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리뷰
나와 그 모든 것과의 관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유명한 채사장의 인문학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인문학 에세이에 가깝다고 본다.
자신과 자신 내외의 '관계'를 다룬 책인데, 인상적인 문구가 많아서 여러 번 읽었다.
그중 2가지를 언급해 본다.
나와 세상과의 관계
지금 당신 앞에 펼쳐진 세계, 창박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책장의 감촉과 적당한 소음과 익숙한 냄새. 이 모든 것은 세계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 왜곡되고 재구성된 모습일 뿐이다. 나는 세계의 '실체'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기관과 뇌가 그려주는 세계의'그림자'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자폐아다. 모든 의식적 존재는 자신의 마음 안에 갇혀 산다.
- 25P
누구나 세상에 대한 세계관이 있다. 이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원리를 결정하기에, 깊게 고민한 적은 없을지라도 반드시 가지고 있다.
채사장은 자신의 책에서 2가지 세계관을 자주 언급한다.
하나는 나의 밖에 세상이 실재한다는 세계관.
다른 하나는 세상이 나의 머릿속에 있다는 세계관이다. 주목해 볼 만한 점은 후자다.
세상은 나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 언제나 나의 눈에 담겨있다. 인간은 부정확한 감각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 다름이 생겨난다.
내가 보는 타인과 실제 타인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는 점.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에게 온전히 닿을 수 없다는 점. 우리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각자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는 점.
결국 세상은 전체 인구의 수만큼 무수히 존재한다.
같음이 없기에 우리는 결핍을 느낀다.
관계를 이어주는 도구, 언어
관계에 대한 탐구로서 계획된 이 책에서 언어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의무에 가깝다. 그것은 언어가 자아의 고립을 넘어 외부의 타자에게 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통로라는 것이 좁고 거칠고 어둡다는 점이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 모든 처음의 의도는 엉망이 되고 너덜너덜해진다. -164p
우리는 서로에게 온전히 닿을 수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닿기를 바란다. 이해와 공감을 바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가 좋지만,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표현한다. 드러낸 자신이 타인에게 닿을 수 있도록 '언어'를 사용한다.
달리 보면 우리는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셈이다.
책에서 말하듯,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언어로 변환되는 순간 왜곡이 일어난다. 각자가 다르게 받아들이고, 오해를 사기도 한다.
우리는 언어의 한계점을 최대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는 언어의 양을 늘려 세밀하게 설명하기 다른 하나는 언어의 양을 줄여 축약하기다.
두 가지 모두를 적절하게 병행한다면 소통의 달인이 될 수 있겠지만, 익숙한 한 방법만 고수한다면 곤란해진다.
전자는 쉼 없는 설명과 압박을, 후자는 부족한 설명으로 오해를 남길 여지가 크다.
평소의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혹여나 반대로 소통하고 있지는 않은지 문득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타인은 하나의 나라로 볼 수 있겠다. 나 역시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나라다. 각 나라는 서로 교류한다. 언어라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여행하기도 하고, 무역을 하기도 한다. 이해하기 쉬운 세계관을 하나 얻어간 것 같아 새롭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이별, 연애, 흔적, 인생, 노력, 시간, 통증, 이야기, 믿음 등 여러 주제의 수필이 담겨있다.
나처럼 각 주제를 연결해 보려 노력해도 좋고, 마음에 드는 주제만을 따로 기억해 두는 방법도 좋다고 생각한다.
여러 주제가 있다는 건 그만큼 내가 많은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 관계를 살펴보는 건 결국 나를 되돌아보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