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주는 마음

기쁨, 위로, 평안, 사랑

by 딱정벌레
지난달에 산 해바라기와 패일 핑크, 핑크 로즈. 사진=딱정벌레

식물에 관심 가진 건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봄 전기자전거를 타다 내리막길에서 튕겨 나간 이후였다. 그때 병원 다섯 군데를 다녔다. 그중 치과를 더 오래 다녔고. 치과 진료를 마친 어느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오던 길. 그때 회사 근처에 꽃집이 있었다. 봄이라서 노란 프리지아를 많이 팔았다. 유독 마음에 드는 프리지아 한단이 있어서 샀다. 가격도 3900원으로 적당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쓸쓸했는데 꽃을 보니 마음이 개운했다. 노란색이 너무 예쁘기도 하고. 생기가 넘쳤다. 사진을 찍고 두고두고 봐도 너무 아름답고.

그날 이후였다. 가끔씩 꽃을 샀다. 사진을 찍어 SNS에도 올렸다. 언제였지. 금요일 저녁에 선릉 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그 꽃집에서 햇살 장미 한 단을 샀다. 또 사진을 찍어 올렸다. 첫 직장 주변에 걷기 좋은 코스, 이와 관련된 추억을 같이 썼다. 그날 저녁인지 그다음 주 월요일 저녁인지 예전 출입처 부장님이 연락 왔다. SNS 봤고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얼굴 보자고. 그 글에는 부장님 기억도 담았다. 회사 근처에 자주 미팅하던 식당 이야기와 그 식당 주차장을 지나서 회사 건물로 통하는 길이 있는데 같이 미팅한 사람들이 같이 걸어가곤 했다고. 주차장을 보면 거기에 길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 힘들다고. 같이 걸었던 사람 중에는 "옛날 길"이라며 감탄한 이도 있고. 그 부장님은 감탄(?)한 이였다.

부장님은 식물 집사였다. 집에 여러 화분을 키우고 사진도 곧잘 찍어 올리셨다. SNS로 보기에 나도 식물에 관심 있는 걸로 보인 것 같다. 부장님은 궁극의 불멸 식물을 몇 가지 추천해주신다고 했다. 꽃은 시드니까 오래가는 화분을 들이는 쪽으로. 그때 추천해주신 건 스파티필름과 흑고무나무였다. 그날 비료도 가져오려고 준비하셨는데 못 가져왔다고 하셨다. 수첩에 비료 넣는 순서를 그려주시기도 했다. 밥도 사주시는데 늘 얻어먹기도 송구해서 난 전날 서점에서 '아무튼 식물'이라는 에세이를 사서 부장님께 드렸다. 아무 책이나 산 건 아니고 필요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아쉽지 않은 가격에 팔 수 있는지도 점검했다. 그 이야기도 했더니 부장님은 손사래를 치셨다.

지난 5월에 산 장미(눈물의 특가). 사진=딱정벌레

그날 저녁 퇴근길에 난 롯데마트 페이지 그린에 들러 스파티필름 화분을 샀다. 가격은 3000원. 플라스틱 화분에 들었는데 그때도 이미 잎이 커서 장래가 유망해 보였다. 롯데마트에서 산 이유는 부장님이 롯데마트 가서 화분을 자주 구경하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롯데마트에는 여러 전문매장이 있는데 페이지 그린은 식물 전문 매장이었다. 화분도 팔고 디퓨저도 팔았다. 내가 종종 가는 롯데마트 양평점 페이지 그린에는 오가다 매장도 같이 있었다. 난 오가다를 좋아했다. 첫 직장 건물 1층에는 좌 스타벅스, 우 오가다가 있었다. 솔직히 스벅보다 오가다가 더 당겼다. 오가다는 계절마다 고유한 멋이 있었다. 가을, 겨울에는 따뜻한 차와 떡을 함께 먹어서 좋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식혜 스무디를 마셔서 좋았다. 야간 당직할 때도 중간에 오가다에서 따뜻한 차를 테이크 아웃하면 포근했다. 그때는 박봉이어서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일하면서 이런 차를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했다. 일터는 소중하니까.

그 이후로 화분을 구경할 때는 나도 롯데마트에 주로 갔다. 분갈이할 때도 가고. 그때 오가다에서 차 한잔 마시는 재미도 쏠쏠했다. 처음으로 분갈이하고 오가다에서 전보다 때깔이 고와진 스파티필름 사진을 찍었다. 흐뭇했다. 나중에 스파티필름 화분을 하나 더 사서 회사에도 뒀다. 그때부터 꽃은 더 이상 사지 않았다. 화분이 있기도 하고. 꽃은 빨리 시드니까. 사무실에 있던 스파티필름은 집에 있는 아이와 달리 왜소했다. 꼭 커야 할 이유는 없지만 생육환경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닐까 염려했다. 관엽식물이지만 나중에는 알아서 꽃도 폈다. 흰 꽃잎 안에 꿀과베기를 닮은 꽃이 있었다. 그때 기특하기도 하고 이렇게 기쁨을 줘서 고맙기도 했다. 집에 있는 스파티필름은 '저러다 나무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왕성하게 자랐다. 그러나 사무실 화분처럼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건 그거대로 신경 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꽃이 핀다는 건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것. 꽃을 안 피운 집안의 스파티필름이 더 살만할 걸 수 있다는 것. 그걸 알고 나니 사무실 스파티필름이 짠했다. 살기 힘들어서 저랬나 싶어서.

