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절에 다녀왔다. 이런 얘길 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사실 난 가톨릭 신자이다. 그런데도 절에 다녀왔다.
신앙이라는 건 원래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고, 그때 사람은 결국… 제일 높은 곳을 찾는다. 하늘이든, 산이든.
엄청 가파른 산길을 아주 오랫동안 (내 비천한 몸뚱이가 오르기에는 너무 힘든 산이였으므로) 올랐다.
젊고 평상시 운동 좀 하던 사람들은 30분이면 올라갈 길이였지만....
숨이 차오르다 못해 입과 똥구멍으로 뭔가 다 쏟아질 거 같은 기세였다. 중턱쯤에 앉아서 쉬고 있던 고등학생 되는 남학생이 "저 아줌마 좀 쉬었다 가세요" 순간 저 사춘기의 소년 특이 요즘 MZ시대의 남학생이 산을 오르는 아줌마의 얼굴을 보고 어떤 느낌였길래 쉬었다 가라고 할까... 아마 MZ사춘기남학생의 눈에는 내가 당장이라도 픽 쓰러져서 산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가 119를 부르고 헬기가 산으로 뜨고 본인은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첫 신고자로서 기자의 인터뷰 대상이 되고 나는 50대 중반의 무딘 모모 씨가 산에서 굴러 블라블라블라
학생의 말을 듣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쉬었다.
늘 궁금한 게 많지만 애띤 학생을 보니 더 너무너무 궁금한 게 많았지만 너무너무 숨이 차올라서 겨우 물어본 게 "학생도 여기 초행?" 그 안에는 여러 의미가 있었는데 그러니까 나보다 월등히 젊은 몸을 가지고도 방만한 마음으로 힘조절 못하고 올라가다가 한방에 꺾여서 쉬고 있는 게 아니냐? 그리고 여긴 혼자 왔느냐? 등등의 의미를 담아 물어본 거다. 하지만 힘든 학생도 "네 첨이에요"
나는 그제야 내가 더 이상 질문을 할 몸상태도 아니고 쉬고 있는 학생에게도 긴 답변은 듣기 힘들 거란 깨달음에 올라온 길을 보며 풍경을 봤고 이미 벌어진 입이었지만 턱이 빠지게 벌어졌다.
풍경에서 보이는 모습은 "수고했다. 무딘 식칼아"라고 인사해 주는 느낌였다.
'와 이래서 산 산 하는구나' 밑을 보니 올라온 길이 까마득했고 위를 보니 남편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남편이랑 같이 왔었다. 같이 왔던 것도 잊힐 만큼 힘든 산행길이었다.
불과 1시간 전 호기롭게 남편과 발맞춰 같이 출발했었고 힘이 빠지기 시작하며 내 손에 대나무 막대기 (절에서 준비해 둔)에 의지해 올라오고 있던 거였다.
그래도 간간히 올라가며 내가 따라 올라오는지는 확인하고 있었나 보다.
말할 기운도 없었던 나는 손을 훠이훠이 저으면서 먼저 가서 절 해라고 입모양으로 삐죽거렸는데 남편은 어서 올라오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 저길 언제 또 올라가나 싶어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6시간을 운전해서 여기 내려온 목표가 생각나서 다시 두 무릎과 엉덩이에 힘을 꽉 주었다.
그제 밤, 인스타에서 어떤 절이 소개되는 걸 보며 나는 소리쳤다.
“어?? 여기다!”
이미 10여 년 전에 지인에게 소개받았던 절인데, 아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알고리즘인지, 그게 갑자기 내가 보던 인스타에 떠버린 거다. 웃긴 건 요즘 내가 관심 있는 건 AI 동영상뿐이라는 사실이다. 내 피드는 원래 ‘AI로 고양이를 인간화하는 법’ 같은 것들로 가득해야 정상인데, 갑자기 절이라니.
그래서 잠깐, 아주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우주의 에너지가… 나를 인도하고 있나?
유레카가 여기에 어울리진 않지만, 나는 정말 유레카를 외치며 남편을 꼬셔서 내려왔다. 사람은 가끔 논리보다 기세로 움직인다. 특히 소원이 걸리면 더 그렇다.
이 절은 100일 안에 세 번 와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내 소원을 여기 산중턱에 뭉개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절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든 뭐든, 남 잘 안 믿는 성격인데도 이번만큼은 그냥 믿었다. 이리 살아보니 가끔은 절박하게, 간절하게 믿어주는 것도 손해 볼 건 없다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거다.
어차피 믿는다고 돈이 새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다고 인생이 갑자기 쉬워지는 것도 아니니까.
남편의 응원에 이를 악물고 절에 도착했고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어기에 마음이 급했다.
대충 아는 불교 상식으로 어떻게 절해야 하는지 남편에게 알려주고 (나는 힘들어서 108배는 남편에게 시켰다)
나는 앉아서 기도만 했다. 근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명상겸 기도에 들어가고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왼쪽 눈에서도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주르륵 이 아니라 그 건조한 산 바람에 건 미역처럼 바짝 마른 내 볼따구에 또르르르 하는 느낌으로 떨어졌다.
"니 기도를 들어주마" 하는 허락의 싸인이라고 믿었다. 여기서도 또 한 번 뭔가 외치고 싶었는데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과 아멘'을 동시에 읊조렸다.
108배를 하느라 당떨어진 남편 절 밥이라도 먹여주려고 식당을 찾았는데 현금이 하나도 없어 물만 실컷 마시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커피 사탕 한알을 까서 입에 넣어주었다.
사탕 한 알에도 만족하는 사람. 커피 사탕만 한 다이아 반지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내 모습과 겹쳐 보였던 건 왜일까. 이것도 산에 오르면서 배운 것인가.
하산하는 길도 운동을 좀 하는 남편은 먼저 내려가고 중간중간 서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올라갈 때도 기다리고 내려갈 때도 기다리는 남편을 보니
저 인간이 나보다 먼저 죽어서도 날 기다리겠구먼 죽어서 가는 길 외롭진 않겠구먼
"동지네 동지"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언제 적이더냐 이제는 가족을 넘어선 동지적인 느낌.
나는 절에 오르면서 옆에 두고도 잘 몰랐던 남편의 ‘쓰임새’를 알게 되었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옆에 딱 붙어 부담을 주지도 않으면서, 내가 내 힘으로 올라올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그렇다 난 밀고 당긴다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밀면 욕하고 당기면 욕하는 게 나란 사람이다.
내려오면서 나는 우리의 관계가 어디쯤 와 있는지 문득 깨달았다.
물건 하나를 끝까지 다 닳을 때까지 써본 적 없는 내가 적어도 이 사람만은 평생 함께 할 만한 아니 내가 끝까지 써줘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내려왔다.(남편 넌 내가 끝까지 책임지마)
다시 난 조용히 아멘과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엄마의 폐기능이 여기서 더 나빠지지만 않게 해 주세요" 마음이 급하면 기도도 멀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