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화상 모임에서 그런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난 그때 50~80% 솔직할 수 있다고 답했다. 돌이켜보니 그건 과장됐다 싶다. 80%는 너무 많다. 내 솔직함의 최대치는 50%인 것 같다. 그것도 가까운 사람을 대상으로 했을 때. 솔직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을 안 하면 다 솔직한 건가? 어떤 사실을 축소해서 말하거나 아예 드러내지 않는다면? 내 빙산의 일각만 드러내면 거짓이 없어도 솔직한 건지?
방금 사전에서 '솔직하다'의 정의를 찾아보니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라고 나온다. 거짓말하지 않아도 축소 또는 은폐해서 나 자신을 드러낸다면 그것도 솔직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런 걸 고려했을 때 내 솔직함의 최대치는 50%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건 말하지 않는. 그게 가족이나 오랜 친구, 선후배라고 해서 특별히 더 커지지 않는 듯하다. 날 가장 많이, 오래 아는 사람들이기에 나눌 수 있는 대화 폭, 깊이는 넓고 깊지만. 그래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많다.
최근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어떤 사건 영향도 있고. 내 주변 인간관계,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얼마나 잘 아는가'를 생각해봤다. 내가 알던 사람, 그냥 아는 것도 아닌 좋아하고 믿는 사람에게서 생각지 못했던 모습을 접했을 때 충격. 그게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더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떨 때는 이를 이유로 가치 판단을 최대한 유보한다.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을 뒤집고 싶지 않아서. 그 충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를 좀 더 믿고 싶어서.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짤이 애매할 때는 냥이를 넣어보자. 사진=픽사베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냐. 이 말은 절반은 진실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다른 이에게는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을 수 있다. 나와 그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인격체이고, 서로 처한 상황도 다를 것이며, 내가 아는 그 사람과의 이해관계도 차이가 있을 테니. 내게 잘해줬는데 다른 이에게 잔인한 사람이라면. 내게 잘해준 모습도, 다른 이에게 잔인한 모습도 모두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이다. 그가 가진 여러 모습 중 하나라고. 그러나 이는 내가 경험한 한도 안에서만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닐 뿐이다.
내 경험치를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일지도 모른다. 난 그 사람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가 내게 드러내지 않은 모습도 있을 테니. 그 사람은 내게 자신이 밝히고 싶은 일면만 보여줬을 수 있다. 내게 굳이 모든 걸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 완전히 자신을 까면 스스로 불리해질 수 있으니. 심지어 그게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어쩌면 가까운 사람에게 가면을 더 쓰고 연기할 수도 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은 마음?
그렇다 보니 우리는 섣불리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또는 그렇게 생각할 때 신중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그 사람을 오래 알고 지낸 시간이 '그를 잘 안다'라고 장담하지는 않는다. 서로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지 않는다면. 내 모든 걸 최대한 공유하지 않는다면. 가끔 연락하거나 교류하는 정도라면. 제한된 소통만 한다면. 그럴 때는 누군가를 잘 안다고 하기에 정보가 부족하다. 상대방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걸 이유로 내가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착각해서도, 마음 거리를 확대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내가 누군가와 10년 넘게 절친이더라도 생각보다 못하는 이야기는 많다. 오히려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사람이라서 상대방에게 질문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거 물으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내가 아끼는 그 사람에게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대화 화제가 그게 아니면 마음에 끓어오르는 현재의 고통을 나누기도 힘들다. 엄청 기쁜 일도. 그걸 잘못됐다고 하기도 어렵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편하게 대화하거나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어찌 보면 많은 걸 드러내지 않는 게 배려.
사진=픽사베이
다들 잘 아는 이야기라 심각할 것도 없는 주제다. 다만 가끔 이걸 잊고 살 때가 있어서 되새기는 건 나쁘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 충격받을 때 '그 사람이 왜 그렇지'라고 고민하거나 이해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그런 사람인 거고. 그걸 받아들이면 된다. 이미 내게서 먼 사람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내게 솔직하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때는 나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나도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사니까. 선의와 진심으로 호의를 표현할 때도 있지만. 내겐 악의와 가식도 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사니까 너무 기대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라고. 너도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에 불과할 테니. 내가 누군가를 온전히 알 수 없음을 인정하고. 사람을 판단할 때는 신중해야 하며. 특히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는 자신을 더 회의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누군가와 친하다'는 말을 잘 못한다. 그게 나만의 착각일 수 있으니. 실제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착각을 확인하면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고. 스스로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꾸짖어보는데 마음은 한동안 어수선하고.
어떤 이에게 '친하다'는 건 무거운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일이기도 하다. 겨우 그 정도로 친하다고 한다면 '차라리 친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좋아하는 사람으로 두겠어' 이렇게 정리하는 게 좀 더 사실에 가깝기도 한 것 같다. 상대가 누가 됐든 누군가와 교류하면서 그를 알아간다는 건 마음을 쓰는 일이다. 거기서 충격을 받으면 감정 소모가 적지 않다. 바쁘게 일상을 살면 그 일도 즈려밟고 살 수 있지만. 어쩌다 갑자기 떠올라서허무함이 몰려올 때도 있다. 그때 자신을 더 겸손하게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