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라는 섬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계단’이다. 정말 끊임없는 계단이 늘어서 있었다. 계단은 김만중이 자신의 묘지 자리로 삼아놓았다던 허묘로 가는 길에만 놓여 있다. 계단은 인적이 드문 것을 증명하듯 나뭇잎들로 쌓여있기 때문에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자꾸만 미끄러진다. 등에 매고 있는 가방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며 자꾸만 뒤를 쳐다보게 된다. 앞은 계속되는 동일함의 반복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속에서 불가의 108계단이 생각나기도 하고,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떠오르기도 한다.
계단은 분리되어 있는 공간들의 수직적 연결을 위해 만든 이동적 도구이고, 이동이나 유동성을 암시한다. 또한 계단은 상하공간을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매개체이자 인간에게 있어 가장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통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계단’은 무엇을 잇는 매개체이자 통로일까. 김만중의 관념과 나의 관념을 잇는 통로, 문학에 대한 관심의 매개체, ‘유배’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새로운 형태의 ‘유배’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높은 곳으로의 이동은 단순히 ‘오른다’는 관념 이외에도 그러한 ‘오름’을 통해서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 존재한다. 곧게 뻗은 높은 계단은 육체적 수고 뒤에 숨은 정신적 휴식을 내포하기도 한다. 누구나 계단을 오를 때는 노동과 어느 정도의 고통을 수반한다. 경사가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가파른 계단을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오르기 위해 힘들게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올라 나아가는 노력 후, 자신이 목표한 높이나 그 위치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은 아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노력하는 모습이나 고행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되다.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계단을 오른 후에만 볼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나를 계단으로 이끄는 원동력일 것이다. 당신의 계단은 무엇을 향해 오르고 있는지, 나의 유배는 어떤 결말을 맞을지 궁금하다.
나의 고민들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그 고민들은 모두 부질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