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한강 합수부를 배경으로 찍은 크레마 샤인. 책은 서머싯몸의 '달과 6펜스'. 사진=딱정벌레
전자책을 이용한 지 5년 됐다. 난 크레마 샤인으로 전자책을 처음 경험했다. 이 단말기는 아직도 쓰고 있다. 크레마만 쓰는 건 아니다. 리디 페이퍼 프로도 이용한다. 아이패드로 킨들 앱을 깔아서 책을 읽기도 한다. 주로 이용하는 전자책 서점은 알라딘, 리디북스, 아마존. 알라딘, 예스 24, 리디북스에도 책이 없으면 교보문고나 원스토어에서 책을 사서 읽을 때도 있다. 전자책 단행본의 경우, 서점마다 출간 시기가 다르거나 단독으로 선봬는 책이 따로 있기도 하니까. 크레마와 리디 페이퍼의 공백은 아이패드로 메울 수 있기 때문에 다 쓴다.
전자책에 입문한 계기는- 단말기 떨이 행사였다. 보통 신제품이 나올 때 구형 기기 떨이 행사를 많이 한다. 절반 가까이 후려친 가격에 판다. 크레마 샤인은 7만원대에 샀다. 원래 가격은 이보다 2배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초심자가 입문하기에 7만원대 전자책 단말기는 나쁘지 않았다. 사용 목적은 전자책을 경험하기 위함이다 보니 좋은 성능은 필요 없다. 전자책 단말기에도 'OO의 애플'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다. 전자책 단말기는 흑백으로 주로 쓰고, 사양이 낮다 보니 OO의 애플이어야 할 이유는 없는 듯하다.
킨들을 써보면 다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킨들은 앱도 훌륭하기 때문에 단말기를 쓰지 않아도 아쉽지 않다. 독자들이 많이 발췌한 책 구절도 볼 수 있고. 번역 기능도 지원하지만 한국어 번역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각사마다 전용 단말기가 있으면 좋다. 내가 전자책 단말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말기 성애자인 까닭도 있지만 눈 피로를 덜기 위해서다. 이에 기계가 너무 고급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쓰기 편하면 된다. 근데 이게 어렵지.
리디북스 독서노트. 사진=리디북스
단말기도 좋지만 앱 기능도 관건이다. 난 리디북스의 '독서노트' 동기화 기능이 꽤 많은 효과를 상쇄한다고 본다. 크레마 단말기나 알라딘 앱을 쓰며 한 가지 아쉬운 게 독서노트 동기화 기능이 없다는 거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로 책을 읽을 때 독서노트 동기화 기능은 요긴하다. 구독 서비스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특정 전자책 서비스를 중단한다. 일부 이용자는 여기에 불만이 많다. 그러나 독서노트 동기화 기능을 이용하면 해당 전자책을 특정 시기 이후에 읽을 수 없어도 독서노트로 내가 체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를 구현한 곳이 잘 안 보인다. 앱 편의성은 리디북스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리디북스에서 알라딘보다 책을 더 많이 사지 않는다. 가격 영향이 절대적으로 크다. 알라딘과 예스 24는 10% 할인쿠폰을 준다. 가격에 민감한데 여러 전자책 단말기를 가진 독자로서 단행본을 알라딘에서 산다. 만약 할인 혜택이 없다면 그때 리디북스에서 단행본을 산다. 아님 리디북스에서만 파는 단행본이면 역시 거기에서 구입하고. 리디북스의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리디셀렉트'를 이용하다 보니 리디 페이프 프로는 구독 서비스 전용 단말기가 됐다. 크레마 샤인은 따로 구입한 단행본 전용 단말기로 쓰고. 페이퍼 프로에는 구독 서비스에서 내려받은 책으로 가득 찼다. 기존 책도 지우는 터라 단행본을 더 사서 넣기 버겁다.
