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디자인에 탁월한 운전성능을 지닌 소형차를 들어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중 하나가 ‘미니(MINI)’다. 소형차의 대명사 미니는 ‘작은 차체, 넓은 실내’라는 콘셉트로 1959년 영국의 브리티시 모터 컴퍼니(BMC)에서 처음 제작됐다. 소형차면서도 1964~1967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4회 연속 우승하며 강인한 이미지도 갖추는 등 미니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다.
그러나 소형차에 대한 대중적인 수요가 감소하고 경쟁 차량이 속속 등장하면서 미니는 특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1994년 모기업 로버그룹이 BMW에 인수된 뒤에도 미니의 브랜드는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전통적인 미니 특유의 디자인을 새롭게 개선하기 시작했고, SUV 등 다양한 차종을 추가로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미니의 개성 있는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준 둥근 헤드라이트, 육각형 모양의 그릴, 타원형의 손잡이 등 상징적인 디자인은 여러 요소가 더해지면서 본래 갖고 있던 무형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지 않고 약점을 덮는 데만 급급해 스스로 평범해지고 만 것이다.
반대로 창업 이후 지금까지 줄곧 무형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축적하면서 소비자의 충성심을 이끌어낸 자동차 브랜드도 있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자동차 제조업체 ‘볼보(VOLVO)’가 그 주인공이다. 볼보는 안전과 튼튼함의 대명사로 불린다. 특히 자동차 안전에 대한 볼보의 철학은 남다르다. 1927년 설립 당시 창업자 아사르 가브리엘손과 구스타프 라르손이 “볼보에서 만드는 모든 것의 우선 원칙은 항상 안전”이라는 점을 역설한 이래 지금까지 튼튼하고 믿을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볼보의 안전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선 유명한 안전벨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 안전벨트인 ‘3점식 안전벨트(한 줄로 세 지점을 고정하는 방식)’는 볼보에서 최초로 발명했다. 이전까지는 비행기 안전벨트와 동일한 방식의 ‘2점식 안전벨트’가 주로 사용되었다. 1959년 당시 볼보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닐스 보린은 2점식 안전벨트가 지닌 단점을 보완해 세계 최초로 발명한 3점식 안전벨트를 볼보의 PV544 차종에 탑재했다. 기존 2점식에 비해 착용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왔으나 모의 충돌시험을 실시해 탑승자 안전 면에서 더 우수하다는 결과를 공개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기술을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자동차 제조사들에 무상으로 공개한 것이다. 특허 기술을 다른 자동차회사들에 판매했다면 엄청난 수익을 거뒀을 수도 있었겠지만 볼보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사의 안전에 대한 신념, 즉 언제나 안전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안전장치의 개발로 현재까지 목숨을 구한 이들은 100만 명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과적으로 볼보는 기술만 뛰어난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보다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드는 브랜드 이미지와 정체성을 동시에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볼보의 안전에 대한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67년 볼보는 세계 최초로 후방 어린이용 시트를 개발했다. 빈번히 일어나는 정면충돌 사고에서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감당할 수 없는 어린이들을 위해 목을 지지하고 넓은 공간으로 충격을 분산시켜 큰 부상을 막을 수 있게 한 후방형 시트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또 1978년에는 어린이 안전을 위한 부스터 쿠션을 최초로 개발했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거쳐 편리한 기능도 보완했다.
이밖에도 안전을 향한 고집은 계속됐다. 측면 충격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하는 강한 프레임, 부상이 잦은 목뼈를 보호하는 시스템과 커튼식 에어백, 차량전복 방지 시스템, 사각지대 정보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데 항상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나갔다.
2008년 볼보는 ‘2020년까지 볼보 차량과 관련한 자동차 사고에서 사상자가 없도록 하겠다’는 과감한 선언을 했다. 실제로 프리미엄 대형 SUV인 XC90은 16년 동안 영국에서 단 한 명의 사망사고도 나지 않은 기록을 세웠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주관하는 충돌 테스트에서도 10년 이상 우수 등급을 받으며 안전에 대한 기술력을 대외적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자신감은 1970년부터 자체적인 교통사고 조사팀을 꾸려 사고현장마다 직접 찾아가 도로·교통상황, 사고원인과 피해 규모 등을 기록하며 축적한 연구결과에서 비롯됐다.
볼보는 총 4만3000건 이상의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 충돌 상황에서 차량의 손상, 운전자와 보행자의 위험도 등을 분석하면서 첨단기술을 계속해서 개발했다. 레이저를 이용해 앞차와의 추돌 가능성을 감지하고,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하는 ‘시티 세이프티 시스템’이 대표적인 개발 성과다. 통계를 분석한 결과 도로 위 전체 추돌사고의 75%가 시속 30㎞ 이하의 저속 상태에서 발생했고, 추돌사고의 50%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이러한 안전 기능이 차종과 가격에 상관없이 탑재되는 점도 볼보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브랜드란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한 싸움과 다르지 않다. 앞서 나온 미니는 ‘브랜드 차별화 전략’을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하는 사례다. 무형의 가치를 축적하며 만들어지는 튼튼한 브랜드는 당장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을 증대시키지는 않더라도 브랜드 고유의 특성을 소비자의 마음속 깊이 각인시킨다. 미니는 제품 카테고리를 늘리고 디자인 요소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으나 결과적으로 평범한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볼보는 사회의 안전을 생각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경쟁우위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차량을 만드는 정체성과 연결시켰다. 그 결과 ‘볼보=안전’이라는 인식을 정착시켰다. 볼보는 환경규제가 까다로운 북유럽의 기준을 맞추느라 엔진 설계와 성능 면에서도 기술력이 뒤지지 않지만 ‘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면 비교적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 디자인이나 내장 등의 단점이 ‘안전’ 덕에 감춰지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어쩌면 그들에겐 브랜드 차별화 전략이 필요 없는 상태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사람과 사회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불변의 원칙에 따라 시간이 만들어 놓은 금자탑을 계속 쌓아나가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