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가현 다케오는 인구 5만명 정도인 작은 도시다. 2011년 다케오 시장이었던 히와타시 게이스케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던 도쿄의 서점에 주목했다. 여타의 일본 지방 소도시들이 그렇듯 다케오도 고령화와 경기침체로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새로운 발전모델이 필요했고, 이 서점이야말로 소도시의 변신을 주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처음에 히와타시가 만나려 했던 사람은 이 서점의 부사장이었다. 그러나 부사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서점에서 우연히 사장과 마주쳤다. 히와타시는 곧장 다가가 새로 출범할 예정인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운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서점 사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며 선뜻 제안에 응했다. 사전 협의나 거래는 없었다. 그리고 약 2년 뒤, 2013년 4월 다케오 시립도서관이 문을 열었고, 연간 이용객만 100만명에 육박하는 일본 최고의 공공시설이 되었다.
히와타시 시장이 자신이 책임진 도시의 변신을 주도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서점이 어디일까? ‘츠타야’가 운영하는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다. 한국의 청담동과 비견되는 동네인 다이칸야마에 약 1만2000㎡ 규모의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서점과 카페, 식당, 편의점 및 각종 생활용품 관련 판매점을 한데 모은 복합 문화공간이다. 이곳은 도쿄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이색 명소이자,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매체에서도 집중 조명하고 있는 곳이다.
츠타야는 라이프스타일 기획사 CCC(Culture Convenience Club)가 운영하는 일본의 서점 및 DVD 대여·판매 체인이다. 1983년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자신의 고향인 일본 오사카부 히라카타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55개의 프랜차이즈를 두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85년에는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의 관리를 위해 현재의 모기업을 만들었다.
츠타야는 창업 초기부터 매우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책은 서점에서, 음반은 음반 판매전문점에서 따로 구입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사장 마스다의 생각은 달랐다. 별개로 구분되던 책과 음반, 비디오 등을 하나의 문화콘텐츠 묶음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단순히 상품을 모은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책과 음악, 영화를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게 제안했다. 그런 의도로 상품들을 편집한 공간이 츠타야였던 것이다.
시대에 앞서는 편집매장을 선보인 것만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츠타야는 철저히 고객중심의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가 생산과 소비의 주역으로 우뚝 서고 있었다. 이들은 1970년대에 이미 새로운 유행과 문화를 주도하는 핵심 소비계층으로 성장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안정된 직장과 수입을 얻으면서 상품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아이콘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츠타야는 바로 이런 소비자의 변화에 주목했고,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성장세도 이어져 1990년대까지 고속성장은 계속됐다.
그러나 츠타야가 고속성장기를 지나 지금까지도 시선을 모으는 이유는 스스로 성공의 척도를 여러 번 경신했다는 데 있다. 사회·문화·경제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특히 2003년 도쿄 롯폰기힐즈에 입점한 츠타야 매장은 일본 최초로 서점과 스타벅스 커피전문점을 융합시킨 공간을 마련했다. 이 매장에 들른 손님은 누구든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매장 내 커피전문점 의자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커피와 책을 그저 팔려는 상품으로만 생각했다면 내놓을 수 없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이 매장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2011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선보인 새로운 변화의 시초로 자리 잡았다. 바로 서두에 언급한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다.
자신들의 고객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전략이 꽃피운 공간인 이곳은 넓고 복합적인 공간이라는 점 외에도 ‘숲속의 도서관’이라는 인식을 주기에 알맞도록 서점 건물 밖으로 산책로를 연결하는 등 보통 서점과는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또 특급 호텔이나 백화점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컨시어지 서비스, 즉 고객의 요청에 따라 책이나 음반, 영화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도입해 30명이 넘는 직원들을 배치했다. 특히 이들은 각기 맡은 분야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이들로, 가령 음식연구가로 활동하던 직원이 음식 관련 서적을 담당해 알려주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만명이 방문하는 츠타야 서점에 방문객 한명 한명이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개인형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음반 코너에는 1~2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와 탁자를 둬 방해받지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했고, 서점 코너 역시 마치 작은 서가처럼 꾸며 개인 공간에서 책을 읽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츠타야 티사이트에서 드러난 이들의 ‘고객중심’ 사고를 보여주는 백미는 따로 있다. 버스와 택시 정류장을 매장 바로 앞으로 옮긴 것이다. 개점 전 마스다 사장은 이 공간을 찾을 핵심 소비자층으로 또 한 번 단카이 세대에 주목했다. 일본의 60세 이상 중·노년 세대의 소비 총액은 전체의 46%에 달할 만큼 21세기 들어서도 단카이 세대는 여전히 소비 핵심계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츠타야는 바로 이들이 조금 더 쉽고 편안하게 매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의해 정류장의 위치까지 조정한 것이다. 또 영업시간도 다른 곳과 달리 오전 7시로 앞당겼다.
작은 도시 다케오가 도서관으로 유명한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공공 비즈니스 모델로 츠타야를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고객중심 사고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민이냐 소비자냐, 공공행정이냐 영업활동이냐의 구분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누구든 기꺼이 대접하고자 나서는 그 발상은 또 다른 츠타야, 또 다른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성공을 만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