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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정이 일깨워준 장인정신

난 예술가에 버금갈 만큼 내 일에 자부심이 있나

by 딱정벌레
초코파이 정 바나나. 사진=오리온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온몸에 세포를 집중하며 자기 일에 열심을 다하는 프로는 많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그런 사람들을 종종 마주한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난 당연히 이 분이 떠오른다. 지금은 보직을 모르지만 내가 뵀을 당시 오리온 파이개발 2 팀장을 맡았던 그분(실명은 거론하기 부담스러워서 언급하지 않는다).

때는 2016년 5월이었고. 난 용산 문배동 오리온 본사에 가서 그분을 만났다. 원래 선배가 하시기로 한 인터뷰인데 내게 큰 인심을 써주셨다. 바로 인터뷰 기회를 내게 양보해주신 것. 그런 기회는 흔치 않다. 더욱이 그때 오리온은 초코파이 정 바나나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오리온 초코파이 정이 출시된 게 지난 1974년. 42년간 자매품이 없었다. 근데 2016년 회사에서 바나나 맛을 첫 자매품으로 출시했다.

제품이 주목받다 보니 담당자 인터뷰를 요청하는 곳도 많았다. 기자라면 잘 나가는 사람, 화제의 인물을 취재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런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건 쉽지 않다. 인터뷰하면 발제 거리도 생기고, 모든 걸 스스로 조사하고 자료 확보하고 멘트 따는 등 올 바이 마이셀프로 기획해서 쓰는 다른 취재기사보다 부담이 약간 덜하다. 물론 그런 부담은 있다. 간담회도 그렇고, 인터뷰도 그렇고 기사로 쓸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돌아버린다. 시간도 아깝고. 또는 말을 더럽게도 못 하면 나중에 녹취 파일 들으며 워딩 하는데 괴롭다. 잘 이야기해주면 그건 그거대로 부담된다. 잘 쓰고 싶은데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질문도 잘 준비해야 한다. 이미 다른 매체와 여러 번 인터뷰한 사람이라면 다른 질문을 해야 하고.

아무튼 화제의 제품을 개발한 사람이라 누구나 만나고 싶어 하는데 선배의 호의와 인심으로 귀한 기회를 얻었으니. 그 고마움은 절대 못 잊는다. 돌아보면 그 선배는 그 이후에도 내게 좋은 인터뷰 기회를 양보해주셨다. 선배가 다른 부서로 발령 나시면서 내가 대신 인터뷰했는데 지금은 없어진 서비스인 패션 스트리밍 서비스 '프로젝트 앤' 담당 임원이었다. 그 또한 너무 감사한 기회이고 기억이었다. 선배는 내가 인터뷰 기회를 무산당할 뻔할 때도 내가 모르게 담당자에게 연락하셔서 대신 목소리 내주시기도 했다. 어느 기술 기업 인공지능 자연어 처리 연구자가 다른 기술 기업 기조연설자로 와서 주최 측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해당 기업 한국지사에서 뒤늦게 알고 인터뷰를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난 오래 전부터 준비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선배께도 보고했는데 나중에서야 선배가 행사 주최 측에 이런 상황을 설명하시며 문제제기했다고 다른 데서 전해들었다. 아무튼 그날은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우울했다. 동기에게 전화해서 넋두리를 늘어놓고 조선일보 근처 폴 바셋에 가서 맥주 한잔 했다.

사진=픽사베이

또 이렇게 삼천포. 어쨌든 귀한 기회를 얻어 오리온에 갔다. 해태제과 기자실에 있다가 마감하고 오후에 걸어서 이동했다. 같은 용산에 있어서 금방 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리온은 지하철 1호선 선로 근처에 있어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길을 돌아서 오르막도 올랐던 것 같다. 사진부 선배와 그 회사 앞에서 만났다. 선배는 고양 오리온즈 팬이라서 오리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마침 오리온즈가 전년도 프로농구에서 우승했던지라 선배는 회사 로비에서 우승 트로피를 배경 삼아 기념촬영도 했다. 홍보팀 관계자와 만났고 다른 홍보팀 사람과도 명함을 나누며 인사했다. 근데 실수로 해태제과 사람 명함을 내밀어서 서로 당황했던 것도 떠오른다. 인터뷰이를 만나러 이런저런 공간을 지나 휴게실 같은 곳에 도착했다. 사진부 선배가 바쁘시기 때문에 사진을 먼저 찍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파이개발 2 팀장님은 식품공학도 출신이고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오리온에 입사한 건 2002년. '초코파이 정', '후레쉬베리', '참붕어빵' 등 파이 제품을 주로 개발하셨다고. 초코파이 정 바나나 개발에 들어간 건 3년 정도인데 그전부터 다양한 맛을 원하는 소비자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녹차, 귤, 사과, 고구마, 콜라, 사이다 맛 등. 후보군으로 20개 맛을 넣고 경합을 벌였는데 이중엔 딸기, 헤이즐넛 맛도 있었다고 한다. 4년여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돌아보면 일부 맛은 이미 제품으로 나온 것 같다. 꼭 초코파이 정이 아니더라도. 바나나를 낙점한 건 초코파이 정과 공통분모가 많기 때문인데 둘 다 하나라도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서로 궁합도 잘 맞을 거고.