그렇게 두 계절이 지났고 다시 봄이 왔다. 난 다시 꽃에 관심을 가졌다. 코로나 19 영향도 컸다. 봄에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주변 상황이 많이 충격적이라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그러다 어느 주말 오랜만에 꽃집에 갔다. 강남에 볼 일이 있어서 강남역 스노 폭스에 갔다. 마침 봄이라서 꽃이 다양했다. 코로나 19 영향 때문인지 꽃도 할인 판매했다. 그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꽃이 있었으니 바로 장미꽃. 노랗고 파랗고 투톤으로 흰색과 분홍색이 함께 물든 장미꽃을 하나씩 샀다. 색 조합이 고민스러웠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듯 함께 있을 때 가장 시너지 나는 색으로 각각 뽑았다. 두 계절만에 산 꽃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코로나 19 때문에 어두웠던 마음을 조금 밝혀줬다. 힘이 났고 일상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내 겨울은 짙고 어두웠다. 그러나 2월에 주변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내 우울은 아무것도 아니며 이렇게라도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힘든 사람이 많은데 내 우울은 사치다 싶기도.

지난 봄에 산 3색 장미. 사진=딱정벌레

장미꽃으로 힘을 얻은 이후 1~2주에 한 번 꼴로 꽃을 사기 시작했다. 봄이 다시 왔으니 노란 프리지아도 사고, 스타티스도 사고, 리시안셔스도 사고, 소국도 사고, 튤립도 사고, 백합도 사고, 작약도 사고, 수국도 사고, 카네이션도 사고, 해바라기도 샀다. 성공한(?) 꽃도 있고, 너무 일찍 죽은 꽃도 있었다. 작약과 수국이 후자. 스타티스와 리시안셔스, 소국, 백합은 오래갔다. 향은 핑크 로즈가 좋았다. 백합은 향이 너무 진해서 환기를 잘해야 한다. 또 흰 벽지와 거리를 두는 것도 좋다. 자칫 꽃이 벽을 물들일 수도 있으니. 확실히 봄꽃이 다양하다. 여름에는 생각보다 살만한 게 많지 않다. 아니 어쩌면 내 취향에 맞는 꽃이 적은지도. 난 주로 스노 폭스에서 꽃을 사는데 여기가 가격도 싸고 괜찮았다. 꽃의 등급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소매점에 사는 거면 이 정도는 괜찮았다. 한 단에 가격이 3000원대고, 가끔 할인 판매도 하니까. 스노 폭스는 신기한 모델이다. 꽃도 팔고 도시락도 팔고. 물론 각 매장은 따로 있다. 사진 찍는 것도 막지 않고 도리어 권장한다.

현대백화점에서 산 적도 있는데 이건 행사할 때였다. 장미꽃 10송이를 8900원인가 파는데 이건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20송이는 1만2900원이었던가. 어머니께 전할 장미를 같이 샀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꽃을 이렇게 후려쳐서 팔다니. 어머니에게 10송이 드렸더니 어머니는 그중 5송이를 이모에게 주시고. 예전에 꽃꽂이 배운 실력 발휘해서 집에 잘 꽂아뒀다고 사진도 찍어 보내셨다. 나도 기억난다. 직장 다니실 때 꽃꽂이 강좌를 배우고 그 뒤로 종종 퇴근길에 꽃을 사 오셨다. 집에서 시험 삼아 이리저리 잘라서 꽂아두고. 난 그러지는 않고 그냥 갖다 꽂는다만. 꾸까라는 꽃 구독 서비스도 있던데 난 이용하지 않는다. 가격이 내 심리적 저지선을 넘어섰기 때문? 스노 폭스에서 파는 그 가격에 내게 잘 맞다. 마켓 컬리에서 파는 것도 봤지만 꽃이 어차피 시들 거라면 내 기준에 가격이 더 합리적이고 종류는 더 다양하면 좋겠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양재 꽃시장 가서 저렴하게 모종 산 다음, 집에 와서 내가 화분에 직접 심는 거다. 학보사 선배 중에 그런 분이 계시던데. 양재 꽃시장 가면 너무 좋지만 내가 가기엔 너무 멀다.

