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가 첫 상업운항을 개시했다. 제트엔진 4개를 탑재한 이 여객기의 최고 순항속도는 음속의 2배인 마하 2를 넘었다. 8시간 정도 걸리던 뉴욕-파리 항로를 단 3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콩코드는 외형도 획기적이었다. 초음속 비행에 적합한 설계구조에 따라 뾰족하게 튀어나온 앞부분은 이·착륙 시 구부러질 수 있게 만들었고, 본체는 가늘고 날씬했다. 날개는 큰 델타형의 구조로 돼 있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단점도 존재했다. 일반 여객기 일등석보다 3배 이상 비쌌지만, 내부가 비좁아 쾌적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콩코드는 단지 월등히 빠르다는 장점 하나만으로 시간에 쫓기는 부유한 사업가나 유명 연예인들이 애용하는 여객기라는 입지를 지킬 수 있었다. 2000년 7월 25일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이륙한 지 채 2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이 사고로 승무원과 승객 100여명은 현장에서 전원 사망했다. 사고는 앞서 출발한 항공기에서 떨어진 금속 파편이 원인이었으나, 이 사고를 계기로 콩코드의 안전성 문제와 설계 결함 등이 지적됐고, 급기야 2003년 운항이 중단되고 말았다.
초음속 여객기라는 새로운 유형을 창출하려 도전했던 콩코드는 그 자체로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초음속 비행을 할 때 발생하는 소음과 한 번에 많은 승객을 실을 수 없는 동체 구조, 비싼 요금 등으로 인해 더는 카리스마를 유지할 수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체라도 상업적 비즈니스 모델이 부족하면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여객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안전한 이·착륙은 물론이고, 먼 거리까지 쾌적한 항공 비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준에 부합되는 최고의 여객기, 즉 항공산업 역사상 기술적 우수성과 상업적 비즈니스 모델이 완벽하게 합치한 여객기는 무엇일까? 미국 항공기 제조회사인 보잉(Boeing)이 개발한 장거리용 여객기이자 여객기의 초대형화를 실현한 ‘보잉 747’이 그 주인공이다.
1968년 시애틀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보잉 747은 점보(Jumbo)라는 애칭답게 첫 버전의 좌석 수가 무려 450석이었다. 최초로 복층구조로 설계된 이 광폭동체 여객기는 당시 여객기의 수용 능력을 두 배 상회했다. 보잉 747 기체 아래를 걸으면 어지럼증을 느낀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이 거대한 여객기가 시속 300㎞로 활주로를 질주해 날아오른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보잉 747은 시범 운항이 이루어진 뒤 약 1년이 지난 1970년에 지금은 파산한 팬아메리칸항공에서 처음 도입돼 첫 상업운항을 시작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운항 기술과 내부 환경을 개선해 600명을 태우고도 항속거리가 1만5000㎞에 달하는 개량형 747이 나왔다. 1993년 싱가포르 항공에 1000번째 보잉 747기가 인도됐고, 2016년 12월까지 추가로 500여대를 생산하는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여객기로 명성을 높였다.
그러나 영광의 날이 지나면 황혼이 오는 법이다. 37년 동안 쥐고 있던 가장 큰 여객기라는 타이틀을 2005년 경쟁사인 에어버스의 A380에 내주는 한편, 엔진을 4개나 탑재해 효율성에서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함께 받았다. 보잉은 2017년 8월 대한항공에 마지막 747기를 인도한 뒤 양산을 중단했다. 화물수송기로 개조된 보잉 747 또한 2022년 단종이 확정됨에 따라 1969년 첫 비행을 시작한 지 53년 만에 비로소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날 예정이다.
한때는 세계의 하늘을 장악했지만, 점차 후발주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보잉 747을 굳이 최고의 여객기 브랜드로 꼽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업계 최초로 여객기를 대형화하는 표준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표준을 만드는 것은 마케팅 불변의 원칙 중 하나다. 사실 광폭동체 여객기 개발에 도전했던 기업은 보잉만이 아니었다. 당시 미 공군은 대형 화물 운반 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신형 수송기 개발사업에 열을 올리면서 보잉을 포함해 록히드와 맥도넬 더글러스를 참여시켰다.
비록 당시 미 공군 수송기 사업에선 록히드의 C-5가 선정되며 보잉은 탈락했지만, 오히려 보잉은 이때의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여객기 사업에서 대박을 쳤다. 록히드와 맥도넬 더글러스는 각각 제트엔진 3개를 탑재한 L-1011과 DC-10을 개발했지만, 보잉은 이들보다 더 크고 과감하게 제트엔진 4개를 탑재했고, 과거 미 공군 전략폭격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기술력을 통해 먼저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초대형 여객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시대의 가치 기준’을 바꿨다는 점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객기는 한 번에 많은 사람이 탑승해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또 유럽만 보더라도 당시 여객기로 이동할 수 있었던 지역은 지중해까지였을 정도로 항속거리도 짧았다. 그러나 보잉 747은 1만㎞ 이상 날아갈 수 있어 전 세계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나아가 세계를 ‘지구촌’으로 바꾸면서 다양한 문화적 가치 또한 만들어냈다. 대량수송이 가능해지니 여행비용도 점차 저렴해졌고, 이와 함께 지구 반대편에서 거주하던 이민자 가족들이 여행을 통해 연고지를 방문해 자기의 뿌리를 찾는 등 유대감과 정체성을 일깨우는 데도 일조했다.
여담이지만 현재 보잉의 로고가 사실 보잉과는 무관한 항공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지구를 상징하는 둥근 원과 원을 가로지르는 비행체의 궤적, 그리고 지구의 오른편을 향해 날아가는 항공기까지. 세가지 요소로 구성된 이 로고는 1997년 보잉에 합병된 맥도넬 더글러스의 로고를 보다 단순화한 것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앞서 1961년 맥도넬과 더글러스가 합병해 맥도넬 더글러스를 설립할 때도 더글러스의 이전 로고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더글러스의 원래 로고는 1924년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이용해 세계 일주에 성공한 ‘월드 크루저’ 항공기들이 지구 한바퀴 도는 모습을 형상화한 데서 유래했다. 이름조차 남지 않은 옛 기업의 흔적이 브랜드의 상징인 로고에서 살아남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비록 규모와 성능에서의 1등 자리는 에어버스 A380에 물려주었지만, 보잉 747은 앞서 언급했듯 여객기의 본질을 창출해낸 업계의 스탠더드로서 시대의 변화에 필요한 가치 기준을 정립했다. 세계 최고의 여객기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초음속 여객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던 콩코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었으니, 그 어떤 부연도 필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