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접한 스타트업 서비스
줌부터 브루독까지
히드로 공항 수하물 찾는 곳에서 본 줌과 슬랙 공동 광고. 사진=딱정벌레여행 가기 전 현지 조사를 이것저것 한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영국에 가기 전에는 현지 스타트업 조사도 했다. 열심히 한 건 아니고. 혹시 여행 코스라도 거칠만한 곳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아는 곳이라곤 영국 배달 서비스 '딜리버루'(RPA 기업인 블루 프리즘도 있지만 결이 다른 듯). 여기 공유주방에 관심 있어서 이메일을 보냈지만 까였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구경이라도 할만한 곳을 살폈다. 딜리버루는 취재하지 못해도 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겠지. 그중 수제 맥주 스타트업인 브루독이 눈에 띄긴 했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 눈에 먼저 띈 건 줌의 광고였다. 입국장에 나가기 전 수하물 찾는 데서 줌 광고를 봤는데 슬랙과 공동 광고였다. '우리가 함께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보라'고 했던가. 찾아보니 두 기업은 원래 이런저런 연결고리가 있었다. 서로 협업도 하고. 슬랙도 기업 파트너가 있으니. 줌이나 아사나 같은 기업이 그랬다. 공항에서 줌 광고는 여럿 보였다. 행복 기업을 내세우다 보니 광고에 'Happy'라는 단어가 많았다. 출국할 때도 줌 광고를 마지막으로 봤다. 2018년 히드로 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그때도 줌 광고가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현지 시간으로 오후 6시 가까이 돼서 웨스트민스터로 갔다. 숙소에서 지하철로 15분 걸렸다. 때는 퇴근 시간대였는데 웨스트민스터 사원 주변과 기념품 가게를 둘러본 뒤, 사우스 뱅크 쪽으로 가려고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려고 했다. 그때 내 눈에 띈 전기 자전거가 있으니. 바로 '점프'였다. 원래 독자 서비스였는데 우버가 인수했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를 강화하려는 우버가 외부 수혈한 것. 국내 한 마이크로 모빌리티 업체 대표는 점프 자전거 내구성이 좋다며 자신도 그렇게 튼튼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만난 점프 전기 자전거. 사진=딱정벌레 도크리스 서비스답게 점프 자전거는 웨스트민스터 다리에 방치돼 있었다. 자전거 바구니에는 쓰레기가 있었고. 런던에서 지내는 3일간 곳곳에서 환경단체 시위대를 만났다. 첫째 날에는 웨스트민스터에서, 둘째 날에는 해롯 백화점 가는 도로에서, 셋째 날에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현지에 있는 동안 아침 출근 지하철 전동차 위에 시위대가 올라가서 성난 시민이 끌어내리고 폭행하고. 난리가 났다. 그 일이 있을 때는 런던을 떠날 때였는데. 폭행 현장이 끔찍하고, 시위 방식이 극단적이라 현지에서 이슈가 됐다. 어떤 시위대원은 빅벤에도 올라갔다.
시위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부르주아로 보는 듯했다. 라디오 인터뷰나 유튜브 댓글을 보면 그런 인식이 엿보였다. 저렇게 시위하면서 홀푸즈마켓 같은 고급 식료품 매장에서 장을 보고, 집에서 거품 목욕을 즐기는 이들일지 모른다며. 생업에 빠듯한 사람이라면 출근길에 지하철 운행까지 중단시키는 짓은 절대 할 수 없다며. 제레미 바인이 진행하는 오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시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출퇴근길에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토로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 단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그 단체 고유 로고가 있었다. 그 로고가 그려진 카드가 있는데 그게 점프 바구니 안에 버려져 있었다. 누가 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환경단체가 공유 자전거에 쓰레기를 버린다면, 그것도 자신들과 관련된 유인물을 거기다 버린다면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러진 않았겠지. 집회의 자유, 시위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일관성이 부족하면 지지받기 어려운 것 같다. 문득 대학시절 농민의 날에 어떤 집회에서 닭장차 무너뜨린다고 남자들 나오라며 선동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위험한 상황인데 기어이 닭장차 위로 올라가던 어떤 시위대원도.
런던에서 로열 알버트 홀 가는 길에 만난 라임 전기 자전거. 사진=딱정벌레 런던에서는 슬랙 자동차를 가끔 봤다. 슬랙이 런던에도 사무실이 있고, 내가 출국하던 날 콘퍼런스도 열었다. 스튜어트 버터필드 CEO가 기조연설도 하던데. 날짜만 잘 맞았으면 한번 현장에서 들어보고 싶은 자리였다. 슬랙 자동차는 폭스바겐의 옛날 차(이름 생각 안 남)를 연상시켰다. 차는 슬랙 로고로 래핑 했고. 어웨이라는 캐리어 스타트업 대표가 스튜어트 버터필드 대표의 여자 친구라고 들었는데. 런던 지하철에는 어웨이 광고도 보였다. 천정 쪽에 작게 있었지만.
