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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에서 느끼는 끈끈한 정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 눈물샘을 자극한 까닭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이종사촌 오빠는 농구선수였다. 1993~1994 시즌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한 모 대학의 선수였다. 그분은 프로 선수 생활을 짧게 하다 프런트로 전향했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이라 친분은 없었다. 어머니 큰 언니의 아들이라 어머니와는 집안 행사 있으면 인사 나누는 정도. 그분이 선수 생활하던 시절은 대학 농구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할 때였다.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가 나온 지 얼마 안 됐고. 소녀 팬들이 팬레터와 각종 선물 공세를 퍼붓고 연습실까지 찾아오던 시절. 이모는 선물로 받은 인형이나 초콜릿을 우리에게도 나눠주셨다. 농구단 기념품도(모자나 달력 등).

그분의 대학 졸업식에 갔던 1995년 2월 어느 날. 짧게나마 대학 농구 인기를 몸소 실감했다. 팬들이 연습실이 있는 건물 앞에 잔뜩 줄을 지어 진을 치고 있었다. 이종사촌 언니들, 이모와 그 건물 안에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그 학교의 유명 선수와 사진을 찍고 나오던 길이었다. 인파를 헤치고 빠져나가는데 어린이가 거기서 나오는 게 이상(?)해 보였는지 나한테 "OO 오빠와 무슨 관계예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광장을 메우고 소리 지르는데 그 열광적 분위기가 흥미로우면서 좀 무서웠다.

언젠가 다른 이종사촌 언니에게서 그분이 농구를 한 이유, 농구가 좋았던 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동료들과 같이 땀 흘리고 뛰면서 어울리는 게 좋았다고. 그분의 가족 구성원을 떠올리니 잘 아는 사람은 아니라도 조금 이해가 갔다. 한편으로는 농구가 아니었다면 더 외로웠을 수 있겠다 싶고.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마음이 조금 뭉클해지는 이야기였다. 그분의 그 말씀은 농구의 공동체성을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대부분 운동이 팀플레이지만. 다른 공놀이와 비교했을 때 농구 특유의 공동체성을 느낄 수 있는 점이 여럿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픽사베이

농구는 축구나 야구보다 코트에서 함께 뛰는 선수 수가 적다는 점(5명)이 눈에 띄었다. 더 적은 멤버와 부대끼며 패스하고 수비하며 공격하고 골을 넣고. 축구는 그 두배고, 야구는 그보다도 규모가 크니까. 물론 축구, 배구, 핸드볼도 뛰는 경기다. 역동성을 떠올리면 농구나 축구가 더 강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잘 달려야 하는 경기. 야구는 달리기 잘해서 도루를 잘하면 좋고 득점 기회도 만들 수 있지만. 그건 발이 느린 사람도 할 수 있는 운동. 농구의 경우, 골대 바로 밑에서 자기주도적으로 골을 넣는 모습을 보면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는 느낌도 들어 멋있다. 적은 인원이 코트 위를 긴박하게 뛰며 격렬하게 몸싸움도 하고. 골을 넣으며 느끼는 긴장감과 희열. 짜릿할 것 같다.

그걸 직접 하는 당사자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보는 사람도 그걸 간접 체험한다. 농구 팬도 그렇겠지만. 슬램덩크가 괜히 인기 있는 게 아니니까(난 정대만, 윤대협이 좋았음).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는 TV로 농구 경기를 종종 틀어놓으셨다. 그 이유도 농구 특유의 역동성 때문이었다. 선수들이 땀 흘리면서 바쁘게 코트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이건 여담이지만 외할머니는 좀 더 연세가 드시고 나서 스모 경기를 보는 걸 좋아하셨다. 몽골 출신 요코조나를 응원하셨다. 나이 든 할머니가 남자들이 벌거벗고 운동하는 경기를 즐겨본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난 그걸 글로 쓰고 있네. 죄송합니다.

갑자기 농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제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을 보는데 과거 농구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리농도 농구의 공동체성 이야기를 담았다. 불량 학생들에게 삥을 뜯기고 괴롭힘 당하는 어떤 소년이 있는데. 우연히 세명의 고등학생 혼령을 만났다. 그들은 농구, 수학 등 저마다 분야에서 능력자였다. 이들은 소년의 몸에 들어가서 실력을 발휘해 소년의 능력치를 끌어올려줬다. 소년은 빙의된 상태에서 농구를 하다 상록구청 농구팀 코치에게 발탁됐다. 상록구청 농구팀은 실적이 없어서 폐단 위기에 놓인 상태. 그러나 빙의(?)된 소년에 힘입어 구색도 갖추고 실력도 조금씩 나아졌다.

사진=딱정벌레

전리농이 감동적인 이유는 소년의 삶이 농구를 통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보여주는데 여기서 '관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다. 중요한 건 농구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계속하느냐는 것. 상록구청 팀 코치는 15년 전 바닷가에서 농구팀 동료를 셋이나 잃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바다를 싫어한다. 소년에 빙의된 세명의 동료가 바로 그 코치의 고등학교 시절 농구팀 동료였다. 그들은 구천을 떠돌다 소년에게 빙의해 그의 실력을 높여준다. 그를 자신의 친구가 코치인 농구팀에 입단시켜 성과를 낸다. 그다음, 그 농구팀을 존속시키도록 도왔다.

이토록 감동적인 우정물, 학원물이라니. 그걸 보고 눈물, 콧물 뺐는데 새삼 예전에 농구 추억이 떠올랐다. 전리농에서 느낀 농구의 팀플레이, 동료와의 우정이 뮤지컬 속 서사가 아니라 현실에도 있는 일임을. 운동선수는 그걸 충분히 경험하겠구나. 괴롭힘만 없으면 좋을 텐데. 운동은 인성 교육하기에도 충분히 좋은 활동인데. 요즘 듣는 소식은 끔찍한 이야기뿐이니. 전리농이 눈물 폭발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보니 그 이상이었다. 공연을 보고 여운에 젖어서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내 뒤로 펼쳐지는 버스킹 공연을 들었다. 즉흥적으로 예매했는데 보길 잘했다.

집에 돌아와서 택배 포장을 뜯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다시 말끔해진 세면대를 보니 찌든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다. 집을 쓸고 닦고. 옷을 갈아입고 내가 좋아하는 슛뚜님의 유튜브를 봤다. 슛뚜님의 영상을 보면 마음이 정갈해진다. 집에서 해보고 싶은 요리도 발견하고. 입맛 없는 나날이라 요즘 하루에 1000칼로리도 안 먹는다. 남은 오트밀을 마저 먹으려고 저지방 우유와 저지방 요거트, 냉동 블루베리를 주문했다. 짬날 때 해먹을 '집으로 ON 짜글이'도. 오랜만에 영국 남자 새 영상도 보고.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을 마저 읽고 잠들었다. 어제 에든버러 여행기를 올렸는데 바깥은 여름에도 에든버러를 배경으로 한 단편이 있어서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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