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잼병 정리는 병신

ADHD주부란

by 무딘식칼

제목 그대로다. 청소는 잼병, 정리는 병신이다.

그나마 잼병인 청소는 매일 한다.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도 하니까….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앞으로 나올 ‘시엄마 강여사’ 이야기를 쓰려면 먼저 나를 조금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강여사 생각만 해도 벌써 명치끝이 묵직하다.

봄이 온다고 옷 정리를 하겠다고 옷을 다 꺼내놓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요즘 인스타에 ADHD 특징 올라오는 거 보면 소름 돋는다. 나 같아서.
그리고 내가 옷을 꺼내놓고 행동하는 모습이 딱 그 영상이었다.

겨울옷을 들고 “아 이거 드라이 맡겨야겠다~” 생각한다.
큰 가방을 찾으러 간다.
가방을 찾다가 옷 정리하는 건 까먹는다.

가방을 찾다가 베란다 구석에서 쭈굴쭈굴해진 감자 한 알을 발견한다.
감자를 보다가 '이걸 심으면 싹이 날까?' 생각한다.
감자를 들고일어나 화분 할 만한 걸 찾는다.

그러다가 싱크대 위에 점심 간식으로 해동해 둔 떡이 눈에 들어온다.
“아 맞다 떡 먹어야지~ 단 떡엔 커피지.”
커피를 내리다 또 생각난다.
“아 맞다 오늘 장 보러 갈 시간이 없으니 새벽 배송 시켜야지.”

핸드폰 새벽 배송을 뒤적뒤적, 그때 아들이 말한다.

“엄마, 정리 다 했어?”

그제야 깨닫는다.

"아 맞다. 나 정리 중이지."

다시 방으로 들어가 한 무더기 쌓인 옷들 앞에서 절망한다.
“이걸 언제 다 해!!!!!”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카톡 단체방에 올린다.

“미치겠어.”

지인들도 답이 없다.
내가 봐도 답이 없는 정리인데 그들이 뭐라 하겠는가.

결국 옷은 도로 들어간다.
꺼낼 때보다 더 구겨진 상태로.

그나마 이런 상태의 나를, 나는 위로한다.
정리는 타고나는 건가 보다라고 그래도 청소는 열심히 하잖아? 라며
(다른 건 다 잘하는 것 같네?)


갱년기의 아줌마는 사실 결혼할 때부터 정리와 청소에 문제가 많았다.

나른한 봄볕에 취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을 때였다.

게으른 눈꺼풀 사이로 부엌 벽에 걸린 검은 비닐봉지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칙칙한 검은색 위로 이질적인 순백의 빛이 명멸했다.

안경도 쓰지 않은 내 눈에 포착된 건, 봉지 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민 연둣빛 가녀린 줄기와 팝콘을 올려놓은 듯한 꽃이었다.

마치 "저기요, 작가님? 저 여기 살아있는데... 이제 좀 봐주실 때 안 됐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듯한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남편의 깜짝 이벤트인가 친구가 사다 놓고 깜빡하고 갔나 그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비닐봉지를 열어 본 순간 그 안에는 하얀 무가 약간 쪼글쪼글한 상태로 들어가 있었다.

"아"

그제야 주마등처럼 작년 겨울의 기억이 스쳤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길바닥에서 나물거리와 무 한 덩이를 펼쳐놓고 팔던 할머니. 좀처럼 팔리지 않는 물건들을 보며 '이걸 언제 다 팔고 들어가시려나' 하는 걱정에 뭐라도 사야겠다 싶어 집어 든 게 바로 이 무였다. 나물 무치는 데엔 영 소질이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거 제주 무라서 아주 맛있어요."

할머니의 그 한마디에 무를 덥석 챙겨 오긴 했지만, 당시의 나는 제주도에서 물고기 말고 무도 나오냐며 되물을 정도로 살림에는 무식한 여자였다. 그렇게 잊혔던 무였다.