이밖에 밀리의 서재, 예스 24, 교보문고에서도 구독 서비스를 운영한다. 밀리의 서재는 무료 체험만 해봤고, 나머지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용 단말기 영향이 크다. 킨들 급 앱이 아니라면 전자책 이용 경험을 최적화한 채널은 전자책 단말기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는 읽어도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 눈이 피로하니까. 밀리의 서재 앱은 요란한 느낌이 들어서 난 불편했다. 참신하고 재밌는 기능을 많이 넣긴 하다. 근데 내게 필요하지 않고, 그걸 안 써도 내 독서경험에 문제는 없다. 종이책도 구독할 수 있지만 필요할 때 내가 직접 종이책 사는 게 더 편하다. 출간 작가로 책을 5권 낸 대학 친구는 밀리의 서재에 자신의 책을 채팅 형태로 편집해서 올린 걸 봤는데 그리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용이 노출될 거라고 출판사나 플랫폼 어디에도 연락받지 못했고. 채팅 형태로 문장도 편집하니 입맛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교보문고가 책이 많다고 하지만 돈을 더 써서 다른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 돈으로 다른 구독 서비스를 이용해 보는 게 나을 수도 있고. 북클럽은 리디북스와 전자책 규모가 비슷한 듯해서 관심이 더 가지 않았다. 흥미로운 게 있다면 크레마 단말기로 리디셀렉트를 이용하는 독자가 좀 있다. 규모는 잘 모르겠지만. 열린 서재 기능이 지원되는지, 아님 루팅한 건지 모르겠지만. 구형 단말기는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듯한데. 애플이 폐쇄형 OS 전략으로 재미를 봤는데 전자책 단말기는 좀 호환해줘도 좋겠다는 생각도 없잖아 든다. 그럴 거면 태블릿 PC로 전자책을 이용해도 되지만. 가방 안에 노트북 PC, 크레마, 리디페이퍼 프로, 아이패드 미니를 넣어 다니다 보니 "네 가방은 왜 이렇게 무겁냐"며 지인들에게 곧잘 잔소리를 듣는다.
제목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길게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여러 전자책 서비스와 단말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단말기별로 구독용, 단행본용으로 용도가 구분됐다. 할인 쿠폰 때문에 단행본을 알라딘에서 더 많이 산다. 리디에서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주로 구독 서비스용 책을 읽는다. 그렇다면 내가 책을 더 많이 읽는 채널은? 크레마 생태계다. 단 예스 24에서 책을 사지 않고 주로 알라딘에서 산다. 크레마 생태계에서 산 책은 86권이고, 50년 대여한 책 100권(펭귄 클래식)이 더 있다. 리디북스에서 산 책은 14권, 구독 서비스로 내려받은 책은 105권이다(중간에 삭제한 것 제외). 참고로 몇 권 오차가 있을 수 있다. 따로 구입한 단행본 수는 크레마 생태계가 훨씬 많다. 이유는 할인 쿠폰도 있고, 서비스 이용 기간도 크레마 생태계가 더 길다(크레마 약 4년 VS. 리디북스 약 1년 반)는 점.
이중 완독한 책은 크레마가 더 많다. 40권 VS. 30권. 참고로 30권 중 3분의 2는 구독 서비스로 본 책이다. 그래도 리디북스에서 구입한 단행본은 어지간하면 다 읽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14권 중 10권은 읽었으니까. 크레마 생태계의 경우 다 단행본으로 구입한 책인데 완독한 건 절반 정도라는 의미고. 완독을 꼭 지향하지는 않고 발췌독을 많이 하는 편이다. 순서대로 읽지 않고 필요하고 궁금한 부분을 중심으로 책을 읽기도 하고. 나머지 책은 아예 안 읽은 건 아니라 부분만 읽은 책이다(비겁한 변명 같은, 20쪽 읽는 동안 통찰을 주는 내용이 없으면 나와 안 맞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말할수록 구차한 느낌이 드는군). 회사에 다닐 때는 완독보다 발췌독을 주로 했다. 늘 시간에 쫓겨서 그랬다. 퇴사 이후에 완독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올해 보기 시작한 책은 웬만하면 완독했다.
