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질문에 대한 고민

내 질문의 가치가 공감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요즘 내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질문'이었다. 바로 좋은 질문을 하는 것. 질문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하는 것. 질문에 귀천이 없고, 모르면 물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며칠 전에 쓴 글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았다. 모른다고 다 물으면 안 된다. 일단 스스로 답을 찾아보고 그래도 나오지 않으면 그때 물어야 한다. 질문을 받으면 상대방이 느끼기에 티가 난다. 이 사람이 충분히 알아보고 고민해서 묻는 건지, 정말 이게 궁금해서 질문하는 건지. 질문받는 사람은 그런 질문에 마음이 쏠릴 법하다. 사전조사 없이 '그냥 질문 하나로 한큐에 다 해결하겠어' 이런 게으른 질문은 환영받기 어렵다. 보통 그런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는다. 찾아보면 나오는데 그걸 일일이 타이핑 치거나 말로 하는 건 시간 낭비, 입 낭비니까.

분명히 좋은 질문은 따로 있다. 그게 뭘까. 사실 나도 그게 알고 싶다. 그래서 요즘 고민하고 있다. 일하면서 내가 쓰는 기술, 정확히는 그 회사의 기술에 대해 궁금증이 더 커져서 자주 질문한다. 짐작 가는 답변도 있지만 내 식대로 지레 짐작해서 쓰는 건 적절하지 않은 듯해서 확인차 묻기도 한다. 또는 질문하고 상대방이 답변하면서 글의 방향이 좀 더 잡힐 때도 있다. 내용이 더 나아질 때도 있고. 어려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하기 쉬워질 때도 있다. 보통 질문하기 전에는 일단 자료를 검토하면서 궁금한 걸 다 모아 본다. 이 중에서 내 선에서 정보를 찾아보며 답이 나오는 건 따로 솎아낸다. 그래도 나오지 않는데 글 쓰는데 꼭 참고해야 되겠다 싶은 부분은 질문한다.

이런 질문은 하면 안 될 것 같다. 앞서 얘기한 게으른 질문. 예를 들어 내가 쓰는 글과 관련된 질문 가운데 '공간 빅데이터가 뭡니까?' '메타 정보가 뭡니까?' '헤더 정보가 뭐죠?' '마크업이 뭐예요?' '전사는 뭐죠?' 이런 건 질문하면 안 된다고 본다. 그건 검색하면 답이 대체로 나오기 때문이다. 사전도 있다. 물론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개념이나 단위 같은 건 물어서 정확히 확인받는 게 낫다. 최근 질의응답을 받으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 회사 홈페이지에 안내된 기술 정보인데 내용이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그게 업데이트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거다. 난 그걸 보고 현업 담당자에게 질문했는데 그분이 그렇게 답했다. 그건 틀렸다고. 그곳은 자신들을 홈페이지에 정보가 굉장히 자세히 안내돼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수정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한 좋은 질문은 게으른 질문이 아니면 괜찮은 것 같다. 충분히 고민하고 알아봤는데 답을 찾기 어려워서 부득이하게 묻는 질문. 이건 좋은 질문이라기보다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질문인 것 같다. 물론 정말 쓸데없는 질문도 있다. 상대방을 골탕 먹이려고 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뽐내거나, 비본질적인 질문. 새로운 정보가 나올 수 없는 질문. 한국말로 진행하는 간담회에서 소수의 외국인 패널에게 바로 영어 질문하는 것도 싫었다. 공개적인 질의응답 시간은 모두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답변 내용은 모두에게 공유되고. 자기가 영어 좀 한다고 나머지 관중을 생각지도 않고 영어로 질문하며 자기 궁금증만 해소하는 게 별로였다. 나도 같이 있는데 자기들끼리 영어로 대화하던 한국인들도 불쾌했다. 그거 내가 모를 줄 알지? 생각의 허를 찌르거나 본질적인 부분,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점을 짚어주는 질문은 좋은 질문인 것 같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거나 도움되는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질문. 정말 답변돼야 하는데 내용이 나오지 못한 질문.

