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나, 저래도 나
조금씩 '서글픔'ㅇ라는 단어를 떠울리게 되는 요즈음이다.
내 나이 즈음 되는 사람들이 특히 부정적인 감정 앞에 '갱년기라서'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한다. 애써 무시하고 싶지도, 외면하고 싶지도 않지만 자주 들먹이는 사라들에게서 변명이고 핑계임을 느낀다. 그 모습마저도 서글프다.
"내가 할 수 있을 까?" 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라고 했던 보도섀퍼의 이 문장을 나는 사랑한다.
잘하는 것에 앞서 해야 할 것은 해보기라도 하는 것이다. 해보리라도 해야 해낼 수도 있는 거니까.
오십을 넘어서니 지천명은 모르겠고, 안 아프던 곳이 아프기 시작한다.
갱년기라 그런 건지,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는 버릇 때문인지는 나도 모른다.
온갖 건강기능식품을 챙겨 먹는 게 내겐 맞지 않는다. 마음의 스트레스는 글과 음악으로 풀고, 몸의 스트레스는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풀려 할 뿐이다.
최근에 시작한 달리기로 안 아프던 곳도 아프다.
그야말로 머리-어깨-팔-무릎-발가락까지.
아픈 것이 당연시되니 갱년기라는 단어 자체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매일 땀을 흘리고, 먹는 것보다 자는 게 더 간절하다 보니 아파도 달려서 그런가보다, 땀이 나도 달려서 그런가보다... 갱년기라서 그렇다 해도 그럴 나이이니 그런가보다.
이래도 저래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편하다.
다만 서글프다.
아프다는 말이 입에 붙을까 봐.
타인의 말도 전혀 남의 말만은 아닌 거라서.
1등의 찬란함만 부러워하다가, 그늘의 안쓰러움도 잘 보게 되어서.
잘하는 것보다 꾸준함을 더 인정할 줄 알게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