아이패드 미니로 북저널리즘 프라임에서 읽는 이코노미스트 기사. 사진=딱정벌레
수치를 달리 해석해보면 구독 서비스로 100권이 넘는 책을 내려받지만 보는 책은 얼마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흥미로운 건 이 부분이다. 정가(?)를 주고 산 단행본은 왠만하면 완독한다. 구독 서비스에서 내려받은 책은 그 권수에 비해 완독한 책 비중이 적다. 왜 그럴까. 참고로 난 리디셀렉트는 6500원에 이용하고 있다. 작년 초부터 사용하기 때문에 인상가를 적용받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구독 서비스보다 따로 구입한 책을 더 많이, 더 빨리 읽는 이유는 내 경우에 이렇다. 1.내가 정말 내용이 궁금하고, 읽고 싶은 책은 따로 구입한 책이다 2.돈은 마음의 크기. 돈을 더 들인 만큼 시선도, 마음도 더 간다 3.구독 서비스로 내려받은 책은 구독 기간에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
1번.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직 적다.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기간도 제한적이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서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읽고 싶은 책이 적다는 거다. 그건 개인 독서취향도 탄다고 본다. 되게 만족하는 독자도 있기 때문이다. 난 반반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은 별로 없다. 그러나 구독 서비스에서는 '우연한 발견의 재미'가 있다. 자기 계발서가 많은데 난 이런 책을 즐겨 읽지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근데 이런 책을 너무 안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과학 전공한다고 꼴에 추상과 관념에 빠져서 삶의 기술에 너무 무지했다. 뒤늦게 참회하는 의미로 열심히 보고 있다. 삶의 정답은 될 수 없어도 실마리는 준다. 삶의 방향을 잡을 때 참고할 수 있다. 나를 반성하는 의미도 주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해도 내 잘못을 마주하고 깨닫고 더 나은 방향을 설계하는 데 도움되는 책이라면 그건 좋은 책이다.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도 구독 서비스에서는 의외로 괜찮은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의외의 발견. 돈 주고 사 보기 아까운 책을 여기서 볼 때 정말 꿀이다. 도서관에 가는 시간과 교통비를 고려하면 효용이 괜찮다. 내 경우에는 기업가나 글쓰기, 책 제작 노하우, 심리학 책이 유익했다. 참고로 짚어 넘어간다면 심리학 책은 너무 빠져들지 않는 게 좋다고 본다. 전문가가 쓰긴 했지만 자신의 심리에 문제가 있다면 어설프게 책 읽기보다 병원에 가거나 상담센터에 다니는 게 훨씬 낫다. 요즘 '그래도 괜찮아'라고 다독이는 책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 연민이 들 수 있지만 거기에 빠지면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 의사와 대화하는 게 도움됐다. 우쭈쭈하지도 않고, 한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으며, 생각지 못한 점을 짚어주기도 해서다. 사실 그 의사 선생님도 구독 서비스 통해 책 읽고 찾아간 거지만.
사진=픽사베이
그러나 내가 내용이 궁금하고 읽고 싶어서 전자책 구독 서비스 이용료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본 책은 효용이 더 높다. 누가 큐레이션 해주는 걸 내가 집기보다 내가 필요해서 적극적으로 이용한 책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실패할 확률도 낮다. 기대 이상의 가치를 얻어간다. 난 더 많은 돈을 내고 그 책을 사기 위해 사전조사도 꽤 했기 때문이다. 구독 서비스에서 접하는 책은, 물론 내려받기 전에 간략한 설명은 읽는다. 그러나 6500원이라는 구독료 안에서 얼마든지 이용하는 책이다 보니 치밀하게 사전 조사하지 않는다. 돈을 더 많이 내고 사는 책은 구매 실패를 줄여야 한다. 그렇다 보니 리뷰도 더 꼼꼼히 읽고, 별점도 자세히 확인한다. 책 설명과 목차도 더 열심히 보고. 이 같은 노력을 거쳐 기대를 갖고 책을 읽다 보니 책이 더 잘 읽힌다. 얻어가는 게 많아서 읽는 동안 눈이 열리는 느낌 때문에 더 신나기도 하고.
