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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옥연습

오늘도 김승옥 실패~!

by 문장강화

"저 학생 아나?"

나는 한(韓) 교수님이 눈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았다.

"인사는 없지만 무슨 과 앤지는 알고 있죠."

거울 앞에서 상상 속의 교수님에게 나는 말했다. "프랑스학과의 자랑으로 미래에 포스트 김승옥이 될 학생입니다."


*

오늘은 반드시 소설을 써야하는 날이다. 내가 주축이 되어 이리저리 문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끌어 모아 만든 동인 <질주>의 정기소설제출일 하루 전 날이기 때문이다. 안 내면 만원을 벌금으로 내야한다. 만 원도 만 원이지만 더욱 싫은 것은 이 글쓰기라는 놈이다.

엊그제 글을 낸 것 같은데 벌써 또 내야한다는 데서 오는 이 고통, 특히 글쓰기 싫어하는 자가 창작자가 돼야 할 때의 고뇌를 그대들이 알란가 싶다. 댁들은 일단 모를 테고, 다른 작가님들은 그냥저냥 지레짐작정도. 유일하게 이 거대한 딜레마 앞에 선 내 고뇌를 알아줄 사람은 김승옥 작가님밖에는 없을 거다. 김승옥 작가님도 소설 쓰는 모든 과정이 "싫어죽겠다"라고 했으니까.

이제 푸념할 시간이 없다. 시계는 벌써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12시에 제출하려면 지금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마음만 초초해진다. 일단은 자판을 굴려야 하는데 내 자판은 영 시원찮다. 다른 애들이 세 문장을 완성시킬 때 나는 고작 세 단어를 쓰고 있다. 그렇게 쓰다보면 한 장 쓰는데도 3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하기야 그렇게 간단히 쓰는 이들이 무슨 진정한 작가이겠는가. 자고로 글이란 “저녁 무렵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걸 보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면 진도는 나가지 않았는데 온 방에 찢어진 원고지가 널려 있고 밤새도록 '팬티가 누래질 때까지' 담배를 피워대며 피가 나도록 머리를 긁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게 써야하는 것이다-라고 자위를 해봤자 벌써 10시다. 이미 망했다. 써놓은 것은 고작 세 줄. 전개도 구상도 아무 것도 생각해두지 않았다.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다. 나는 책장 속, 김승옥의 감수성들에 손을 뻗었다.


이하 줄거리.

나는 삶의 두 공간에서 어디를 선택해야할 지 무력한 사람이다. 옛 가치를 중시하는 한옥집과 빈민가 하숙사이에서 고뇌하던 나의 귀는 이상을 일으킨다. 요컨대 옆방에서 들려오는 음흉하고 질척거리는 소리, 은은한 신음에도 유독 강하게 반응하는 귀 때문에 나는 늘 배꼽아래를 진정시키기 힘들어진다. 결국 나는 남해로 가는 여행을 택한다. 그 배에서 어떤 유랑극단의 불쌍한 창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만약 내가 범죄자면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 흘린다. 그 눈물은 진정 어머니가 아이를 생각할 때의 눈물이다. 그녀의 눈물에서 답을 찾은 나는 끓어오르는 성욕을 내뱉는 대신 자신을 바다에 내던진다.



「역사」 담당자의 변(辯)

본 소설의 도입부가 역사를 베껴 왔다는 것에 대해 세 가지의 이유를 들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예로부터 우리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한 가지 물음을 가졌습니다. 바로 "내 앞 날이 있는 곳과 내 이상향이 있는 곳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그것입니다. 저 주제는 매우 흔한 것으로, 하다못해 옛 고전, 심지어 저작권도 끝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저런 구조로 시작합니다.

두 번째, 대학생이 겪을 수 있는 소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3박4일 청학동 여행을, 1학년 때 하숙을 겪었습니다. 자신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쓰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다른 세 권들이 더 많이 베꼈으니 역사는 여기에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빛의 무덤 속」 담당자의 항의

아니, 개새끼들도 발정나면 밤낮 멀다 짖어대는데 귀라고 못할게 있습디까? 아, 귀도 발정날 수 있지. 거 귀가 아니라 귀두였으면 아무 트집도 못할 것들이, 씨벌, 책에서는 귀를 잘라내는데 여긴 귀도 좆도 멀쩡하구만. 대가리에 빠꾸리 뜰 생각밖에는 없어가지고. 야, 이 개새끼들아.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끝났지? 자, 스텐바이!


「환상수첩」 담당자의 논리

이 작품이 유일하게 잘못한 점은 너무 뻔한 상징을 사용한 것이에요. 뇌과학에서는요, 남자는 위기에 빠지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귀소본능을 보이려고 해요. 이것도 그것에 일종으로 볼 수 있죠. 저 줄거리에서는 안 나왔지만 ‘나’는 사실 남쪽 사람이라 남해를 선택한 거고요.

그리고 문학적으로 해석할 때, 보통 바다는 생명력의 원천이잖아요. 보통의 문학작품에서는 바다를 긍정적으로 봤을 때, 두 가지의 의미로 압축할 수 있죠. 하나는 위에서 말한 고향으로 대변되는 생명력과 다른 하나는 어머니, 즉 여인입니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여인은 그런 해석의 영향 같군요.

작품에서 성녀는 어머니로 그려지고 있어요.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원죄를 저질러야 하지요. 창녀는 돈을 벌기 위하 원죄를 저지릅니다. 『죄와 벌』에서도 나왔죠? 성녀와 창녀는 양극단에 있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존재예요.

그렇다면 여인이 왜 하필 유랑극단이냐 하는 말씀은…유랑극단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대개 창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 역사적인 사실을 더 논거하기에는 지면이 작으니 어쩔 수 없겠네요. 다음 기회에 말하는 것으로 합시다.


「준의 세계」 담당자의 말씀

순천에 계신 우리 김승옥님이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글에 임하옵시며

저들이 작품 속 여인의 순수성을 의심하더라도 부디 화내지 마시옵소서.

여인의 눈물에 담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제가 제 글에게 의심을 던질 자들을 사하여 준 것 같이

저의 죄를 사하여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걸리지 않게 해주소서.

국문학의 감수성과 혁명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12시 3분 전, 2분 전, 1분 전. 분 뒷자리가 바뀌면서 최소 글이 2개씩은 올라온다. 카톡방 옆에 쌓인 숫자를 보니 나 빼고 얼추 다 낸 것 같다. 이제는 진짜 내야한다. 모르는 애들은 모르고, 아는 애들은'야 너 만날 심했지만 이번에는 진짜 너무했다'는 말이 나올 짜집기 소설을 내야한다. 난 마우스를 갖다 댔다.

채팅방에서 나가겠습니까?


이제 최소 한 달간은 피해야 한다. 난 장차 미래의 포스트 김승옥이니까, 내게는 수십 번의 통조림도 피해간 김승옥 작가님의 의지가 있으니 잘 해낼 것이다. 당분간 담배는 다른 곳에서 피워야겠지? 갑자기 울적한 마음이 든다. '문학도의 자존심은 지켰지만…이런 게 진정한 문학의 길인가?' 자문하며 센티멘탈의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그러자 거울에 비친 내가 한 마디 한다. "너는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이 정신병자야." 나는 가볍게 거울을 뒤집고 바닥에 눕는다. 그리고 우렁차게 외친다.

"아! 오늘도 김승옥이 되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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