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랜선 트레바리를 마무리하며
온라인 독서모임 효능감은 어느 정도일까
사진=픽사베이오늘로써 랜선 트레바리 마지막 미션을 마무리했다(이런저런 시상식이 남은 듯하지만). 랜선 트레바리는 온라인 유료 독서모임인데 트레바리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온라인으로 옮겨놓았다. 그러나 화상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건 아니다. 모바일 메신저 슬랙으로 모임을 진행한다. 참가비는 월 3만9000원. 책을 몇 권 선정하고, 이중 내가 읽으려는 책을 정해서 모임을 신청하고 결제한 다음, 슬랙으로 초대받는다(책은 알아서 구해야 한다). 운영진이 매주 미션을 주고, 우리는 정해진 날짜와 시간까지 답변을 올린다. 미션은 첫 주에는 참가 계기, 그 이후로는 책과 관련한 주제를 던져주고 우리 생각을 쓰는 내용이었다.
랜선 트레바리는 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코로나 19 이후로 오프라인 모임이 다수 중단되면서 온라인 모임에 관심이 많이 갔기 때문. 그러나 랜선 트레바리에만 관심 있던 건 아니었다. 'TEDXCircle' 모임도 그중 하나. 이 모임은 원래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2월이었나 한번 참여하고 그 뒤로 매달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달 특정 주제를 정해 테드 영상을 미리 보고 와서 대화하는 방식. 오프라인 모임은 참가자가 많았는데 온라인은 얼마 안 됐다. 기술로 봉사하는 '기봉이 프로젝트'도 화상 모임으로 주로 진행하고. 온라인 웨비나도 종종 들었다. 아마존웹서비스의 'AWS 서밋'도 그렇고, SAP의 포스트 코로나 HR 관련 세미나도 그렇고.
사실 랜선 트레바리 전에 내가 관심 있었던 건 미국 IT 매체 디 인포메이션의 북클럽이었다. 디 인포메이션은 온라인 유료 매체이고, 월스트리트저널 출신이 만들었다. 국내 미디어 스타트업이 많이 배우고 싶어 하는 모델(올봄에 블룸버그와 번들로 구독 상품도 냈는데 흥미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플랫폼을 통하지 않는 실험을 하고 싶다고 했던가, 자신감이 멋졌다). 이 매체는 원래 구독자를 중심으로 슬랙 커뮤니티를 활발히 운영한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19 팬데믹이 진행될 2월부터 북클럽을 새로 선보였다. 매달 책 한 권을 선정해서 화상회의로 진행. 라이브로 질의응답과 토론을 하는데 저자도 함께 한다고 했다. 사이트에는 책 리뷰도 올리고.
제시카 레신 대표는 뉴스레터를 통해 "사업 초기부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북클럽을 운영하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기회가 되지 않았다고. 그가 북클럽을 운영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테크 기자들과 기술 업계 사람들의 논쟁도 영향을 줬다. 각자 필터 버블에 갇혀서 더 큰 그림을 못 보고 다른 사람 의견을 듣지 않는 게 우려된다는 것. 당시 리코드의 코로나 바이러스 기사를 계기로 트위터에서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 일도 언급했다. 레신 대표는 북클럽이 피드를 벗어나 서로 머릿속에 깊이 들어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사진=픽사베이난 디 인포메이션의 북클럽이 인상 깊었다. 그때도 온라인 화상 모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팬데믹이 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사업모델인 업체가 많이 혼란스러울 때였다. 디 인포메이션은 그걸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시의적절하게 이런 모임을 구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선정한 도서도 마음에 들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요즘 핫한 책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일단 구독해야 하고, 시간도 정반대라서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내가 참여하기엔 어려웠다. 아무튼 이런 모델이 많이 나왔으면 했다.
그 이후 랜선 트레바리 모임을 알게 됐는데 내가 생각한 상과 달랐지만 선정 도서가 다 마음에 들어서 언젠가 참여하고 싶었다. 3월부터 갑자기 다시 글을 쓰면서 신청기간을 놓쳤다. 일단 일정표만 봤을 때 왠지 빡빡해 보여서 '내가 잘 참여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5월 말 글 때문에 빡치는 일이 있던 차에 홧김에(?) 랜선 트레바리에 신청했다. 마침 6월 선정도서도 마음에 들었다. 난 넷플릭스 창업자인 마크 랜돌프의 '절대 성공하지 못할거야'를 골랐다. 평소 전자책을 주로 사는데 이 책은 종이책으로 샀다.
한 달 동안 모임에 참여하면 느낀 점은- 일단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꼭 이 모임 때문만 아니지만 시간이 정말 금방 갔다. 6월은 평소보다 스트레스는 더 받아도 덜 바빴던 달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 여러가지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갔다. 글 주제를 내가 선정해야 돼서 시의성 있으면서 필요한 주제를 정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오랜만에 느끼는 발제 부담). 매일 브런치에 글을 썼다. 랜선 트레바리에 참여하면서 매일 일정 분량씩 선정 도서를 읽었다. 편집 공부를 했다. 기봉이 프로젝트 활동이 더 구체화되면서 조금씩 써야 할 글이 생기고 있다(짧은데 고민해야 하는). 그밖에 여러가지 감정노동. 내 지질한 생각과 상념도 한몫했다.