2번 이유는 1번에서 설명이 됐다. 돈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 그게 이 책을 사기로 결심하는 과정, 읽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준다. 3번. 따로 구입한 책이나 구독 서비스로 내려받은 책이나 둘 다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 오히려 읽는 기간이 제한적인 건 구독 서비스 쪽이다. 내가 구독을 해지하거나, 구독 서비스로 이용하는 책의 서비스 기간이 끝날 수 있기 때문에. 근데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구독 서비스는 관성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직장에서 기자들도 CS 전화를 받을 때였다. 구독 취소나 아이디 확인 문의를 많이 받았다. 구독을 취소하려는 이들은 '보지도 않는데 돈이 나가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다. 회사에서 누가 구독해놓고 퇴사해서 구독료가 계속 나간 경우도 있고. 오죽하면 구독 서비스를 관리하는 게 사업 모델인 스타트업까지 나왔을까.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이들 중에는 이런 말도 했다. 추적해보면 자신이 기사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다 나오는데 난 기사 읽지도 않았는데 돈이 나갔으니 환불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분께 죄송하지만 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예로 들어 반박했다. 그러나 이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문제다 싶다. 구독하지만 콘텐츠를 이용하지 않는 고객에게 알림 이메일을 보내는 것. 언제 이후로 로그인을 안 하고 있다고 알려주거나. 그 고객도 뉴스레터는 받지 않을까 싶지만. 회사에서 서비스 마인드를 발휘해서 고객에게 이왕 돈 내고 이용하는 거 더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건 좋을 듯하다. 그러고 보니 모회사 고객의 소리 시간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멤버십 이코노미'에서도 본 듯도 하고.
사진=픽사베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데 귀찮거나 까먹고 구독을 해지하지 않는 이가 은근히 있다. '언젠가는 몰아서 보겠지'하는 경우도 있고. 구독 기간은 월 단위든, 연 단위든 제한돼 있지만 해지를 결심하지 않는 이상 사용자로서도 무제한 구독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구독료가 비싸지 않으면 그런 것 같다. 내가 다큐멘터리 스트리밍 서비스인 큐리오시티 스트림을 이용하는데 구독료가 월 4000원도 안 된다. 그렇다 보니 어떤 달은 콘텐츠를 많이 이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근데 구독료가 다른 서비스보다 싸다 보니 '뭐, 다음에 보지' 이렇게 관성적으로 넘어간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그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바쁘면 미룬다. 북저널리즘은 월 구독료가 2만원에 육박한다. 의식적으로 '많이 읽어야 해'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여기 콘텐츠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보니 읽어야 한다고 이렇게 의식해야 한다. 분명히 거기서 내는 책은 일반 단행본보다 얇고 1시간이면 다 볼 수 있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이건 개인 경험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사람들의 독서 행태, 구독 서비스 이용 행태도 다르고. 또 책을 기준으로 분석했기 때문에 아티클을 포함하면 또 다를 듯하다. 아티클은 가볍게, 빨리 읽을 수 있어서 구독 기간에 어지간하면, 의지를 가지면 읽을 수 있다. 특히 구독자 실무나 업종과 관련된 거면 자연스럽게 바로 읽을 수밖에 없고. 평소 업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기관, 기업에서 늘 기사를 스크랩하듯 말이다. 책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하는 콘텐츠라서 읽으려면 심리 문턱이 높다. 아티클은 비교적 덜하다. 아티클을 유료로 읽어야 한 이유를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시장은 천천히 변하고 있다고 본다. 많든 적든, 돈 내고 아티클을 읽는 독자가 어쨌든 존재하니까. 기성 언론사에서 자꾸 안 된다고 보지 말고 작게라도 디지털 콘텐츠에서 이걸 좀 실험해보면 좋겠다. 업력도 있고 전문성도 있는데 시대를 역행하는 곳을 보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