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인연과 쉼의 감사한 시간
살다 보면 문득 마음이 번잡해지고, 바쁘다는 말로 얼버무려온 것들이 서서히 흐려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회사와 집, 집과 회사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다 보면 언제부터인지 주말은 그저 멍하니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도 스케줄처럼 관리해야 할 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따뜻한 인연, 편안한 시간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게 됩니다.
지난 주말, 그런 바쁨 속에서 아주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와이프의 지인 부부가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사실 그분들은 매년 몇 번씩 우리를 불러 주시는 분들입니다. 도시 외곽의 조용한 지역에 직접 집을 짓고 살고 계신데, 초대받을 때마다 잠시 도시의 소음을 벗어나 마치 작은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지인의 집으로 향하는 길부터 이미 마음의 리셋이 시작됩니다. 달리는 차 창 너머로는 빽빽한 빌딩 대신 논밭이 펼쳐지고, 멀리 작은 산들은 평온하게 보입니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함 속에서, 저는 어느새 미뤄두었던 생각들을 하나둘 꺼내봅니다. 떠오르는 고민도, 근심도,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만치 멀어지는 듯합니다.
문 앞에 도착하면, 늘 환한 미소로 맞아주시는 지인 부부.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따뜻함 속에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는 그들의 말 한마디에서 진정한 정이 느껴집니다. 꾸밈없는 환대, 서로의 일상을 걱정해 주는 정성,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됩니다.
저녁 식사 메뉴는 바비큐였습니다. 정성껏 준비해 주신 여러 가지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한가득 차려졌고,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고기 냄새는 벌써부터 맛으로 입안 가득 해집니다. 음식이라는 건 참 이상합니다. 그냥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순간이 있습니다. '먹는다' 속에는 사실 함께라는 감정이 숨어 있는 듯합니다.
초겨울 빠르게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커다란 화로에 불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 불꽃이 튀는 모습, 시시각각 변하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말이 없어도 충분한 대화가 됩니다. 불멍이라는 것이 참 묘합니다.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없고,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있음을 모두의 마음 깊숙이 전달됩니다.
불 앞에 둘러앉아 서로의 사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눕니다. 서로의 삶이 다르지만, 모두가 나름의 치열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음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립니다.
가끔 우리는 이런 시간을 ‘사치’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시간이야말로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중요한 휴식인지도 모릅니다. 속도에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잠시 속도를 늦추어도 괜찮다는 허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허락은 결국 사람에게서 오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힘을 만들어줍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감사한 인연이다.” 인생을 살면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초대를 하고, 그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누는 진심은 시간이 쌓여야만 만들어지는 관계입니다. 바쁨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런 만남을 멀리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삶에서 소중한 한 조각을 놓칠지도 모릅니다.
차 안에서 와이프에게 말했습니다. “다음에는 우리가 초대하자.” 받은 만큼 돌려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생각하며 이어가는 관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여유, 느끼지 못했을 감사함과 함께 저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살다 보면 가끔은 누군가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삶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다른 하루가 주어지고,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도시 밖, 자연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더 잘 버틸 수 있습니다.
초대해 주는 그분들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준 와이프에게, 그리고 그 순간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나 자신에게.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 삶의 숨을 불어넣어 준 하루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음 만남을 또 기대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