그렇다 보니 첫인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모임을 마무리하는 게 신기하다. 일단 첫 미션으로 '내가 이걸 왜 참여했고, 왜 이 책을 선정했는지' 메시지를 올렸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창업가 또는 기업가이기 때문에 창업자 이야기에 관심 있다고 했다. '창업 생각해본 적 있냐'는 질문도 있었는데 그건 절대 없다고 했다. 내 창업자 첫인상은 유통 취재할 때 본 프랜차이즈 업계 사람들이 주로 형성했는데 결과가 안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한때 눈부신 성장도 이뤘지만 양적 팽창에 그치고 질적 관리가 안 되는 등. 안타깝게 목숨을 저버린 사람도 있어서 창업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큐리오시티 스트림 이용했는데 스트리밍 시대 이후는 어떨지도 궁금하다' 이런 이야기를 올렸다.
사진=픽사베이참가자를 살펴보니 온라인 모임이라서 해외 참가자도 제법 있었다.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신기했던 건 전 직장 동료를 같은 모임에서 만난 것. 비록 슬랙으로 보는 거긴 했지만 거기서 오랜만에 이름 보니 재밌었다. '열심히 살고 계시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미션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책을 읽고 쓰면 좋겠지만 책을 안 읽고도 생각이나 경험을 쓸 수 있는 그런 미션이었다. 아무래도 창업 이야기다보니 창업, 조직문화와 관련된 미션이 많았다. '어떤 사람과 창업하고 싶냐', '선택과 집중해야 할 상황' 이야기 등. 평소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여서 머리를 트이게 하는 데 도움됐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거야' 책 자체도 재미있었다. 기업가를 다룬 책은 많지만 난 이를 많이 읽어보지 않았다. 내가 창업에 대해 처음 읽은 책은 임정민 님의 '창업가의 일'이라는 책이었던 것 같다. 그건 첫번째 직장에 다닐 때 읽었다. 창업에 관심있지 않았지만 스타트업에는 관심있어서 봤다. 그 뒤로는 임정욱 님, 벤 호로위츠, 피터 틸 책을 교과서 접하듯 봤다. 사실 봐야 할 자료가 너무 많다 보니 두 번째 직장에서는 그런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브루독 기사를 쓸 때 창업자 책을 보긴 했지만. 오히려 퇴사하고 '창의성을 지휘하라'(픽사) 같은 책을 더 봤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거야'도 그런 맥락.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진솔한 자기 고백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는 늘 관음증을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회사를 일궈놓고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대표 자리를 넘겨주던 당시 심정은 인간적이었다. 그럴 때가 있다. 자신이 특출나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 비감함. 머리는 넌 적임자가 아니므로 떠나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은 이를 거부하고 싶고. 그래도 저자는 회사를 위해 결단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씨 뿌리고 키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인상 깊었던 건 저자가 가정에 굉장히 충실하다는 점이었다. 일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일을 핑계 대고 집에 안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는 아내,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중시했다. 특히 아내는 저자에게 사업이 될지 말지 객관적인 조언도 해주고. 그 관계가 멋있어 보였다.
사진=픽사베이아마존에 회사를 넘길지 말지를 두고 미팅했던 일화도 재밌었다. 회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데 리드 헤이스팅스가 '협업하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까지 자세히 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는 데서 카리스마가 엿보였다. 직원들을 구조 조정하면서 있었던 일화는 요즘 시국과 겹쳐져서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사실 이 책 마지막 챕터가 좋았던. 랜돌프 집안의 규칙을 다뤘는데 특히 끝부분에 가서 저자가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가 마음에 와 닿았다. 어젯밤에 그 부분을 읽고 좋았다.
"나는 넷플릭스에서 해낸 일들에 정말 자부심을 느낀다. 넷플릭스는 내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서 무엇을 이루었느냐를 가지고 성공을 정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성공을 다르게 정의한다. 성공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었느냐를 가지고 정의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정의로 보자면, 나는 잘 해냈다. 또한 성공을 좀 더 넓게 정의할 수도 있다. 꿈을 가지고 끈질기게 시간과 재능을 투자해 그 꿈이 현실이 되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정의해도 나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아무튼 오늘까지 마지막 미션을 올리는 날이라서 그걸 올리고 온라인 독서모임 감상을 정리해봤다. 느낀 점을 다시 정리하면 1.책 한 권을 여러 사람과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게 좋다 2.미션을 수행하면서 평소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를 고민하는 과정도, 그 내용도 좋다 3.온라인에는 경계가 없다 보니 평소 접하기 어려운 사람과 연결되는 것도 괜찮다. 친분을 쌓지는 않았지만 모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 '온라인 독서모임은 이렇구나' 4.미션을 올리면 사람들끼리 서로 피드백하는 것도 좋다. 늘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만. 트레바리 운영진이 열심히 공감을 눌러준다
이 모임 효용은 이 모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듯하다. 자기 감상만 올리고 다른 사람 생각을 읽지 않으면 월 3만9000원이라는 참가비가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참가비 가치를 느끼려면 다른 사람이 올린 글도 꼼꼼히 읽고, 이를 고민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온라인 독서모임의 가치는 일방통행이 아닌 서로 생각을 교류하는 거니까. 사실 그동안 못 읽은 다른 사람 생각이 많은데 그걸 마저 봐야겠다. 다음 달에도 참여할지 말지 결정하지 않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덕인 시대에 좀 더 연결된 느낌을 갖고 싶으면 더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피터 드러커 책이 마음에 드는데 전자책으로 안 나와서 살짝 아쉽다. 모임 신청할 때 해보고 싶은 거 올리라고 해서 '온라인 회식'이라고 썼는데 이건 요원한 꿈(?)으로 남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