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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링의 유혹

평당효율이 최고의 지상과제일까




비교적 얼마 전의 일이다. 고객사 대표가 쇼핑몰을 방문하여 라운딩을 하던 중,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베이커리샵을 저렇게 크게 했어야 했나요?
브랜드 MD 가 조금 약한데 테넌트를 손봐야 하지 않나요? 
MZ 세대들이 놀고 먹고 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지 않나요?


그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트렌드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여의도에 개장해 큰 효과를 거둔 H사의 쇼핑몰을 예로 들었다. 몇 시간씩 기다리는 커피 전문점, D2C 브랜드의 입점 효과, 평당 매출 공식을 무너뜨려버린 파격적인 테넌트 구성 등 이른 바 몰링(malling)의 유혹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해당 지점장은 바통을 이어 나갔다. 우선 예로 든 H사와 해당 매장의 위치(수도권 일대, 전형적인 포켓상권이긴 하다)가 다르고, 위치에 따른 고객 성향이 틀리며, 고객 성향에 따른 MD 구성은 이것이 최선이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영업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현재의 테넌트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후 자리를 옮겨 본사 임원과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 내게 조금 전의 상황과 관련된 의견을 물어왔다. 적절한 예를 생각하다 문득 미국의 리테일 기업인 J.C 페니의 사례를 떠올렸다. 2011년 이 회사의 CEO로 취임한 전직 애플 부사장 론 존슨은 취임하자마자 각종 세일 행사들을 중단했다. 그는 타임 세일, 쿠폰 세일 같은 고객 미끼용 프로모션은 지양하고 'everyday Low Price'를 표방하던 회사의 가격 정책을 180도 바꿨다.


그는 애플스토어의 성공적인 런칭을 경험 삼아 고급 제품을 우아하게 팔고 싶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존슨이 CEO로 취임한 이후 주가는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고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결국 론 존슨은 취임한 지 16개월만에 경질됐다.


론 존슨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해당 상권에서 H사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개진했다. 다만 본사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O2O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지 않는 것, D2C 브랜드를 입점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중고 명품 매장을 오픈시키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을 전달했다. 물론 나의 역할은 MD 나 영업이 아닌 마케팅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임원은 반문하듯 답했다. "그렇죠. 몰링이다 뭐다 해도 빛 좋은 개살구죠. 유통의 생명이 뭡니까? 평당 효율 아니겠어요? 나는 그저 웃음으로 화답했다.


며칠 전, 랄뽕(랄프로렌 매니아를 지칭)들의 파티라고 불리는 랄프로렌 트렁크 쇼에 초대 받은 자리에서 이 일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진정한 평당 효율을 보여주는 사람들로 가득찬 이 곳에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사람들은 제품을 사기 위해 실제로 지불해야 하는 가격보다 더 큰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랄프로렌의 세계관에 들어간 사람들은 게임하듯 옷을 입고 구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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