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솔직함'이라 생각한다.
가식과 예의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이미지.
그래서 SNS 글이나 여러 책 특히 에세이에서도 자신의 감상을 솔직하게 남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솔직함으로 따지면 먼 옛날에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군주론]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저자 자신이 생각한 인간의 행동원리, 그리고 이에 따라 군주가 가져야 하는 태도를 원하는 그대로 묘사한 나머지, 평가가 롤러코스터를 탄다.
[군주론]에서 기억에 남는 대목을 가져와 정리해 보았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되 미움을 사지 마라
군주론의 내용을 크게 나누어 보자면 군주국에 대한 설명과 통치 자세(혹은 태도)에 대한 설명으로 나누어진다.
다수의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들어본 적 있는 부분은 통치 자세다.
이 중 흥미로운 문구는 이것이다.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서, 비록 사랑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받는 일만은 피해야 합니다. 미움받지 않으면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두려움과 미워하는 감정을 동일시하곤 했다.
하지만 의식해 보면 다르다. 두려움이 커진 나머지 미움으로 번질 수 있고, 두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이란 카테고리로 같이 묶일 수도 있지만 같진 않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지 두려워하는 건지 정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차분히 되돌아보면 정말 더러워서 피하는 건지, 무서웠던 것은 아닌지 판단이 선다.
두려움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말은 왠지 악당이 되어야 한다는 말 같아 주춤하게 된다. 그래서 어감을 바꿔 재해석하니 훨씬 와닿았다.
나는 위 문구를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만만하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라는 말로 이해했다.
왜 요즘에도 정말로 착한 사람과 호구는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퍼주기만 하는 사람은 호구, 친절하게 할 말하면 착한 사람.
정도는 다르지만 유사한 맥락으로 받아들이니 공감이 갔다.
다수의 사람들은 겉으로 판단한다
군주를 대면하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정직하고 인간적이고 신앙심이 깊어 보여야 합니다.
(중략)
사람들은 모든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특히 직접 경험해 볼 수 없는 군주의 행동에 대해서는 결과에만 주목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도덕적이고 신의를 가지는 성품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실천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라 본다.
군주가 이상적으로 행동한다 해도 그 결과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이를 받아들이는 다수의 시민들이 군주의 뜻과 항상 통하진 않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보았을 때, 다수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판단한다. 어떠한 결정의 동기 및 과정은 관심이 없는 한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은 결정의 결과다.
그렇기에 군주는 자비로운 듯 행동하면 자비로운 사람으로, 연민의 눈물을 흘린다면 인간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겉과 속이 다른 기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실 이건 흔히들 말하는 '사회생활'의 본질과도 통한다. 특히 현대는 정치, 사회, 문화, 관계 다방면에서 정보가 쏟아져, 더욱 결과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과정 속의 본 뜻은 가라앉는다.
신랄하지만 현실적인 묘사이기에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마키아벨리는 위 주장을 비롯해 인간은 배신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라 묘사해 비판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은 [군주론]에 스스로 필요하다고 말한 기만술을 적용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비판을 받는 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스스로 직접 욕먹는 입장이 되어 자신의 주장을 증명했달까.
[군주론]은 책의 두께도 얇고, 번역과 배경설명도 잘 되어 있고, 심오한 철학보단 현실을 조명해서 몇 번 펼쳐본 책이다.
그럼에도 왜인지 책 속의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저 '인간은 원래 악하다'나 '약육강식' 등 기존에 알려진 이미지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내가 어떻게 이해하면 될지를 의식하며 정리했다.
마키아벨리의 시선을 전적으로 동감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점을 현실에 적용할 수는 있는지, 있다면 그 방법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