지독한 겨울을 버텨낸 제주 무는 제 생을 다 바쳐 하얀 꽃을 피워냈고, 마치 나에게 감사하다는 듯 활짝 웃고 있었다. 질서 정연한 세상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풍경. 오직 나의 무심한 방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지독하게 아름답고도 미안한 봄이었다.

그 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의 기억이 없다.

성격 상 그냥 두었을 것 같다.

하 하 하.


물론 이렇게 좋은 기억만 있겠는가.

다음 장은 혐오감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며칠 동안 설거지가 쌓여 있기도 했다.
친구가 놀러 와서 싱크대를 보더니 기겁하고 고무장갑을 챙겨 꼈다.

“아유 지지배, 더러워 죽겠네. 뭐가 또 우울해서 설거지를 이렇게 쌓아둬. 내가 해줄게.”

그리고 호기롭게, 수도꼭지까지 쌓여 있는 그릇들로 돌진했다.

여기서 난 앞편에 썼던 붉은 수수밭과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

그리고 나의 비명이 아닌 친구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고 내 친구가 번개처럼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바퀴벌레는 아니었다.
날파리가 수만 마리, 싱크대에서 날아올랐다.
나는 소파에 누운 채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조금 통통했던 내 친구가 운동이랑은 담쌓고 사는 줄 알았는데 정말 잘 뛰었다.
그게 왜 그렇게 웃겼는지...

한 10분쯤 후, 친구는 홈키파를 들고 돌아왔다.
온 집안에 홈키파를 뿌려댔다.
그릇에도 뿌리며 외쳤다.

“내가 그릇 새로 사줄게!”

“사긴 뭘 사. 닦아서 쓰면 되지.”

종일 홈키파 냄새가 났고 갈 곳을 잃은 날파리들이 내 얼굴로 들러붙어 또 웃었다.

"이 쉐키들 내 얼굴이 썩은 음식으로 보이냐!"


당시 나는 시나리오를 쓴다고 엄청 깝죽대던 때라,
글이 안 풀리면 안 풀린다고 심란하고,

안 써지면 안 써진다고 환장하고…
그냥 우울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나마 술은 안 마셔서 아직 목숨이 생존 중인 것 같긴 하다.


하나만 쓰면 서운하니까 하나 더.

변기에 앉아 있는데 쓰레기통 옆으로 하얀 게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게 보였다.
안경을 안 쓴 상태라 잘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똥 닦고 잘못 버린 휴지인가,
내 생리대가 떨어진 건가,
별생각을 다 하면서 볼일을 봤다.

끝나고 가서 보니 기가 막혔다.

휴지통에서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길고 하얀 마트에서 파는 느타리버섯처럼 생긴,

‘이게 무슨 신기한 일이야…’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버섯 따위 사서 먹는다. 집에서 키우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정리는 젬병이라 강 여사가 없을 때는 건조기에서 바로 꺼내 입지 절대 개어두지 않는다. 강 여사에게 "옷을 왜 개세요? 그냥 여기서 꺼내 입으면 편한데"라고 했더니, 강 여사는 내가 개그우먼의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아는 눈치였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만약 부지런히 그 비닐봉지를 치웠다면, 한겨울 추위를 뚫고 올라온 그 가녀린 무꽃의 생명력을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 게으름이 아니었다면, 싱크대 앞에서 비명을 지르며 홈키파를 휘두르던 친구의 그 지독하게 의리 있는 성격도 확인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건조기에서 바로 옷을 꺼내 입는 엄마의 털털함을 보았기에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의 털털함을 보아도 넘어가 주리라 믿는다.

내 삶은 이토록 무질서한 틈새투성이다. 하지만 나는 이 빈틈이 좋다. 너무 꽉 짜인 질서 속에서는 결코 피어날 수 없는 '뜻밖의 꽃'들이, 나의 이 게으른 무질서 사이에서 가끔씩 고개를 내밀어 주기 때문이다.

정말 궁금하다. 건조기에서 바로 꺼내 입는 사람, 대한민국에 40%는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