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던 순간은 고요하다.
아무도 내가 무너졌는지 몰랐고 나도 내가 무너졌는지 몰랐다.
다만, 지금에서야, 그때의 나는 낙엽처럼 바스러져서 조그마한 괴로움에도 찢어지고 베었구나, 를 멀리서 회상할 뿐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어디에 말을 붙여야 할까.
스웨덴 린셰핑 작은 마을에 간 나는
병든 마음을 짊어지고 계속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으니
공간이라도 바꿀 수 있길.
내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순간은
브뤼셀의 공원에서 찾아왔다.
그날은 무척이나 노랗고 촉촉하던 가을이었는데
벤치에 혼자 앉아
물이 없는 분수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권대웅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지나간 그 겨울을 우두커니라고 불렀다
견뎠던 모든 것들을 멍하니라고 불렀다.'
나는 정말 그곳에서 멍하니, 우두커니,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인데
나는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따끔거렸다.
아무것도 내 억지대로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해서 포기하게 했고 내 영혼의 몫을 스스로 버리게끔 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이제 나를 추슬러 공원을 나가야지,
밥을 먹어야지, 하고 노랗고 주황색인 가로수길을 걸어가는데
공원은 넓었고 소리는 아득했다.
나는 갑자기 앞을 볼 수 없었다. 앞을 보기를 포기한 듯했다.
나는 그곳에서 한참을 웅크려서 울었던 것 같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2년을 더 살았고
그동안 웃기도 많이 웃었고 몇 번을 더 무너졌다.
이제는 슬픔이 찾아오면 가만히 놓아두고 골몰할 용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거워 살아갈 이유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때도 있다.
'나'라는 것의 경계를 생각하고
나를 생존시키기 위한 길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날 그 노란 가을 길이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혼자 무너져야 하는 걸까
누군가 무너질 때 내가 함께 있고
내가 무너질 때 누군가 함께 하는 것을
늘 꿈꾸면서 살아온 듯하다.
우리는 누군가와
노란 가을 길을 바스락 바스락 거리며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