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부부'라는 말

약속해줘 & 약속할게

by 오리궁뎅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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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은 언제나 한 가지 감정만을 불러내지 않는다.

웃음과 눈물, 설렘과 애잔함이 동시에 드는 묘한 공간이다.

앞의 감정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기대가 더 컸을 때의 것이고, 뒤의 감정은 이런저런 상황을 겪어낸 이들의 것이다.

몇 년이든 몇 십 년이든 먼저 경험한 이들은 이 자리에서 힘겨웠을 때가 더 많았을지도 모를 결혼 생활이 순식간에 지난 것처럼 느끼며 자신들이 주인공이었던 시절을 소환한다. 하객들 앞에 선 부부가 되어 그때의 설렘을 잠깐 느낀다.


결혼식 모습에서도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

신부 입장 전에 신랑이 신부 소개를 하는가 하면, <<"설거지가 왜 아직 그래로야?" 라는 말에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신랑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30분 정도는 기다릴 줄 아는 신부가 되겠습니다.>>. 주례나 '검은 머리 파뿌리' 얘기는 아무도 꺼내는 이가 없다.

춤 추며 입장했다가 키스하며 행진한다.

유쾌한 이벤트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왜 여전히 눈가가 촉촉해지고 코끝이 매콤해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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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진로드 옆 쇼파에 나란히 앉은 우리 네 자매. 챗GPT를 활용해 장난스런 이미지를 만들어 공유해보기도 한다.

눈 깜짝할 사이처럼 느껴지는데, 어느새 우리는 버진로드의 주인공에서 그들을 축하하는 하객의 신분이 되었다.

시나브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촌들끼리도, 늘 함께일 것만 같았던 우리 네 자매도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큰 일이 있어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서너 시간 동안 음식과 담소를 나누고, 기왕이면 긍정의 언어만 뱉으며 웃는 낯으로 사진을 찍는다. 반짝이는 피부와 상큼한 웃음에서 눈가 주름살이 더 돋보이는 나이가 되었지만,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 우리는 인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늘어난 시간의 선물을 받은 이들인 것을 눈치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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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을 잠깐 달랠 수 있었던 동생 집 앞 아지트

단풍이 농익어가는 시간.

40여 분 거리의 동생을 데려다 주고 아쉬운 마음을 이른 저녁으로 달랬다.

칼칼한 조개탕과 바삭한 감자튀김의 콜라보를 즐겼다.

그 누구보다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라면 무엇이든 다 극복하며 해피엔딩을 할 것만 같았던 배우자와 만난 지 벌써 20년이 족히 지나 30년을 향하는 우리다.

처음의 마음과 많이 다름을 그 시간을 견디며 몸으로 마음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자잘한 데에 있음도 깨닫는다.

조카의 결혼식 덕분에 두루 안부를 물으며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것, 나를 잘 아는 이들 앞에서 조금 풀어진 모습으로 까불어도 허물 없이 그러려니 해주는 이들이 있는 것, 그들과의 잠깐 웃을 수 있었던 것...

소소한 행복이고 감사한 시간이다.


'현실'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 단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현실 남매', '현실 부부' 등...

지금 두 손을 꼭 잡고 눈에서 꿀 떨구어가며 마주한 새내기 부부는 '현실 부부'라는 말이 부정적인 단어기 되지 않기를 응원한다.

나 또한 머리숱이 듬성듬성해지고 주름 늘어가는 우리이지만 매일 봐도 상대방이 웃을 때 나도 행복한 건 변함이 없다. 남편은 내게 아직도 콩깍지가 남아 있느냐고 하지만, 내가 행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내 반쪽의 온전한 짝패가 되는 과정처럼 느낀다.


이런 날은 27년 전 그 날의 앨범을 다시 펼치게 된다.

우리의 결혼 서약은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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