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시험을 본 후
오늘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서 일본어 말하기 시험을 보고 나왔다. 시험장 문을 나서는 순간,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느껴졌고, 마음 한편은 묘했다. 공부도 하지 않은 채 간 시험이었다. 준비라 부를 만한 것은 거의 없었고, 간신히 꺼낸 말은 준비된 자기소개 몇 문장이 전부였다. 그 뒤로는 질문을 듣기만 했을 뿐, 대답은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답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시험장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외국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격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까. 물론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떠한 것이 남아 있었다. 시험 결과에 대한 아쉬움보다,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고 싶은 마음만 있고 언어가 따라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심지어 한심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영화를 볼 때 자막 없이 장면을 보는 것 만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고 싶었고, 번역본이 아닌 원서 그대로 책을 읽으며 문장 사이에 숨은 뉘앙스를 느끼고 싶었다. 여행지에서 길을 묻거나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 머릿속으로 문장을 조합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대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고 싶었고 그 나라의 언어로 농담을 듣고 웃고, 감탄사를 따라 말하며 그 순간에 온전히 섞이고 싶었다.
하지만 바람과 현실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었다. “언젠가는 해야지”, “시간이 생기면 시작해야지”라는 말은 여러 번 했지만, 공부를 하는 일은 드물었다. 바쁘다는 이유, 피곤하다는 이유,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흘러~~~, 하고 싶지만 근처에서 기웃기웃 거리만 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AI가 번역과 통역을 대신해 준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외국어 문장이 즉시 모국어로 바뀌고, 음성 통역도 실시간에 가깝게 이루어진다. 편리함은 분명하다. 외국어를 몰라도 큰 불편 없이 정보를 얻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외국어를 굳이 배울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이 채워지지 않는다. AI의 번역은 정확하지만, 그것은 마치 통역 비서를 한 명 데리고 다니는 느낌과 비슷하다. 언제나 한 번을 건너서 듣고, 한 번을 건너서 읽는다. 의미는 전달되지만, 온도는 조금 식어 있다. 농담의 타이밍, 말끝에 실린 감정, 단어 선택에 담긴 미묘한 태도는 쉽게 옮겨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전달받아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거리감이 남는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그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의미라도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억양과 속도에 따라 마음이 전해진다. 원어로 듣고 읽을 때 비로소 닿는 감정이 있다. 번역된 문장에서는 무난하게 지나간 표현이, 원문에서는 가슴을 콕 찌르기도 한다. 그 차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바람만 품고 있는 현실이 스스로도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