사실 초코파이 정은 개발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큰 제품이다. 일단 역사가 오래됐고 회사의 대표 제품이니까. 러시아에서 초코파이 정 위상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잘해야 본전이고. 소비자 입맛도 많이 바뀌었다. 제품이 처음 나온 1970년대 중반은 우리나라가 풍요롭지 않을 때였다. 먹을 게 귀했던 시절 초코파이 정 의미와 지금 초코파이 정 의미는 많이 다르다. 소비자 선택지가 늘었으니 꼭 이걸 먹을 필요는 없다. 다른 제품보다 더 맛있고 영양가도 있어야 하겠지. 고려대상이 많다. 그래도 팀장님은 초코파이 정 개발에 참여하는 건 '가문의 영광'이라고 표현하셨다.

사실 인터뷰하면서 가장 큰 여운을 느낀 건 초코파이 정을 '제과의 종합예술'로 표현하신 그분의 말씀이었다. 내가 이분 말씀을 아직 못 잊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인으로 꼽는 건 바로 이 멘트 때문이었다. "초코파이 정의 빵은 비스킷이고 마시멜로는 사탕이에요. 거기다 초콜릿이 파이 겉을 감싸고 있죠. 전 초코파이 정을 만들면서 비스킷을 굽고 사탕을 만들고, 초콜릿을 동시에 만드는 거예요" 그분이 초코파이 정을 제과의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또 그분은 앞으로 아프리카 난민이나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이들을 위한 파이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 사람들이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파이를 만들고 싶다고.

사진=픽사베이

누군가는 제과의 종합예술이라는 그분의 멘트가 너무 과잉됐다고 보기도 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자신이 만드는 제품에 자신 있고 자부심이 크다는 의미도 있다. 그게 얼마나 멋있던지. 기자로서 발을 내딛은 지 얼마 안 된 나로선 그 자신감이 너무 부러웠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게 한낱 과자 정도로 보이겠지만 과자는 고기나 생선처럼 엄연한 식품이고, 이걸 개발하는 데 엄청난 변수와 식재료별 궁합을 고려해야 하는 등 종합 예술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의 산물이다. 오랜 연구개발의 결과물이고. 꼭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서 배양육, 대체육을 만들어야만 그게 과학인 게 아니라고. 어쨌든 내가 만든 제품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그분의 자기 확신이 기억에 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내 경력을 쌓아가면서 그 말씀은 갈수록 울림이 컸다. 진정한 장인이라면 자신의 결과물에 이 정도로 떳떳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난 예술이라고 할만한 결과물을 내고 있나. 난 내 결과물이 떳떳한가. 난 장인정신을 기울여 내 일을 하고 있나.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보면 자신 있지만 않다. 부끄러운 결과물도 많이 냈고 태업 수준으로 일할 때도 있었다. 그냥 그날그날 겨우 때우며 버티는 삶. 하루가 저물면 내일 먹거리를 찾아 손으로, 발로, 입으로 떠도는 삶. 고통이 시작될 때는 일을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 때였다. 다른 걸 만들어 보고 싶다거나, 남이 못하는 걸 해보고 싶다거나. 문제는 능력에 비해 욕심만 많아서 스스로 먼저 지치는 거였지만. 근데 파이개발 2 팀장님처럼 감히 나도 예술에 버금가는 결과물을 내고 싶다. 언제부턴가 일할 때마다 그 마음이 커졌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내일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요식 행위로 일하며 그저 그런 결과물 내다가 세상 떠나면 너무 후회될 것 같았다. 몸이 사람 마음 같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특히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그런 생각이 크게 들었다. 지금은 좋아지셨지만 그때는 말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튼 마음이 그랬다. 그냥 부모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 아버지는 평소 건강관리도 잘하셨는데도 그렇게 될 수 있고. 그래서 일이든 사랑이든 기회가 될 때 열심히 해야겠구나. 근데 사랑은 상호작용이고 내 마음 따라 늘 되지 않으니 그나마 내가 주도권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잘해야겠구나. 물론 일도 상호작용의 일환이지만.

늘 욕심만 이렇게 크고 결과물은 거기에 못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갖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소중하다.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잘 유지해야 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난 내 일이 예술이 되길 소망한다. 심혈을 기울여 다듬고 고치고 바로잡고 소리 내어 읽고 이상한 내용은 과감하게 들어내고. 한번 읽으면 이해되는지, 말이 되는지, 표현이 자연스러운지, 비문은 없는지, 표준어를 썼는지, 쓸데없이 외국어를 쓰지 않았는지, 한글로 쓸 수 있는 표현을 안일하게 영어로 쓰지 않았는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걸 불친절하고 어렵게 던져 놓지는 않았는지. 이 내용이 정확한 건지, 내가 바르게 이해했는지, 한 문장 한 문장 허투루 쓴 건 없는지, 내가 쓴 내용이 누군가에게 의미로 와 닿을 수 있는지. 그렇게 내 방망이를 깎고 싶다. 돌아보면 결과물의 내용이 예술이라기보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예술이면 좋겠다. 다만 내 예술은 머나먼 작가주의가 아니라 앤디 워홀의 팝아트 같길 바란다. 내 글이 외면받을지라도 그 글이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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