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는 것은 빛일까, 마음일까
오랜만에 짝꿍 '궁디팡팡'을 해줬다.
사실 요 며칠 열 받아 있었다. 아니, 열을 받았다기보다 그냥 속이 터졌다.
이게 2주씩이나 속 터질 일이야?
내가 속터지는 얘기를 회사 동료에게 했더니, 동료 왈, "그게 왜 속 터질 일이에요? 난 그런 건 전혀 스트레스 안 받는데." "그래? 그럼 자기가 직접 해결하는 거야?" "아니, 그냥 방문 열어놓고 해결해요."
"잉? 그렇게 해결한다고?"
동료의 반응은 나의 속터짐을 해결해주지 못했지만, 뜻밖에 도움이 되기는 했다.
현상만 보고 있던 내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이다.
나이트클럽도 아니고 욕실 등이 자꾸 깜빡거렸다. 그러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불빛도 흐려지고 계속 깜빡거리게 되었다. 욕실 등을 갈아야겠다고 남편에게 말하고 퇴근해보니 그대로였다. 저녁 약속으로 늦어서 해결하지 못했나보다 하고 삼일을 그냥 불편하게 지냈다. 삼일 연속 저녁 약속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주말에는 해결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말에는!!
주말에도 껌뻑거리는 조명 아래서 열 받고 있다가,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가, '아니지, 내가 자꾸 답답함을 못 견디고 직접 해버릇 하니까 저렇게 믿거라 하는 거야!'하고 '지가 답답하면 바꾸겠지!'하고 견뎠다.
오늘 퇴근해서 화장실에 들어가니 환한 불빛이 아주 선명했다.
"어머나~! 여보!! 했구나?!" 그리고 궁디 팡팡.
생각해보니 사람에 따라서 이게 그리 속 터질 일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중요한 일은 잘 기억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잊을 수도 있겠구나. 더구나 크지 않은 집인데 화장실은 세 개가 있어서, 윗층은 아들이 전용으로 쓰고 거실에 딸린 화장실은 남편이 주로 쓰고, 안방 화장실은 내가 주로 쓰다 보니 남편은 답답하지 않았던 것.
손톱 옆의 거스러미 하나도 스칠 때마다 얼마나 사람을 예민하게 하나. 수시로 들락거리는 화장실의 불이 늘 환한 게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깨달으며 늦게나마 기억을 하고 해결해준 남편에게 새삼 고마웠다.
식탁에 앉았다가 뭔가 꺼내러 냉장고 문을 열고 내가 왜 열었는지 깜빡하기 일쑤인 내가, 왜 남편의 깜빡거림에는 분노를 했을까!
40여 년 전 유년시절에나 형광등의 가장자리가 시커매지며 깜빡거리는 걸 봤었는데, 오랜만의 깜빡거림에 살짝 반가울 뻔 하기도 한데...
깜빡거리는 건, 빼박 중년인 우리부부도 예외가 아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