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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 커피 BLUEBOTTLE COFFEE


2019.05.03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개장한 블루보틀 커피 국내 1호점 일대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 이석우 기자(주간경향)



‘블루보틀 커피(Blue Bottle Coffee)’는 2019년 5월 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국내 1호점을 개점했다. 첫날부터 1000여 명의 고객이 몰려 4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을 만큼 관심을 모았다. 당일 매출만 6000만원을 기록했다는 후문이 나돌았다. 대표 커피 한잔이 6000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이적인 기록이다. 이후 서울 삼청동·역삼동·압구정동·한남동에도 차례로 매장이 생겼다.


블루보틀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여러 곳에서 회자된 바 있다. 클라리넷 연주가로 커피전문점 운영에 관한 사전 지식도 없던 괴짜 창업가가 미국 오클랜드의 한 파머스마켓에 수레를 끌고 나가 핸드 드립 커피를 팔기 시작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상권이 좋지 않고 치안이 나빴던 해이즈 밸리를 택해 창고에서 커피전문점을 창업하면서 성공신화를 써내려갔고,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실리콘밸리의 젊은 창업자들을 사로잡아 열정적인 응원을 등에 업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입맛 까다로운 실리콘밸리 사로잡아


그들의 성공 요인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브랜드 파워’가 작용했다는 사실은 분명해보인다. 2008년부터 피델리티·모건 스탠리·구글 벤처스 등의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로부터 약 14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한 것은 물론, 2017년엔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가 블루보틀 지분 68%를 약 4800억원에 인수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올해 3월 기준 미국과 일본, 한국 등에서 불과 91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소규모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에 막대한 투자가 몰려든 이유는 ‘브랜드 파워’가 기반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브랜드 파워란 무엇일까. 볼펜을 하나 예로 들어보자. 필기구인 볼펜은 마트나 문구점에 가도 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몽블랑’ 볼펜이 팔리지 않는 건 아니다. 이는 단순히 ‘물 건너온 명품’이라서가 아니다. 몽블랑이라는 브랜드가 볼펜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가치를 제공하는 힘을 브랜드 파워라고 부른다.


블루보틀의 브랜드 파워도 마찬가지다. 고객은 단순히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며 마신다. 제품·패키지·매장의 인테리어 등 블루보틀이 만든 모든 산출물의 결과를 이상적인 형태로 느낀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고객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으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커피 한잔을 마신다. 블루보틀이 지닌 이 특유의 매력, 즉 브랜드 파워에 공감해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유의 매력을 잘 구현한 동종업계의 기업은 블루보틀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스타벅스’다. 스타벅스의 브랜드 파워도 명확했다.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닌 문화를 파는 공간이라든가, 새로운 커피문화를 만들었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블루보틀은 스타벅스와 다른 길을 가는 것이 틀림없다. 다시 말해 브랜드 파워가 내뿜고 있는 가치가 전혀 다른 셈이다.



커피 품질이 기본 중의 기본


여러 일화를 통해 이 기업이 얼마나 고집스럽게 ‘품질’에 집착해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왔는지가 드러난다. 블루보틀은 2015년 6월부터 이전까지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도매사업을 중단했다. 게다가 합작투자 및 라이선스 발급 요청을 하는 많은 기업의 제안도 거절했다. 경영대학에서 배우는 일반적인 경영 원칙과는 전혀 달랐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라는 속담처럼 기회가 왔다면 놓치지 않고 나아가야 하는 데도 전혀 반대의 행보를 선보였다. 이유는 단 하나다. 비록 수익성은 높일 수 있겠지만 전체 과정을 직접 통제하지 못해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커피의 가장 순수한 맛을 살리기 위해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 신선도와 최상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48시간 이내 볶은 원두만을 제공한다. 컵 사이즈도 한 가지로 통일하고 메뉴의 수도 줄였다. 커피전문점이기 때문에 커피의 맛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대다수의 커피전문점이 다양한 메뉴, 여러 사이즈의 구색을 갖춰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선택이다.


최근에는 매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커피 추출용 도구인 드리퍼를 미국 MIT 출신 물리학자와 함께 개발했다. 드리퍼 안의 긴 직선 모양 돌기와 추출 시 물방울의 높이까지 고려한 설계는 커피의 맛과 향을 위한 집념이 담겼다. 재질은 일본의 아리타 도자기로 제조해 얇으면서도 보온성을 높였다. 종이필터에도 대나무를 배합해 커피 추출 시 종이냄새가 배지 않도록 만들었다.


블루보틀의 브랜드 파워는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이들에겐 완벽한 품질의 커피 한잔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기본을 바탕으로 브랜드 파워를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뒤따른다. 파란 병이 그려진 로고도 근사하게 뽑고, 특별기획(MD) 상품들도 훌륭하다. 매장 내·외관도 멋지고 세련되게 유지한다. 이 모든 것을 이상적인 형태로 관리하기 위해 다시 품질 투자로 되돌아온다. 투자자들에게도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선 품질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며 설득한다. 결국 브랜드 파워가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블루보틀의 품질에 관한 완벽함을 두고 “커피의 품질을 포기하거나 대규모 공장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도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분석했다. 블루보틀에는 좋은 품질의 커피란 경쟁업체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를 넘어 스스로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이런 고집스러운 추구가 결국 소비자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되면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한 것이다.


만약 필자에게 블루보틀 같은 선택의 기로가 닥쳤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대규모의 투자를 받고 매장을 확대하지 않았을까. 도매사업도 계속 확장하고 많은 합작투자 및 라이선스 요청도 고스란히 받지 않았을까. 커피에 대한 신념보다는 철저한 경영 원리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수익이 목적이 되지 않았을까. 블루보틀은 이런 일반적인 경영 상식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최고의 브랜드로 우뚝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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