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좋은 이름

일일이 안부 전하는 바울이 준 울림

by 딱정벌레
hand-1076597_1280.webp 사진=픽사베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 있다. 대표적인 게 "OO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언제 한번 OO 해요". 난 이 표현에 영혼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저 말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이는 건 그렇다. 내가 남에게 저 표현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마나 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안 하는 게 낫다고 본다. 내가 들어도 좋아하지 않는 말이라면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안부는 누가 대신 전하기보다 본인이 당사자에게 직접 전하는 데 마음이 더 담겼다고 봤다. 정말 OO 할 마음이 있다면 기약 없이 '언제 한번'이라고 말하기보다 행동하기 마련이다. 누군가 안부가 정말 궁금하거나 그걸 전하고 싶다면 남에게 대신 묻지 않고 연락한다. 다른 사람에게 묻는 건 떠보는 느낌이 들어 별로다. 누가 내 안부를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는 것도 유쾌하지만 않다. 그럴 수 있지만. 질문받은 사람이 날 잘 아는 사람도 아니라면. 그가 과연 내 안부를 정확히 전달해줄지 알 수 없다. 인간관계 밀도는 겉보기와 다를 때가 있다.

남에게 대신 안부를 묻는 건 직접 묻기 불편하기 때문일 수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내가 직접 묻기에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불편하게 느껴진 내 잘못도 있을 수 있고. 그 정도 자유는 누구나 있는 건데 박탈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제3자, 4자, 5자 등 남을 거쳐서 내 이야기가 전달되기보다 내가 직접 말할 기회를 주는 게 난 더 고맙다. 직접 물을 생각이 없다면 궁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별 뜻 없이 하는 말과 행동일 수 있는데. 나도 참 쓸데없이 진지하다. 나 역시 늘 진심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면서 말이다.

people-2604837_1280.webp 사진=픽사베이

갑자기 안부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남이 대신) 안부 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어떤 안부는 사려 깊게 느껴져서 마음에 감동이 왔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안부 인사는 아니다. 바울이 로마 성도에게 쓴 편지에서 건넨 안부 인사다. 오늘 점심을 먹은 뒤, 분리수거를 했다. 이어서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마쳤다. 돌체구스토 나폴리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의자에 앉아 마신 뒤 QT 책에서 로마서 말씀을 읽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 성도에게 보낸 편지다.

오늘 내용은 평소보다 조금 특별했다. 16장 1~16절이었는데 안부 인사만 전하다가 끝이 난다. 그 안부 인사가 남달랐다. 바울은 편지에서 자신의 동역자를 소개하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거론하며 안부를 전했다. 이름만 언급한 게 아니고 그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하나하나 담았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생명을 구해주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에베네도에게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내 친척이며 나와 함께 옥에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이런 식이다.

안부 인사가 전부인데 난 좋았다.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고, 그들의 의미를 짧게라도 설명하는 데서 그들을 향한 바울의 마음 씀씀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울에게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임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염려하는 사람들이기도. 그가 그들의 수고를 기억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사람들 면면도 다양했다. 해설을 보면 유대인, 이방인, 남자 여자, 감옥에 갇혔던 사람, 신앙 연륜이 오래된 사람이라고 한다. 바울의 관계망이 넓다는 생각도 들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note-3454277_1280.webp 사진=픽사베이

한 번에 묶어서 퉁치듯 안부를 전했다면 편지도 금방 썼을 텐데. 그러지 않고 굳이 이름과 그들을 향한 생각을 짧게라도 일일이 밝히는 걸 보니- 이건 보통 안부 인사와는 다르구나 싶었다. 성경에는 '누가 누구의 자손'이라는 내용만 주야장천 이야기하는 구절도 있다. 그런 구절을 읽으면 지루할 때가 있다. 해설을 참조하지 않으면 스스로 시사점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름만 이야기하다 끝나는 내용을 좋아하지 않곤 했다. 그러나 오늘 이 구절은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고 상대를 되새기는 의미를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거기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생각해봤고. 그게 좋았다.

살면서 주고받는 많은 이름과 관계가 있다. 잊을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기억이 희미한 사람도 있다. 이름도, 얼굴도, 알게 된 배경도. 기억해야 하는데 멀어져서 자연스럽게 잊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본지 얼마 안 됐는데도 까먹을 때가 있다.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아서일 수 있고. 너무 바빠서일 수도 있고. 미안하면서 무례한 일이기도 하다. 내 부주의로 망각을 드러낼 때도 있고. 처음부터 그 사람 의미는 그 정도에 그쳤을지 모르지만. 바울이 거론한 사람은 함께 고생해서 의미가 남다를 테니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마운 사람을 늘 기억하고, 왜 고마운지 잊지 않는 것. 표현할 수 있을 때 표현하는 것. 그가 내게 고마운 사람이라서 챙길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도 누군가의 연약한 모습이 마음 쓰여서 더 챙기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이 꼭 내게 뭘 해줘서가 아니라도 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됐다면 그것도 고마울 수 있고. 고마움을 너무 계산하지 않는 것도 좋다고. (남이 대신 전하는) 안부 인사에 까칠했던 나인데. 인사치레도 마음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아예 안 해도 되는 걸 하는 건- 때로는 형식을 지키려는 이유도 마음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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