사진=픽사베이

사실 난 질문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다. 내가 좋은 질문을 하지 못한다는 열등감.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궁금한 걸 묻는데 그게 되게 어려웠다. 내가 이런 걸 모른다는 걸 드러내기가 부끄러웠고, 한편으론 내가 이런 것도 모른다는 핀잔을 들을까 걱정됐다. 실제 그런 비슷한 일도 있었다. 그 선생님이 내 질문이 게으른 질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다. 어쨌든 그런 경험이 있으니 질문하기가 마음이 참 어려웠다. 질문하려면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모르는 걸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는 게 없으면 사실 질문하기 어렵기도 하다. 특히 좋은 질문은 더더욱. 그래서 질문은 공부하고 고민해서 해야 한다. 그래야 꼭 질문해야 하는 것, 답변이 필요한 걸 분별할 수 있으니까.

어쩌다 보니 질문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어쩌다 보니 한 건 아니고 사실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었다. 꿈을 이룬 건 감사해야 할 일인데 열심히 하지도, 잘하지도 못했다.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건 행운이다. 물론 그 접근성은 그 업 종사자 누구에게나 다 공정하거나 동등하지 않다. 사실 기자의 경우, 매체력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본다. 물론 매체에 상관없이 취재 잘하고, 좋은 기사를 쓰는 기자라면 괜찮은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론 영향력 있는 매체의 경우, 자신들의 홍보효과가 높은 기사 거리를 갖다 바치는 기업들도 적잖다. 또는 기획기사를 만들어서 누구에게 먼저 전달했는데 별로라서 A기자가 안 받고, 그게 B기자, C기자에게 전달되고 어떻게도 안 먹히니까 그 기업 홍보팀에서 단체 메일로 기자들에게 뿌리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 삽질하던 초년생 시절엔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했다. 그 뒤에도 그렇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그때 출입처 사람들, 취재원들 생각하면 되게 송구하다. 마음이 좋은 분들이 "열심히 하느라 그런 거"라고 이해해주시기도 한다만. 그건 굉장히 드문 일.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의 맛에 들리고, 내 질문이 나쁘지 않다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건 간담회에 가서 공개 질문할 때 그랬다. 연차가 쌓이면서 그런 자리에서 질문하는 데 용기가 더 생겼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데 그 질문이 의미 있는 질문일 수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그 확신은 행사가 끝나고 타사에서 간담회 기사가 마구 쏟아지거나, 늦은 오후 지면 매체의 가판 기사가 나올 때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변이 타사 기자들의 기사에 많이 들어가 있으면 '아, 내 질문이 이상하지 않았나 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현답일 수도 있겠지. 질문은 그저 그런데 답변이 괜찮아서 실렸을 확률도 높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니 그런 경우가 여럿 생겼다. 그럴 때 소소하게 보람됐다. 쓸모 있는 질문을 한 것 같아서. 누군가에게 유용한 질문을 한 것 같아서. 질문하고 나면 "목소리 좋다"라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있고, "질문 잘했다"라고 타사 선배가 격려해주시는 소중한 기억도 있다.

사실 어디 가서 손들고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정말 다급하게 질문하는 경우는 이런 경우도 있다. 도무지 그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 중 기사로 쓸만한 게 없는 경우. 그럴 때는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데 때로는 기사를 위한 기사를 써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럴 때는 정말 참다못해 질문했다. 특히 간담회 초청장 보낼 때는 'A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서 갔더니 그 얘기는 일언반구 없는 경우도 있다. 근데 참석한 기자들 중에는 A 때문에 거기 온 사람도 있다. 아무튼 도무지 내용이 안 나오고 간담회 내용이 예고와 다를 때 화나서(?) 질문한다. "초청장에는 이런 얘기 하신다고 했는데 오늘 그 얘기는 안 나온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시죠". 뼈 아플 때는 전날 간담회에서 내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갖고 다음 날 타사 기자가 단독 달고 기사 썼을 때. 추가 취재를 해서 썼을 수도 있는데 그때 들은 답변으로는 그렇게 나올 수 없는 내용인데 그 기업에 농락당한 기분이 들어서 마음 상했던 적도 있다.

사진=픽사베이

그런 습관이 쌓이다 보니 굳이 취재 현장이 아니라도 편한 간담회나 사내 행사나 이런 데서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됐다. 물론 가장 먼저 질문하는 용자는 못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무르익고 나서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지 않고, 정말 궁금하거나, 필요하다 생각하는 질문을 하려고 한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행태를 우회적으로 질문해보기도 하고. 당황스러울 때는 이런 거였다. "질문의 의도가 뭐냐"는 말. 나쁜 질문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렇게 받아들였을까. 내 질문이 그렇게 이상했나. 찜찜한 기분을 안고 돌아선 기억도 난다. 왠지 준비하지 않은 답변으로 들렸는데 그래서 저런 말을 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답변은 괜찮았다.

