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MD는 사람 MD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콘퍼런스에 다녀오며 든 생각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어제는 코엑스에 다녀왔다. 내가 글을 납품(?)하는 회사에서 콘퍼런스를 열었다. 외부 필진도 갈 수 있어서 가봤다. 글에 도움될 배경지식도 얻고, 나중에 쓸지도 모를 잠재 주제를 파악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 19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 상당수가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국내 상황이 큰 고비를 넘기면서 요즘 들어 오프라인 행사가 조금씩 재개되고 있다. 그 회사 행사도 참가 인원을 500명으로 제한했다. 규칙적으로 행사장을 소독하고, 입장하기 전에 발열 체크를 하고 소독제를 손에 바르는 등 절차를 거쳤다. 점심 도시락을 나눠주는 대신 식대를 1만5000원씩 지급했다. 유료 행사는 아닌 듯한데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발표는 그 회사가 하반기 선보일 신규 플랫폼, 인공지능 스타트업 데모데이, 기술회사의 UX 이야기였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AI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접한 어떤 서비스다. '옷딜'이라는 기업의 로봇 MD 서비스. AI로 트렌드를 실시간 분석한다. 또 빅데이터를 학습해 인기상품을 분석하며 상품을 자동 진열한다. MD 업무 중 하나가 기획전 배너를 만드는 건데 AI가 이를 365일 자동화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로봇 MD가 수집해온 데이터로 인기상품을 모아 기획전을 자동으로 생성한다는 것. 보통 시장조사+상품조사, 상품진열+정렬, 기획전 작성+게시하는 데 각 10시간씩 걸리는데 이 모든 과정을 1분 안에 완료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MD 업무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 서비스는 흥미롭게 들렸다. 유통업계를 취재할 때 MD를 인터뷰하거나, 유통채널 홍보 담당자들에게서 MD 업무를 이것저것 들었다. 이 과정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나대로 'MD의 상'을 형성했다. 내가 깨달은 MD 업무는 정량적, 정성적 분석을 아우른 고도의 지적 노동이라는 거였다. 시장조사, 상품조사를 할 때는 데이터 분석, 자동화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MD의 모든 업무를 대체할 수 있을까? 발품을 팔아야만 얻을 수 있는 시장, 트렌드에 대한 통찰 문제가 떠올랐다. 실제 MD는 박람회, 핫플레이스 등 현장을 자주 다니고, 여러 가지를 보고 들으면서 시장 현황과 트렌드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홈쇼핑을 예로 들면 이렇다. 사실 이건 약 3년 전에 들은 이야기라서 지금 달라진 경우도 있다. A 홈쇼핑에서는 MD들이 IFA 등 해외 박람회도 다녀오고, B 홈쇼핑에서는 일주일에 2회 특정 요일을 정해 MD들이 담당 카테고리와 관련된 도심 번화가, 유통업체 오프라인 매장을 다녀오게 했다. C 홈쇼핑은 팀마다 한 달에 한 번 '트렌드 캐칭 데이'를 진행했고. D 홈쇼핑은 MD가 차별화 상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원단을 고르기 위해 해외 공장과 원단 브랜드사만 10번 넘게 방문하며 품질과 색을 확인한다고 했다.

사진=픽사베이

업계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유통채널별로 단독상품 경쟁도 뜨겁다. 이젠 유통채널이 단순히 특정 제조 브랜드 상품을 소싱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업체에서 자신만의 단독상품을 기획, 생산 단계부터 판매단계까지 다 챙긴다. 소재, 디자인, 패키지도 다 따지고. 홈쇼핑 MD의 경우 이 모든 걸 다 챙기기 위해 해외 방문 횟수가 전보다 2~3배 늘었다고. 특히 홈쇼핑에서는 국내서 잘 모르는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를 차별화 상품으로 내놓는 영향도 있고. D 홈쇼핑에서는 "이탈리아 원사는 영업기밀을 이유로 잘 보여주지 않아서 MD가 해외 현장에 가서 직접 소재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19 이후에는 어떻게 하는지 새삼 궁금하지만.

어쨌든 MD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어떤 기획전을 열지, 단독상품을 어떻게 기획할지 구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로봇 MD가 직접 하기 어려운 발품팔이, 확인, 협의 과정이 중요해보인다. MD 특유의(?) 감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 대형 오픈마켓 MD들을 인터뷰했을 때였다. 대형 가전 MD들이었고 경력이 10년이 넘는 베테랑이었다. 그동안 대형가전 MD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없잖았다. 이분들은 여성이었는데 주부 특유의 눈썰미와 감각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과거 백색가전 시대를 넘어 몇 년 전부터 디자인·인테리어 요소를 더한 대형가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상품을 잘 기획하려면 상품 기능에 정통하면서 디자인 감각도 갖춰 소비자 취향을 저격해야 하는데 여기서 여성 MD가 활약했다.

