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텔 인사이드 Intel inside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인텔 사옥 벽면에 ‘인텔 인사이드’ 슬로건이 비치고 있다. / 인텔



‘도~ 도파도솔!’ 컴퓨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유명한 징글송이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밴드 에델바이스 출신의 월터 베르조바가 작곡한 4개의 음표로만 구성된 3초짜리 멜로디, 인텔의 로고송이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 무어의 법칙으로도 유명하다

1968년 7월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창업한 반도체 업체 인텔은 1970년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인 D램을 출시하면서 1970년대 당시 메모리 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어 가격이 40% 이하로 폭락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급기야 1986년에는 무려 1억7000만달러나 되는 적자를 기록해 6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해고할 정도로 운명의 기로에 섰다.



메모리 반도체값 폭락으로 위기


이때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바로 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당시까지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만들었지만 1971년 세계 최초로 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인텔 4004를 개발했고, 그 이듬해엔 대폭 성능이 향상된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8008을 개발하는 등 약 2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능이 향상된 8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시장에 선보인 바 있다. 특히 1979년에 개발된 인텔 8088 프로세서는 IBM 컴퓨터에 탑재되면서 히트 상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 참조 :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걸어온 길 (링크)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인텔이 회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사실 운이 크게 작용했다. IBM에 납품하다 중단된 상황이었지만, 컴팩(현 HP)의 컴퓨터에 인텔 80386 프로세서, 즉 i3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하는 기회를 얻으면서 회사의 주요 사업 부문을 메모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었다.



또한 인텔의 광고전략도 한몫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컴퓨터 사용을 위한 필수품이지만 당시 소비자들은 컴퓨터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품이라고 인식하는 데 그쳤다. 대부분이 286 컴퓨터를 쓰고 있는 환경에다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로 교체하면 기존 소프트웨어가 호환되지 않을 것이란 걱정 때문에 386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한 저항심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인텔은 내부의 의견 수렴과 실험을 거쳐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500만달러가 넘는 광고비용을 지출했다. 그 결과 미국 내 인지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인텔 386 386 마이크로프로세서

그러나 맞닥뜨린 문제도 적지 않았다. 물론 컴퓨터 부품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하는 기업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 마케팅을 펼친다는 새로운 발상은 주목을 끌었지만, ‘386’과 ‘486’ 마이크로프로세서 상표가 미국 법원으로부터 숫자로 된 이름은 등록상표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 누구나 해당 상표를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하는 데엔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지만, 경쟁사의 추격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인텔은 여러 단계의 실험을 거쳐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을 선보였다.



이 캠페인의 핵심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컴퓨터의 성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과 함께 이 분야 선도 기업이 만든 제품은 컴퓨터의 안전에 막대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새롭게 출시한 ‘인텔 아웃사이드’ 의류와 함께 시장에 나온 펜티엄 프로세서는 인텔의 성공가도를 이끌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1992년 22%에 불과했던 인텔의 소비자 인지도는 2년 만에 80%까지 치솟았고, 캠페인이 끝난 1998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이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최고의 사례로 거론될 정도였다. 이후에도 이어진 다양한 협력 마케팅은 1999년 말까지 2700여개의 컴퓨터 제조회사들이 인텔과 계약을 맺게 했다. 이를 계기로 인텔은 ‘컴퓨터 산업=인텔’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냈다.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으로 재기


인텔의 브랜드 마케팅은 서로 다른 업태 간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지평도 열게 되었다.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은 인센티브 기반의 협력 광고 프로그램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우선 컴퓨터 제조업체가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구매하면 인텔은 그 비용에서 1%를 협력 광고기금으로 조성한다. 그리고 제조업체가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부착하기만 하면 인텔은 컴퓨터 완제품의 인쇄광고비용을 대신 지불해주는 방식이었다. 컴퓨터 제조업체의 입장에선 인텔 로고를 부착하면 광고비용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신 기술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탑재된 컴퓨터라는 인식 보증이 있었기에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업체 델 컴퓨터도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단숨에 업계의 총아로 등장할 수 있었고, 반면 오랫동안 인텔과 밀월관계에 있었던 컴팩은 인텔에 납품 가격 할인을 요구하다 서로 결별한 끝에 결국 HP에 인수당하는 처지가 됐다.

인터브랜드 BEST GLOBAL BRAND 2020 에서 인텔은 12위를 차지했다 / 인터브랜드 제공


사실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 이후 인텔이 보인 행보는 이전보다 성공적이지 않았다. 인텔이 2006년부터 제시한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은 인텔이라는 주 브랜드 아래, 다양한 플랫폼 모델로 확장할 수 있게 모바일, 디지털홈, 기업, 건강이라는 세분화된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형태였다. 게다가 울트라북 등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양산했지만 AMD를 필두로 경쟁업체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더 이상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그 결과 세계 브랜드 순위에서도 계속해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인텔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탑재된 컴퓨터라면 믿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시도는 획기적이었다. 소비재 분야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더한 신제품을 생산하고 기존 제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 한층 향상된 제품 이미지를 선보이는 마케팅이 다양하게 진행됐지만,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산업재 분야에서는 이런 시도가 거의 없었다. 이후 고어텍스나 보쉬 등의 마케팅을 보면 산업재 분야에서도 가치에 기반을 둔 브랜딩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오늘날 소비자들이 완제품 제조업체의 브랜드만 보고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그 제품을 구성하고 있는 부품 혹은 소재는 무엇인지까지 고려해 구입하는 시대를 연 주역이 바로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브랜딩의 대표 주자 고어텍스, 고어텍스의 소재가 제품 구매 기준이 되는 현실이다 / 고어텍스 제공





작가의 이전글 츠타야 티사이트 TSUTAYA T-SIT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