지난해 가을 페이스북 타운홀 미팅 녹취록을 보면 거기 직원들의 질문은 굉장히 예리하다. 미디어에서 지적하는 회사의 문제에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이에 대한 회사 대책도 묻는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상사가 어떻게 볼까' 이런 걸 눈치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공세적으로 질문하는 분위기가 부러웠다. 문장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회사의 답변도 적극적이다. 다만 어떤 목적이 깔려있다 보니(의기소침해진 직원들을 독려하는) 너무 자의식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독고다이 이미지가 강하지만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에 참석한 페이스북 어느 직원분이 발표했듯 성폭력 문제를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타운홀 미팅 시간을 연장하며 직접 듣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흠.

이야기가 또 이렇게 삼천포로 흐른다. 정리하자면 내가 좋은 질문을 하고 싶은 이유는 이렇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좋은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자신이 쓰는 그 콘텐츠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한다. 한 문장 한 문장 허투루 써선 안되고, 다 이해해서 신중하게 써야 한다. 자료를 참고할 수 있다. 그건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식재료다. 그 내용이 이해가 안 간다면 그냥 붙여 넣기 해서 말 좀 다듬어서 쓰면 안 된다. 그 문장도 이상한 문장일 수 있다. 읽고 바로 이해 안 될 수 있고. 정돈해서 쓴 문장은 다른 문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글자를 그저 때려 박는 걸 글 쓰는 거라고 할 수 없다. 여기서 왜 이걸 이야기하고, 왜 이 사례를 제시하고, 그다음은 왜 이렇게 전개되는지 모두 치밀한 각본 아래 들어가야 한다. 이유 없이 들어가는 문장이 없어야 한다. 그게 레퍼런스의 레퍼런스더라도, 진실로 자신이 쓴 글이 되려면.

사진=픽사베이

질문을 잘해야 하는 이유.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나부터 이걸 잘 이해하기 위한 목적에만 그치지 않는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의미도 있다. 불행히도 자료가 틀렸을 수도 있다. 글 쓰는 주제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 이를 정확히 파악하는 취지도 있다. 그게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도출하는 건 더 중요하다. 전달받은 자료에서 그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당연히 질문으로 확인해야 한다. 단지 효용성과 편의성이 가치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냥 기능적인 이유일 뿐이다. 이걸 사용함으로써, 여기에 대해 알았기 때문에 독자가 어떤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자기들 우물에 갇히면 그게 제삼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깨닫기 어렵다. 칭찬해주는 몇몇 사람들 이야기만 들으면서 정신 승리한다. 기술 기업이라면 고생해서 기술을 개발하고 다듬었으니 구성원들의 자부심이 클 거다. 그래서 이것저것 장점과 효과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특별히 변별력 있는 경쟁력이 아닌 경우도 있다. 또는 강력한 장점이 있는데 그걸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낯설게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와 닿지 않는다면 설득하게 해야 한다. 그건 질문해야 알 수 있다. 물어보지 않으면 자기들끼리만 아는 그런 장점이 충분히 알려져 있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특정 기업의 기술에 대해 글을 쓸 경우, 회사의 목적은 자신들의 솔루션을 파는 데 도움되거나, 잠재 고객에게 더 노출되거나, 자신들의 회사 홈페이지도 유도하는 것일 수 있다. 독자는 노골적인 광고를 싫어한다. 그들에게 정보가 될 수 있고, 지식을 전달하며, 교육 효과도 있는 콘텐츠여야 한다. 그래야 그게 광고의 목적이 있더라도 일단 앎의 측면에서 얻는 게 있으니 읽어보려고 할 수 있다. 요즘 브루독 창업자가 한 말을 자주 떠올린다. 기업이 콘텐츠로 고객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말(딱 이 어록은 아니고 이런 취지의 말이었다). 계몽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장 똑똑한 건 사용자, 소비자, 고객이다. 요즘은 기업의 기술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도움닫기로 지식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오늘도 이렇게 의식의 흐름 따라 가독성 떨어지게 글을 썼네. 좋은 질문을 하고 싶은데, 많은 질문을 하고 있는데 내가 정녕 그렇게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서 쓴 글이었다. 누군가에게 훈계하는 것도 아니며 사실 내게 하고 싶은 말. 내가 답을 찾고 싶어서 쓴 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공지능 강연을 듣고 돌아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