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KODAK)’은 카메라를 상징하는 브랜드다. 창립자 조지 이스트만은 1883년 감광필름을 상용화했고, 1887년에는 세계 최초로 휴대용 카메라를 개발했다. 그 이듬해에 창립된 코닥은 지난 1세기 동안 카메라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누구도 코닥의 실패를 예견하지 않았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 이후 코닥의 위기가 왔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코닥은 ‘디카’ 기술에서도 선두주자였다.
디지털카메라가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확산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코닥은 이미 1975년 디지털카메라에서 입력되는 화상을 컴퓨터 파일로 변환시키는 CCD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1995년에는 DC40이라는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당시 소니와 함께 미국 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닥은 여전히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 판매에만 중점을 두는 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2001년 온라인 사진 공유 사이트인 ‘오포토(ofoto)’를 인수해놓고선 역시 제대로 사업화하지 않았다.
결국 코닥은 2012년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한때 ‘사진은 코닥’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진에 관한 한 최고의 브랜드였지만,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대가는 컸다. 같은 해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인수된 사례를 보면 코닥의 이 보호신청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다. 코닥이 파산신청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한 세기 동안 ‘카테고리 킬러’로서 경쟁자들이 따라가기 거의 불가능한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필름 시장에만 매달린 나머지 노후한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과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하지 못한 결과 브랜드를 재생·쇄신할 적절한 시기를 놓친 것이다.
반대의 예를 들어보자. 1911년 이탈리아의 휠라 형제가 창업한 의류 브랜드 ‘휠라(FILA)’다. 창립 당시 휠라는 속옷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회사였으나 1972년 이탈리아의 자동차 기업 피아트가 인수하면서 스포츠 신발과 의류를 생산하는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이후 1990년대 초반 당시 NBA의 스타 그랜트 힐 등을 모델로 기용하면서 고급 스포츠화 브랜드로 큰 성공을 이뤘지만, 이후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거대 스포츠 브랜드와의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중저가 브랜드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휠라는 2007년 부도위기에 빠졌다. 그러자 과거 한국산 신발에 휠라 상표를 붙여 미국에서 판매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고, 휠라의 성공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휠라코리아가 나섰다. 휠라코리아가 휠라 본사를 인수하며 이탈리아 브랜드에서 한국 브랜드, 정확하게는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로 변신한 뒤, 매년 적자를 보던 휠라는 2010년 마침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시장과 소비자의 구매 패턴 변화 속에서 휠라는 코닥처럼 점차 올드 브랜드라는 인상을 떨쳐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결국 휠라는 2014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뒤 이를 탈피하기 위해 2015년 말부터 본격적인 브랜드 리뉴얼에 착수했다.
브랜드 인식을 일신하고 개선하기 위한 첫 번째 전략은 주요 고객층을 10·20세대로 좁히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전까지 휠라는 속옷과 아웃도어 라인까지 포함해 의류와 관련된 거의 모든 범주의 제품을 판매했고, 지향하는 고객층도 전 연령대가 대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핵심 구매 소비층을 밀레니얼 세대로 좁힌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특정 소비자층을 고려해 움직이는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복고적인 감성에 현대적인 디자인이 가미된, 일명 ‘뉴트로’에 빠진 밀레니얼세대를 위해 출시한 운동화가 성공을 거뒀다. 브랜드 전체를 급격한 성장세로 전환시킨 이 운동화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주요 소비 기준인 ‘가성비’마저 충족하면서 130만켤레가 판매될 정도였다. 또한 이후 출시된 일명 ‘어글리 슈즈’로 통하는 모델 디스럽터 2도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연타석 홈런을 쳤다.
자신만의 개성을 상징하고 표현해줄 수 있는 희소성 있는 제품을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수요에 충실히 답하기 위해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컬래버레이션)도 진행했다. 이들에게 친숙한 사탕 브랜드인 ‘츄파춥스’, 국민 아이스크림으로 자리매김한 ‘메로나’ 등과의 제품 간 협업을 통해 한정판 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했다. 나아가 휠라는 밀레니얼 세대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 누구보다 개방적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이들과 함께 만드는 이벤트와 상호작용은 브랜드가 바로 소비자의 동질감 구축임을 보여줬다. 예를 들면 휠라의 주력 판매 제품이었던 신발 분홍색 ‘코트 디럭스’가 딸기우유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데에서 착안한 광고를 제작했고, 이들 세대가 강력한 또래문화를 향유하는 점을 바탕으로 개별 소비자가 아닌 소비자가 소속된 집단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나아가 휠라는 자체 소매매장을 줄이는 한편, 다양한 브랜드의 스포츠 운동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문 편집매장에 입점하면서 유통채널을 변화시켰다. 편집매장이 연령층을 불문하고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최신의 유행과 다양한 스타일을 한눈에 확인하고 싶어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에 부합하려는 목적 때문이기도 했다.
휠라의 이러한 브랜드 리뉴얼 사례는 구찌의 행보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구찌 또한 2014년부터 밀레니얼 세대를 새로운 구매층으로 확보했고, 성별이나 인종·국적·문화 등의 경계를 초월하는 한편, 이들 세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진행해 다시 한 번 명품 브랜드의 반열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물론 휠라는 목표로 하는 소비자층을 밀레니얼 세대로 좁힌 것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생산·유통방식을 도입해 제품의 질을 올리고, 가격은 합리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던 점도 주효했다. 그래도 브랜드의 세대교체와 자기혁신이 낳은 결과가 더 묵직하다. 휠라는 2016년 9760억원이었던 매출을 2019년에는 무려 3조원까지 끌어올리면서 최근 보기 드문 극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