이분들은 잘된 상품 사례로 '삼성 김치냉장고 패밀리 패키지', '위니아 딤채 레트로 소형 김치냉장고 쁘띠 전 색상', '레트로 김치냉장고+레트로 소형 냉장고 패키지'를 들었다. 1번을 기획한 MD님은 '내 김치냉장고를 바꾸는 김에 엄마 것도 함께 바꿔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여성 소비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그래서 김치냉장고를 두 개 묶은 패키지를 내놓았는데 완판 됐다고. 2, 3번을 기획한 MD님은 큰 김치냉장고를 사는 게 부담스러운 나홀로족을 고려해 크기가 적당하고 색이 예쁜 제품을 기획했다고 했다. 홈쇼핑에서만 팔던 분홍색·하늘색 제품을 소싱했다고. 다른 채널에만 팔던 걸 조금이라도 소싱하려면 엄청난 설득과정이 필요할 듯.

예쁜 대형가전이 인기 있다는 건 데이터로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애초에 자신들 채널에서 팔지 않은 상품이라면 자체 데이터로 이를 파악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어쨌든 홈쇼핑에서 어떤 색상의 제품을 파는지, 이게 우리 채널에서 평소 파는 건지 아닌지, 안 파는 거라면 이걸 소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건 평소 MD의 경험과 숙고를 통해서 나올 수 있는 통찰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 김치냉장고를 바꾸는 김에 엄마 것도 바꿔야지라는 생각은 사람이니까, 주부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로봇 MD가 이런 감성도 가질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기업의 로봇 MD 서비스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아마 다른 곳에서도 이런 걸 개발할지도 모른다.

사진=픽사베이

다만 내가 궁금한 건. 앞으로 로봇 MD는 이런 절차도 다 자동화할 수 있을까. MD 업무에 시장조사, 상품조사, 기획전 기획, 게시 등이 들어가지만 그게 MD 업무의 전부는 아니니까. AI는 그들의 노하우와 업력도 다 학습해서 효율적이고 성공적인데다 소비자 감성도 건드리는 기획전을 기획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도 시장조사, 상품조사, 기획전 생성 업무라도 자동화되면. MD는 다른 가치 있는 정성적 업무에 더 심혈을 기울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MD들은 엄청 바쁘니까. 그러나 전자상거래 회사에도 데이터 분석가들이 또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의 역할은 어떻게 될지.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새삼 사람 MD들은 이런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들 입장에서 자동화를 희망하는 업무는 뭔지도.

이것과 상관없지만 다음 글을 준비하면서 기술 결정론, AI 역할 범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AI가 의료, 생산성, 자가격리 감시, 사무업무 등 각 분야에서 해결사로 주목받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생각만큼 AI가 많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약점만 노출했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기업은 상품에 AI가 없는데 포장됐다는 회의론도 있고. 'AI는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우릴 구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기사도 와이어드에서 나왔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AI 기업들은 희망가를 부른다. 기업별로 기술 성능과 실효성에 편차가 있는 듯하고. 이럴 때일수록 자신들의 기술 경쟁력을 입증해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으로 옥석이 가려질 수 있겠다.

AI에 대해 글을 쓸 때 이런 고민이 든다. 이 기술이 만드는 유토피아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도 만든다. 기자로서 기술 콘텐츠를 쓸 때 지켰던 원칙은 '기술 결정론에 빠지지 않겠다'는 거였다. 기술 작동과정, 부상 배경, 활용사례를 짚더라도 마지막에는 꼭 이 기술의 한계로 글을 마무리했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그래야 하니까. 작가로 특정 기업 기술 콘텐츠를 쓸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넣으려면 넣을 수 있지만 이미 해당 기술의 필요성과 그쪽 기술 이야기만 하기도 바빠서 그 부분까지 생각이 못 미쳤다. '이렇게만 써도 될까?' 숙제만 마음 한켠에 남긴 채. 코로나 19 시대에 발견한 AI 가치에 주목하고자 하지만 강점을 과대평가한 건 아닌지. 절반의 진실만 보여준 건 아닌지. 그런 글은 양심적으로 문제있지 않은지. 이런 고민은 차치하고 일단 어렵다. 사람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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