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다 날릴 수도 있어요!
강사님, 저 보증금 못 받을 뻔했어요
수강이 끝난 뒤, 강의실에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을 때 한 수강생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얼굴에 긴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말을 꺼내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강사님, 저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대략 어떤 이야기인지 감이 왔다.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사연은 대부분 보증금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강생은 얼마 전 이사를 했다고 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기존에 살던 집을 빼려고 부동산에 전화를 했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집주인이 이미 몇 달 전에 사망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바로 되물었다. 언제 돌아가셨냐고. 수강생은 몇 달 전이라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그동안 월세는 누구 계좌로 넣었느냐고. 수강생은 머쓱하게 웃으며 집주인 계좌로 계속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집주인이 사망하면 그 집은 즉시 상속재산이 되고, 상속인이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상속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돈이 묶이는 경우가 많고, 보증금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 위험한 상황도 있다. 집값보다 대출이 많거나 돌려줘야 할 보증금이 더 크다면, 상속인은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그리고 이 집을 상속받는 것이 손해라고 판단하는 순간, 상속을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그 경우 보증금은 받지 못하는 돈이 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받기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수강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자기는 보증금을 못 받는 거냐고. 나는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상당히 힘든 절차를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을 말했다.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집을 비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보증금 분쟁에서 임차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점유이고, 돈을 받기 전까지 그 집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 협상의 힘은 급격히 약해진다.
하지만 수강생은 이미 새로운 집에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까지 받아둔 상태였다고 했다. 이사 준비도 거의 끝난 상황이었다. 나는 그럴수록 절차를 더 정확하게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임차권등기명령이다. 보증금을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등기부에 공식적으로 남기는 절차로, 보증금 액수와 임대차 기간, 그리고 미반환 상태가 기록으로 남는다. 이렇게 되면 그 집을 매매하거나 상속하거나 경매로 넘기려는 누구든 이 문제를 피해서 갈 수 없게 된다.
나는 이어서 전입신고를 했는지 물었다. 수강생은 집주인이 하지 말라고 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답은 너무 자주 듣지만, 항상 위험하다. 전입신고와 점유, 그리고 확정일자는 임차인 보호의 기본이고, 계약서에 전입하지 않기로 한다는 특약이 있더라도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항은 법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많다. 전입신고는 집주인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임차인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수강생은 월세도 이런 사기를 당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기는 전세냐 월세냐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보증금에서 터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 집에 여러 명이 계약하는 경우나, 집주인이 아닌 사람과 직거래로 계약하는 경우는 대표적인 위험 사례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개비는 아까운 비용이 아니라 보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수강생에게 반드시 계약서에 넣어야 할 특약을 정리해 주었다. 잔금 전까지 추가 권리 설정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 잔금일 당일 발급한 국세와 지방세 완납증명서를 확인한다는 조항, 그리고 전세대출이나 보증보험이 불가할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 세 가지만 지켜도 보증금 사고의 대부분은 걸러낼 수 있다.
수강생은 마지막으로 진짜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맞다고 답했다. 하지만 다음 계약까지 운에 맡기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계약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무지가 아니라 귀찮음이고, 귀찮아서 확인하지 않은 것들이 나중에 가장 비싼 대가로 돌아온다. 보증금은 성격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반드시 절차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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