라임도 현지에서 서비스하지만 전동 킥보드가 아닌 전기자전거를 운영했다. 런던에서는 사실상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기 어려운데.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타려면 민간 구역에서 주인 허가를 얻어서 타야하거나. 이 때문에 버드 같은 전동 킥보드 업체가 그런 식으로 허가를 얻어서 제한된 구역에서만 시범 운영 했다(승인된 지역에서는 마이크로 모빌리티 서비스의 전동 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한다는 발표가 있긴 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린이들이 전동 킥보드가 아닌 일반 킥보드를 타고 열심히 발을 굴리는 모습을 보곤 했다.
역시나 현지에서 가장 많이 접한 서비스는 딜리버루였다. 딜리버루는 우아한 형제들과 비슷하다. 배달 서비스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공유주방도 운영한다. 공유주방이 컨테이너처럼 돼 있어서 독특하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색도 우아한 형제들처럼 민트색이다. 난 우리나라 배달 서비스(쿠팡 잇츠나 배달의 민족)가 딜리버루에서도 참고한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송 현황을 지도로 보여주거나 빨리 배달할 수 있는 식당을 큐레이션 해서 보여주거나, 배송 소요시간을 식당과 함께 보여주는 등.
에든버러 딜리버루 배달원 오토바이, 딜리버루로 주문한 브리또와 그릴드 치킨 조각. 사진=딱정벌레 딜리버루는 아시아에서도 서비스를 운영한다. 대표 지역이 싱가포르인 듯하다. 오프라인 매장도 있다. 식당인 것 같은데. 싱가포르도 가보고 싶은 지역 중 하나다. 최첨단 도시라고 해야 하나? 플라잉 카 업체도 싱가포르에서 시범 운행을 많이 한다. 국가에서도 에어 모빌리티를 적극 키우려고 하고. 지난해 스위스 대사관에서 주최한 싱가포르 한 연구원의 강연을 들은 적 있다. 모빌리티 관련 내용이었는데. 그에게 현지 플라잉 카 상용화를 물어봤는데 반응이 회의적이었다. 인도처럼 큰 지역이면 모를까. 싱가포르 같은 작은 지역에는 크게 필요하지 않고. 위에 뭐가 떠다니는 것도 불편하고, 무섭기도 하고.
딜리버루는 런던, 리버풀, 에든버러에서 접했다. 런던에서 파이브 가이스라는 햄버거 가게에 갔다. 미국 브랜드인데 사람이 엄청 많았다. 한국에도 들어오면 좋겠다만. 거기서 딜리버루 배달원을 봤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만(자동차로 배달하는 이도. 이건 여담이지만 마이크로 모빌리티 업체는 일찍이 긱 일자리 수단으로 공유 모빌리티를 이용해서 배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고 전망하는 듯했다. 모 업체에서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남).
영국에서도 자전거 배달원이 꽤 많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면 비 오는 날에도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고. 리버풀에서 아찔한 순간을 발견했는데. 자전거를 탄 딜리버루 배달원이 도로를 가로지르는데 버스가 꽤 가까운 거리에서 오고 있었다. 잘못하면 사고 날 수 있는 아찔한 상황. 긱 일자리를 부정하지 않지만 저런 장면을 보면, 그 사람들이 별다른 보호도 못 받는 걸 보면 참 그렇다. 워놀로라는 긱 일자리 플랫폼 기사를 쓸 때 그들이 긱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호하고 대우하는지에 더 관심 가졌으면 했다. 그 부분을 내 딴에는 열심히 썼고. 그러나 독자는 '그래, 긱 일자리가 대세지, 이게 새 BM이지' 이런 데 더 관심 갖는 듯했다.
에든버러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때, 드디어 딜리버루 서비스를 이용했다. 저녁을 못 먹은 까닭도 있지만 현지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니까 못해본 거 다 해보고 싶었다. 외사촌 동생과 멕시코 요릿집에서 브리또와 그릴드 치킨 조각을 주문했다. 딜리버루 앱 UI는 깔끔했다. 빨리 배달되는 식당을 따로 보여주고, 배달 소요시간도 미리 보여주고. 내 배달원이 누군지 이름도 알려주고. 실시간으로 준비 현황을 푸시 알림으로 보여주는데 이제 쿠팡 잇츠나 배달의 민족에서도 지원하는 기능이다. 결제하고 나면 이메일도 왔다.