그렇게 꽃을 지금도 사고 있다. 꽃을 사는 이유. 예쁘니까, 내 마음을 기쁘게 해 주니까, 내 기분을 좋게 해 주니까, 바라만 봐도 좋으니까, 아침마다 물 새로 갈아줄 때마다 내 마음도 상쾌해지는 느낌이 드니까, 일상에 생기를 느끼게 해 주니까. 좋아서 사는 거다. 꽃집에 가면 오늘은 꽃이 있을지, 내가 몰랐던 새로운 꽃이 있는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어떤 꽃을 살지 고르는 재미도 있고, 좋은 가격에 사면 기분이 좋다. 꽃이 예쁘다 보니 흰 비닐이나 종이에 기본 포장만 해도 아름답다. 그걸 품에 안고 여기저기 걷다 보면 귀찮기보다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 언젠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장윤정, 도경완 부부의 아들인 연우 군이 "엄마를 보면 땅에서 꽃이 피는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연히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고. 나도 그 말을 듣고 감탄했다. 방송을 챙겨보지 못하지만 '저 친구는 마음이 예쁘고 말도 예쁘게 하던 어린이던데, 저 어린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또는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을 엄마에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그걸 알겠지.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지난 봄에 산 튤립과 소국. 사진=딱정벌레

내가 그 말에서 공감했던 점이 또 있다. 땅에서 꽃이 피는 것, 내 마음에 꽃이 피는 것. 난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마음은 정말 꽃이 피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꽃봉오리가 열리듯 그렇게 열린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심은하 대사 중 공감 갔던 대사가 있다. "사랑이라는 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는 건 줄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인 줄 몰랐어." 꽃봉오리가 벌어질 때도 그런 것 같다. 확 피는 것 같지만 사실 서서히 꽃잎이 열리는 것. 저 어린이가 그런 점도 생각해서 저런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렇게 말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꽃과 사랑을 연결지은 이야기를 라디오, 노래, 책에서 자주 접한다. CBS 라디오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에서 들었는데 '꽃'이라는 노래가 있다. 정밀아라는 가수의 곡. 이 프로그램에서는 노래 속의 시를 낭독하는 코너가 있다. 이 노래 가사를 낭독하는데 노랫말 하나하나가 폐부를 찔렀다.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고,
또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너라서 보고 싶고 사랑스러우며 안쓰럽고 끝내 가슴에 못이 박힌다는 게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드러낸다고 봤다. 예뻐서도, 잘나서도 아니라지만 사랑하면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사랑하는 마음도 꽃이 피는 것 같지만. 사랑하는 이도 꽃과 같다. 사랑을 꽃에 빗댄 노래는 여럿 있지만 이 노래는 유독 기억에 남았다. 그러고 얼마 안 돼서 오늘 이런 책을 접했다. 이원하 시인의 첫 산문집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임경선 작가가 인스타그램에서 추천했는데 일단 제목에 눈이 갔고, 정서가 많이 공감됐다. 독자 리뷰에 예상치 못한 비판도 있던데 아직 읽기 시작하지도 않아서 모르겠다만. 젠더 감수성 있는 작가가 추천한 안목을 그래도 믿고 싶다. 요즘은 사랑을 말하기도 어려운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점에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 나와서 반가워하는 마음이 나도 공감 간다. 나도 사랑이 좋고, 사랑 노래도, 글도 좋다. "증오가 당연시되고 사랑이 감시당하는 세상이야말로 지옥"이라는 임 작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워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사랑할 건 많이 사랑하면서 살자"는 말도.

그렇다. 사랑을 왜곡하고 더럽히는 게 나쁘지 사랑이 잘못된 건 아니다. 더 많이 권하고 나눠야 할 마음. 그게 너무 부족한 게 비극이지. 사람뿐만 아니라 그 대상은 일이 될 수도 있고, 반려동물이나 식물일 수도 있고. 사랑하니까 더 아껴주고 잘해주는 게 요즘 같은 시기일수록 더 필요하지 않을까. 늘 다짐하면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제대로 사랑하려면 주는 걸로 마음이 행복하면 좋겠다. 그렇다고 누가 착취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대가를 생각하고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그 마음이 지옥이 되니까. 그럴 거라면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니,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다. 사실 남은 잘 모르겠고 나는 내가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평소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부모님이나 이모, 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어주고 그걸 잘 받아먹고 살았으면서 내가 남에게는 그러지 못하면 부끄럽다. 그러나 더 힘들 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 때다. 난 백만번 서운해도 좋으니 그 사람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고. 내가 대신 아파도 괜찮다는 마음. 그런 감정은 삶의 기적. 꽃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내용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꽃도 좋고 사랑도 좋다. 꽃이 피는 마음은 소중하고. 그 마음은 잘 가꿔야 한다. 서늘한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책을 접해서 반가웠다.

지난 주말에 산 케이티(왼쪽), 슈퍼 센세이션 장미. 사진=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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