어떻게 저리도 사진을 잘 찍었을까'란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진정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사진도 더 잘 찍고 싶다.

사진=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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