요기요가 배달 구독 서비스를 출시한 적 있는데 딜리버루에도 이미 그런 서비스가 있었다. 친구를 초대하면 얼마를 주는 프로모션도 진행했다. 식당을 살펴보는데 에든버러에도 한식당이 제법 있었다. 아시아 음식점인데 한식을 취급하는 곳도 있고. 메뉴도 다양했다. 신기한 건 비빔밥 같은 메뉴가 비건 음식으로 분류돼 있다는 것. 맵고 짠데? 새삼 에든버러도 참 큰 도시란 생각도 들고. 가격은 비싸 보이긴 했다. 앱에서 현지 식당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 배달 기사는 베니라는 사람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나와 외사촌 동생은 호텔 1층 정문으로 나가서 음식을 받았다. 내 첫 딜리버루 배달이라서 나름 감격스러웠다. 유튜브 채널 '영국 남자'에 출연한 신부님이 한국에서 첫 맥딜리버리를 이용했을 때 느낀 감동이랄까. 베니에게 '오토바이 사진 찍어도 되냐'라고 물어봤다. 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러라고 했다. 사진을 다시 보니 그때 너무 감격해서 떨렸는지 사진도 흔들렸다. 브리또는 먹을만했다.
현지에서 브루독 매장도 갔다. 브루독이 스코틀랜드 애버딘 출신이 만든 수제 맥주 스타트업인데. 에든버러에도 매장이 꽤 많았다. 스타벅스 같은 느낌이랄까. 수제 맥주 유니콘 기업의 현지 맥주 맛이 궁금했다. 저녁도 먹을 겸 갔는데 피자 말고 먹을만한 게 없었다. 공항에는 메뉴가 그리도 다양하더구먼. 굳이 피자를 먹고 싶지 않아서 외사촌 동생과 맥주만 마시고 빨리 나왔다. 바 분위기는 트렌디했다. 그 회사 특유의 슬로건이 컵이나 매장 바깥 곳곳에 적혀 있었고. 직원은 입술인가 코에 뭔가 뚫고 링을 걸고 있었고. 자리는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로 북적였다.
괴짜 회사라서 맥주도 도수가 꽤 높았다. 맛은 괜찮았다. 맥주의 마라 맛이라고 해야 하나. 강렬하고 시원했다. 어떤 안주도 없이 맥주 맛만 온전히 느끼는 것도 좋다. 브루독은 브랜드라기보다 맥주 커뮤니티 같은 느낌이었다. 여행 다녀오고 나서 CEO가 쓴 책을 읽고, 인터뷰를 보고, 이 회사가 하는 모든 일을 조사했는데. 콘텐츠 만드는 사람이 배울 점이 많았다. 브랜드가 고객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가치관이 인상 깊었다. 콘텐츠는 그 수단. 그들은 텍스트 콘텐츠에 공을 들이고, 맥주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운영하는 등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다.
요리 프로그램도, 채널도 있는데 왜 맥주는, 음료는 그런 게 없냐는 게 그들의 문제의식. 제조회사 겸 외식업체지만 트렌드에 민감했다. 비건 식습관이라든지, 유휴시간에는 매장을 공유 오피스로 운영하는데 손님에게 맥주를 준다든지(위워크나 패스트 파이브 같은 곳이 생각남). 문득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 같은 유통업체가 매장 문을 닫는 대신 공유 오피스로 이를 활용한다면? 먹거리로 노브랜드나 심플러스, 온리 프라이스 같은 PB 제품을 주고. 신세계푸드의 데블스 도어도 그런 거 실험해도 재밌겠는데.
브루독은 브랜드 운영 철학이나 콘텐츠 제작 관점에서 배울 게 많은 곳이었다. 코로나 19 대유행 이후엔 온라인 바까지 열었으니. 메일 침프의 콘텐츠 접근 방식을 보면서 브루독이 많이 생각났다. 전부터 브랜드 콘텐츠라는 건 있어왔지만. 요즘은 콘텐츠 기업이 아닌 이런 제조 업체나 플랫폼 업체가 핵심 고객을 위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 보다 사활을 건(?) 느낌도 든다. 그런 곳을 인수하기도 하고. 쓰고 보니 별 내용도 없는 걸 또 구구하게 늘어놓았구나. 알디도 인상 깊었지만 여긴 스타트업이 아니고 오래된 회사라서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